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비 자이언 사건은 미국 의료 시스템을 바꾼 역사적 사건이었다. 1984년 한 대학교 신입생이 코넬대 부속병원인 뉴욕병원에서 사망하는데, 어떻게 보면 전형적인 의료사고로도 볼 수 있는 사례였다. 고열과 독감 증상으로 응급실에 들어온 리비는 수액 투여와 관찰을 위해 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이틀을 꼬박 당직 서고 있던 레지던트와 인턴은 리비가 오한 증상을 보이자, 별생각 없이 그런 경우에 쓰는 데메롤을 처방하고, 그 이후 리비가 더 흥분 증세를 보이자 신체 결박을 지시한다. 침대에 묶여 몸부림치던 리비는 얼마 뒤 사망하는데, 나중에 밝혀진 바로는 응급실에 오기 전에 먹었던 항우울제와 데메롤 간의 상호 작용이 흥분의 주요 원인이었고, 묶인 채로 고열 치료를 받지 못해 사망에 이르게 된 것이었다.
변호사였던 리비의 아버지 시드니 자이언은 격노했고, 향후 10년도 넘게 진행될 소송전에 돌입했다. 항간에 이 분노는 시스템을 향한 것이라고 알려져 있고, 어느 정도 사실이다. 하지만 형사 소송이 처음부터 배제된 것은 아니었다. 병원과 의사들을 기소하기 위해 대배심(Grand Jury, 미국은 기소 여부를 배심원들이 결정하는 경우가 있고, 이를 ‘Grand Jury’라고 한다)이 소집되었으나, 배심원들은 의사와 병원에 형사적 잘못을 묻기보단, 이틀이 넘게 잠을 안 재우고 일을 계속 시키는 의료계의 시스템을 더 문제 삼았던 것이다.
그 이후 일어난 일들은 잘 알려진 대로다. 미국에 80시간 법이 도입되었고, 전공의들의 휴식을 보장하는 제도가 강제되었다. 그 법 시행의 결과에 대해선 아직도 말이 많지만, 큰 틀에서 보면 이제는 과거의 제도로 돌아갈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것이 바뀌었다.
분노한 아버지 시드니는 거기서 만족하지 않았다. 1995년 그는 병원과 의사를 상대로 200만달러를 요구하는 민사 소송을 제기한다. 법적 공방의 핵심은 의사들이 태만했는지였는데, 소송에서는 정신과 약 복용 사실과 코카인 사용 여부를 의사들에게 말하지 않은 리비의 책임론이 제기되면서 치열한 토론이 이어졌다. 결국 이 재판에서 재판부는 의사들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고, 병원의 일부 책임을 인정해 시드니 자이언에게 75만달러를 지급하라고 판결하게 된다.
이대목동병원에서 일어난 불행한 사건은 어떤 면에서 한국의 리비 자이언 사례가 될 수도 있다. 신생아 네명이 감염 관리 문제로 사망했고, 그 문제의 근원을 들여다보면 장비와 인력이 많이 필요한 분야에 필수적인 감염 관리 비용조차 제대로 보상해주지 않는 건강보험 수가 문제가 자리잡고 있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전공의 여섯명이 돌아가면서 병동·응급실·중환자실을 계속 커버했다고 하고, 담당 교수도 둘밖에 없다고 한다. 미국 병원 같았으면 교수도 전공의도 “이런 상황에서는 안전하지 않으니 병동을 폐쇄해야 한다”고 선언하고도 남았을 상황이다. 그런데 열악한 환경에서 어떻게든 유지하려고 노력했던 것이 비극의 원인이 되었다.
의료진 입건은 조사를 위한 기본 조치일 것이다. 그런데 근본적인 시스템에 대한 성찰과 반성 없이 의료진만 처벌하고 끝낸다면, 세월호 사건 때 해경을 해체하면 된다는 이상한 논리를 펼친 이전 정권과 별로 다른 점이 없는 것 아닐까. 비난의 중심에 선 전공의들과 대중의 영웅 이국종 교수는 어쩌면 동전의 양면일 수도 있다. 우리 사회가 문제의 핵심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시드니 자이언의 멈추지 않는 분노는 사회를 바꿔놓았다. 그 사람이 훌륭하다기보다는 그 사람의 분노 에너지를 사회 변화 쪽으로 방향을 틀어준 미국 사회의 성숙함이 더 중요한 요소가 아니었나 싶다.
한국 의료는 지금 갈림길에 서 있다. 분풀이로 의료진만 처벌하고 끝난다면, 필수 진료 과목들을 전공하고자 하는 의사들은 가뜩이나 부족하지만 더 줄어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