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용돈 30만원이 적니 많니,
비싼 머리를 해야 하니, 마니,
대1때부터 동생들 학비, 용돈 다 댔다는 30대 중반 직장인의 밉상짓..
글 보니까요.
제 생각이 나네요.
집 가난해요.
대학은 꿈도 못 꾸다, 어찌 대학을 가게 됐네요.
엄마한테 돈 좀 달라고 하면,
여상 다니는 여동생이 학원이다 뭐다 해서 들어가는 돈이 많아서 줄 돈이 없다고 해요.
26년전에 1년에 100만원식 받았네요.
그 돈 보태고 알바 해서, 방 얻고, 용돈하고, 학비해야 하죠.
빠듯하다 못해 왜 사나 싶고요.
동생이 여상 졸업하면, 좀 더 나을까 싶어 참고 있었어요.
동생이 졸업할 때, 엄마가 그러더군요.
여동생이 대학을 가고 싶다고.
우리집 형편에 여동생이 대학을 가면, 저는 100만원도 못 받습니다.
여동생은 어디 사나요.
저랑 같이 살겟다는 거죠.
친구랑 방 얻어 자취했던 저는, 친구 내보내고 저는 휴학하고, 알바해야 했죠.
엄마는 이집 저집 돈 꾸러 다니면서 동생 학비, 용돈은 충당했고요.
저는 휴학하고 방세, 제 학비, 다음해 방세랑 공과금 벌고요.
동생이 알바를 한번 안 하더라고요.
거칠고 눈치 있는 애면 말을 하겠는데, 상처 입을까봐 말도 못했어요.
눈치껏 해야 하는데, 늙고 가난한 노모에 전적으로 의지해서 전문대학을 졸업했어요.
동생이 졸업하니 제 형편이 좋아진 것이 아니라,
동생 대학 보내느라 여기저기 빌린 돈 갚느라, 저는 여전히 1년에 100만원을 받았습니다.
동생이랑 살 때 말인데요.
동생이 카세트 테이프를 한 20개 사서, 종이박스에 꽂아뒀어요.
리어커 같은데서 1000-2000원에 산 거 같고요.
저는 그거 보면서, 상처 입었습니다.
저는 1200-1400원짜리 학교 백반을 사먹는 돈이 부족하고 아까워서,
600원짜리 컵라면이나 900원이면 해결되는 빵, 우유를 숱하게 먹었거든요.
엄마의 지원을 독식하다시피 하면서, 언니의 힘듦은 안중에도 없고.
눈 뜨면 보이는 한 집에 살면서도, 전혀 눈에 안 들어오나 보더라고요.
그런데, 카세트 테이프를 하나둘 사 모은 동생을 보니,
타인의 고통을 말하지 않으면 모를 수 있다는 것이,
그 고통이 자기로 인해 가중되고 있다는 것을 모를 수 있다는 것이, 답답했어요.
답답함을 넘어, 그것을 다 짊어져야 하는 제게는 사소한 그 행동이 큰 상처가 되었네요.
동생, 지금은 제부가 그렇게 서포트를 해줘요.
그 후로 동생이 평생 일을 했는데요, 함께 일하는 제부가, 가사, 청소, 빨래, 육아를 거의 전담하다시피 해요.
제부 말로는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라며.. 웃고 마는데요.
동생은 누군가의 희생 위에서 공주처럼 평생을 살아요.
덕분에 잘 꾸미고 걱정 없이 살아서, 나이가 10살은 어려 보여요.
저는 넌덜머리나게 궁상떨고 사느라, 꾸미는 것도 관심없고, 돈 없어서 꾸밀 수도 없었고요.
그게 습관이 되어서 지금도 안 꾸며요.
가끔 이게 팔자 라는 건가 라는 생각이 들어요.
눈치 없고 남의 힘듦이 눈에 안 들어오는 사람은
고생 모르고 커서 고운 얼굴 유지하고,
관심이라고는 이쁘게 꾸미는 것.
그게 이뻐 보이는 남편 만나서, 계속 고운 얼굴 유지하는 공주인생 살게 되는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