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외동, 첫째와 둘째

난둘째 조회수 : 2,544
작성일 : 2018-03-02 11:46:21

나는 오빠 아래 둘째로 자랐다.

자라면서 오빠를 이해할 수 없었다.

왜 저렇게 이기적이지? 자기만 생각하지? 눈치없지? 무뚝뚝하지?

엄마가 힘들어하는거 모르나? 저러면 자기때문에 다른사람이 피해보는거 모르나?

미운짓 해놓고 엄마는 동생만 편애한다고 질투하는거, 제정신인가?

암만봐도 부모의 관심과 투자는 오빠에게 쏠리는데

아무리 받아도 받아도 끝없이 불평하는 첫째와

눈꼽만큼 받고도 엄마아빠 고맙다고 기뻐날뛰는 둘째

내가 부모라도 둘째가 이쁘겠다

니가 이쁜짓을 해야 부모가 널 이뻐하지

미운짓만 하면서 내가 예쁨 맏는 것까지 질투하다니

뭐 저런게 다있나?

공부는 잘하는데 바본가?


그러던 내가 자라서 외동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아이의 외모는 남편을 닮았는데 하는짓은 어찌 내가 미워하던 친정 오빠를 닮았을까.

눈치 없어, 고마운줄 몰라, 불평 많아, 자기 힘든건 죽어도 안해...

난 너무 놀랐다

내 자식이니까 당연히 나를 닮을줄 알았는데 이럴줄이야.

어쩌다보니 외동으로 끝내게 되었지만

난 이미 알수 있었다

실수로라도 둘째가 생기는순간 난 둘째 몰빵일 거라는거 둘뻑 확정이라는거

심지어 있지도 않은 가상의 나긋나긋한 둘째를 머릿속에 만들어놓고 비교하고 아이를 미워하기까지.


그런데 세월이 흐르다가....

어느날 깨달았다.

내가 착해서, 센스있어서 나긋나긋하고 부모 마음 살피는

원래부터 살가운 아이가 아니었다는거.

그저 둘째로 태어나 살아가려니

이미 터줏대감으로 자리잡은 오빠 밑에서 부모의 관심 찌끄레기라도 얻어먹으려니

다 나 살자고 했던 짓이라는거

부모 마음 살피고 주변 분위기 맞추고 척하면 딱으로 살아야

그래야 이쁨 받을수 있고 관심받을수 있어서 그랬다는거.


만일 내가 외동으로 태어났다면

자동으로 부모의 관심과 사랑은 내것이 되었을 것이고

그러면 나는 눈치있고 센스있고 배려깊을 이유가 하나도 없었을 거라는거.

오빠나 내 아이처럼 무뚝뚝하고 무관심하게 살았을 수도 있다는거.


그걸 깨달은 순간부터 아이가 밉지 않았고

아이와 부대낌이 적어졌다.

나는 그 아이가 처한 환경이 나하고는 다른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였다.


오빠가 한없이 불퉁스러워지고

나는 한없이 나긋나긋해진 것도

결국 부모가 올바른 사랑을 주지 못해서 그런 것도 깨달았다.

내 부모는 큰아이가 상실감을 느끼는 것도, 작은아이가 지나치게 눈치를 보는 것도 몰랐다.

큰애한테는 눈치없다고 야단치고, 작은애는 니가 딸이니까 집안 분위기를 살려야한다고

그러면서도 작은애한테는 무조건 오빠는 오빠니까 너따위는 어림도 없다고 딱 자르는 식이었다.

우리 남매는 서로 미워했고, 각자의 방법으로 어떻게 해서든 부모의 사랑을 쟁취하려 아우성쳤다.


부모가 아이들의 좋은점을 각각 알아주고 각각 제몫의 사랑을 주었다면

우리는 서로 상처와 마음의 짐을 좀더 내려놓고

우리 둘의 관계도 좀더 가까워질 수 있었을 것 같다.


혹시 자녀 키우면서 눈치없고 뻣뻣한 자식 때문에 속터지는 분들

난 어릴때 안그랬는데, 둘째는 안그러는데 첫째 저놈은 왜 저럴까, 하고 밉게 보이는 분들

아이의 미운 행동도 착한 행동도 결국은 어떤 상처에서 비롯된 것일수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밉게 구는 놈은 사랑으로 모서리를 깎아주고

착하게만 구는 놈한테는 그렇게까지 애쓸 필요 없다고 짐을 덜어주는 부모가 되면 좋겠어요.

굳이 거창하게 아들러 심리학까지 들먹일거 없이

같은 부모 아래 자라도 아이들마다 제각각 처한 입장이 달라요.

그 미묘한 차이를 헤아려주면

우리 아이들이 좀더 건강하고 행복해지고

우리는 좀더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을 겁니다.


평생 착하고 센스있다 소리에 취해서

안으로 상처를 차곡차곡 쌓아가다가 결국 폭발하고

나이 오십에 이제야 돌아보게 된 나 자신의 어린시절이 한스럽고 불쌍해서

아침에 한번 주절거려 봤습니다.


IP : 121.160.xxx.222
9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mn
    '18.3.2 11:54 AM (125.132.xxx.47)

    나이듬도 좋은것 같아요 이런 성찰을 얻을 수 있으니까요.

  • 2. 저도
    '18.3.2 12:10 PM (175.118.xxx.47)

    저도 공감합니다
    제가 6살때 첫동생 8살때 막내가태어났는데
    진짜 싫더라구요
    엄마는항상지쳐있고 집안은개판이고
    사춘기때 동생들은 초등1학년 유치원생
    이니까 집안은 애들위주로돌아가고
    저에대한배려는 방하나 따로준거밖에
    그래서 사춘기심하게보냇어요
    학교끝나고 집에도안들어가고
    전화도안하고 친구네서자고
    그담날집에들어가서 뒤지게맞고
    다시나가고 공부도안하고 성적표도장몰래찍어가고
    지금생각하니 엄마속썩이면서 저는분이풀렸던거같아요
    저는 외동으로 끝냈어요
    저희아들도 무뚝뚝하고 말수도적고
    뭐갖고싶은게없는앤데
    제친구가 보더니 눈치볼필요도없고
    부족한것도없어서
    그런것같대요
    근데 학교생활하는걸 애친구엄마한테 들었는데
    여자애들이젤좋아한다고하더라구요
    배려심제일많다구요 친구랑싸운적도없구요
    사랑많이주고 키우는게중요합니다

  • 3.
    '18.3.2 12:20 PM (27.117.xxx.142)

    글 너무 잘 읽었어요 윗 리플달아주신 님도 감사합니다. 전 외동낳았는데도 맨날 지쳐있는데 둘째 낳으면 그 화살이 동생한테 갈 수도 있겠군요

  • 4. ㅁㅁ
    '18.3.2 12:34 PM (211.36.xxx.152) - 삭제된댓글

    공감되는게 너무 많네요
    저는 3명중 첫째로 크면서는 천덕꾸러기같이 컸다고 생각하고 둘째는 눈치빠르고 싹싹해서 이쁨받는걸로 알았는데
    동생이 마흔 다된 나이에 친정엄마에게 터진 맘속 응어리를
    보며 참 자식 여럿을 키우는게 힘든일인걸 새삼 깨닿네요

  • 5. ㅁㅁㅁㅁ
    '18.3.2 12:49 PM (119.70.xxx.206)

    저장하고 여러번 읽어볼랍니다

  • 6. ...
    '18.3.2 12:56 PM (223.62.xxx.52)

    너무너무 공감합니다... 외동은 이래요. 딸많은 집 이래요... 이런 글들은 황당하기 그지없었는데...
    이 글은 참 좋네요.
    전 외동아들 키우는데 좀 그래요. 아직 7살이긴하지만... 배려심을 키워주려 노력하는데 힘들어요. 전 저도 외동이라 단점을 잘알기에 보완해주려고 하는데... 아들은 또다른... 쉽지 않아요..ㅜㅜ

  • 7. 88888
    '18.3.2 1:33 PM (180.230.xxx.43)

    글좋네요ㅎㅎㅎ

  • 8. ...
    '18.3.2 2:09 PM (223.62.xxx.210)

    비슷한글을 심리학 강의에서 들었어요

    같은 맥락으로
    새어머니에게 학대받고 자라던 아이가
    동생이 학대빋다기 죽자
    경찰서에서 수사받던중중
    새엄마 잘못없다며 새엄마한테 잘보이려고
    편들던 사례도 있었죠

  • 9. ,,,,,,,
    '18.3.2 6:34 PM (86.245.xxx.77)

    잘읽었습니다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785727 과탐울 물리 화학로 보신 자제분 6 nnn 2018/03/02 1,124
785726 모유수유 언제까지하셨어요? 6 고민 2018/03/02 937
785725 오늘밤 블랙하우스 재방하네요 10 00:53 2018/03/02 1,328
785724 갤럽문통 지지율 표본 4 ㅇㅇㅇ 2018/03/02 1,212
785723 한지상, 지현준.. 두 배우중에 4 ㅇㅇ 2018/03/02 690
785722 인도아이가 집 찾는 영화 라이언 보신 분 5 ........ 2018/03/02 1,235
785721 핸폰 바이러스 침투 했으면 어떡하나요? 5 .. 2018/03/02 935
785720 전현무랑 한혜진이 진짜 사귀는거면 4 2018/03/02 5,732
785719 (스포일 가득) 리틀 포레스트 후기 23 2018/03/02 6,382
785718 어느분글에 사람다운집? 2 부자 2018/03/02 676
785717 "흥부"조근현 감독 성희롱 녹취록 6 ..... 2018/03/02 2,266
785716 도미나 크림 쓰시는 분 6 nn 2018/03/02 4,111
785715 특성화고 전형을 많이 뽑나요? 7 ... 2018/03/02 1,265
785714 기초생활 수급자 골프치면 4 다양성 2018/03/02 3,025
785713 아파트에 전열교환기(환기기계) 설치되어 있는분~ 1 희야 2018/03/02 1,867
785712 남궁연 " 성추행 사실무근...명예훼손 고소 ".. 12 ... 2018/03/02 4,953
785711 전기 건조기 설치문의 8 ^^ 2018/03/02 1,052
785710 김보름에 대한 분노는 당연했습니다, 하지만(불펜펌) 53 ..... 2018/03/02 6,685
785709 막장 부부 4 ... 2018/03/02 3,116
785708 압력 밥솥 밥하기 어려운가요? 9 .. 2018/03/02 3,123
785707 견미리같은 고체 파운데이션? 압축파운데이션? 없을까요? 2 ;; 2018/03/02 1,841
785706 스리랑카 시기리아 여행 어떨까요? 1 가고싶다 2018/03/02 743
785705 올리브영 페이스 각질제거제 추천좀 부탁드려요^^ 1 ... 2018/03/02 2,844
785704 녹음기 추천 좀 해주세요^^ 1 ... 2018/03/02 545
785703 몸이 가려운데요 1 가려 2018/03/02 6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