아이를 낳기 전에는 몰랐어요.
어릴때 딱 한살차이 남동생이 왜 위인에는 남자만 많고 여자는 얼마 없냐고 조롱할때
분한 마음에 엄마한테 물어봤더니
그 위인의 엄마들은 모두 여자란다..라는 대답을 듣고
어린 마음에 어이가 없어서.. 아빠는 모두 남자인데..싶어서
납득이 안되었었죠. 그저 남동생과 싸움에 내명분을 잃어서 화가 났구요.
언제나 공부 잘했고 그 힘든 유학생활도 견뎠고, 미국에서도 누구나 부러워하는 직장에 들어가서
뚝심있게 승진했고 말로만 들으면 화려한 직장생활을 하면서 - 지금은 미국 말고 다른 해외살아요-
그때까지도 몰랐어요. 난 내가 잘나서 이렇게 사는줄 알았어요.
나처럼 열심히 살지 않아서 다른 여자들이 다 중간에 주저 앉는줄 알았지요. ㅋ
결혼을 하고도 오랫동안 아이가 생기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오히려 덕분에 오랫동안 커리어는 승승장구 했어요.
아이를 낳고서야 알게 됐어요.
나 이전세대.. 그보다도 더 이전세대 여자들중에왜 위인으로 이름난 여자들이 그리 드문지.
그때는 피임약도 없었던 때니.. ㅎ
한평생 아이를 열명씩 낳아서 키우는데.. 위인은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을 위인인가요..
살아남기도 힘들었을텐데...
아이 하나 낳고도 이렇게 벅차서 매일같이 기절할것 같은데..
난 내가 잘나서 공부잘하고 커리어 잡고 잘나간다고 생각했는데..
내 이전세대의 여자들이 나보다 병신이라서 그렇게 살았던게 아니란 것을요.
그리고 심지어 지금 세대 여자들도 대다수 마찬가지의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요..
지금도 아마 한국에 있는 웬만한 맞벌이 직장맘 중에서는 그래도 제일로 편안한 삶을살고 있는 것일텐데.
탄력근무로 일주일에 하루 이틀은 재택 근무 가능한 회사... 입주 도우미 아줌마..
그래도 아이 낳고 평소 몸무게보다 7킬로가 빠져서 돌아오지 않아요..
8시반이면 아이 재워놓고 다시 컴퓨터를 켜서 12시 1시까지일하는걸 만 3년 하고 나니까요..
저보다 몇년 앞서서 아이를 낳은 친구가 있어요. 그야말로 말로만 들어도 후덜덜한 삼형제.. 그것도 연년생으로.
그친구는 저보다 더 커리어가 잘나갔었어요. - 과거형이지요.
이름만 들어도 아는 미국계 대기업에 아시아팩과 유럽미들이스트 총책임자였었어요. 삼십대 중반에.
그친구 아들셋 낳고 결국 그만두고 집에서 엄마로만 살고 있어요. 5년 넘게.
저는 다행히?? 여자아이를 하나 낳았어요.그리고 더이상 낳을수 없습니다. 체력도 안되고 아이가 너무 늦게 와서 더 아이를 가질수 없는 나이에요.
내아이가 형제가 없어서 외로울것 같아서 그게 너무 미안해서 괴롭다고하니..
그친구가 그러네요. 힐러리 클린턴이..아이가 하나가 아니라 둘이었으면 대권주자로까지 가지 못했을꺼야.
그리고 그 하나 있는 아이가 딸이 아니라 아들이었어도 힘들었을껄.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둘이 배잡고 웃었어요.
그친구가 절 위로하더라구요. 그러니 지금 힘들어도커리어 놓지 말라고.. 넌 딸이 하나잖아.. 하구요..
엄마가 생각이 나더라구요. 그위인들의 엄마는 모두여자란다.....
어릴땐 몰랐어요. 엄마와 아빠가 하는일이 얼마나 하늘만큼땅만큼 다른지....
자기가 정말 좋은 아빠라고 굳건히 믿는 남편을 보면서...
난 그보다 백만배는 더 부모로서의 역할을 하는데.. 난 그래도 이렇게 항상 매일매일 못난 엄마인것 같아서 아이한테 미안한테...
무슨 결론을 내고 싶어서 이렇게 길게도 썼는지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