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개만 놓치고 거의 다 본것 같아요.
드라마는 전혀 안보는데 , 박명수나 유재석이 나오는 무한도전이랑, 한끼줍쇼는 재미있게 잘 보고있어요.
그런데 한끼줍쇼를 보다보면, 매번 벨을 누르고 거절당하는 똑같은 패턴이 자주 나오니깐 그것도 집중해서 안보게 되는 단점이 생겨요.
그러면서도 제가 한끼줍쇼를 외면하지 못하고 보는 이유는.
그 화면속에 등장하는 남편들이 너무나도 착하고 다정다감하고 자상한거에요.
지금까지 아내와 함께 사랑하며 살아온 세월들을 자랑스럽게 꺼내놓는 그 화면속의 남편들이 참 부러워요.
전 안타깝게도 그런 남편을 얻지못했어요.
화가나면 눈동자를 희번득거리며 버럭 버럭 화를 내고.
한번도 청소나 설겆이도 해준적이 없는 사람이에요.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사람을 만날까봐 많이 조심했어요.
우리 아빠는, 알콜중독자였어요.
술생각이 늘 가득해서 꾸준하게 일을 하지 못했던 사람이었어요.
자매들과 집안에서 싸우면 추운겨울날에도 쫒겨나서 새벽으로 넘어가는 시간까지도
집에 들어오지 못했어요.
슬레이트 처마를 잇댄 담벼락 사이를 자매셋이서 졸린눈을 비비며 돌아다니고
살얼음이 낀 길가에서 몸이 오그라들듯이 추워 어쩔줄 몰라하곤했어요.
몰래 집안으로 들어갔다가 그시간까지 잠이 들지 못한 엄마가
"그냥 어디 개소주 하는곳으로 잡혀들어가버리든지 얼어죽든지 집안에는 절대 오지 말아라"
숨죽여가면서 말을 하는데
정말 머리털이 다 설정도로 쭈볏해져서 그자리에서 무릎꿇고 빌었어요.
잘못했다고..
"이것들이 안나가?확!"
등뒤에서 갑자기 아빠가 녹슨 망치를 들고와서 제 머리위로 치켜드는 시늉을 해서
사색이 된채로 얼른 대문밖으로 날쌔게 도망쳤던 기억이 나요.
그런일말고도
자존심에 금이 갈정도로 수치스럽게 혼난 일들이 많았어요.
자존심은 유리로 만들어는가, 금이 가면 쫘아악~~!파편을 떨구면서
떨어지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정도로
뭔가 잘못하면 정신없이 윽박지르고 펄펄 뛰는통에
굵고 뜨거운 눈물을 절절 흘리며 힘들게 마음고생했던 유년시절.
그래서 결국은
췌장암이 번져 온몸에 손쓸길없이 암이 전신에 다 퍼져 극심한 통증에 시달리다가 간
아빠가 지금도 정이 없어요.(그렇게 간 아빠가 가엾고 불쌍하고 기일이 다가오면 차마 흘릴수 없는
눈물들이 맘속으로는 불어넘쳐서 가슴이 아픈데 다시 만나고싶은 생각은 없어요.)
28살이 되도록 소개팅해주겠다는 사람들도 다 뿌리치고
친구들이 연애사를 늘어놓아도 시큰둥했었어요.
전 그냥 어릴때부터 손에 익어왔던 주변 집안청소가 재미있었어요.
혼자 책을 사서 읽는게 좋았고
병원동료들과 일찍 끝난 토요일날 영화보는게 즐거웠고
친구랑 피자 먹으면서 수다떠는게 즐거웠고
긴 겨울을 지난 봄바람이 개나리가지를 흔들면서 지나가는 골목어귀에 그림자 떨치면서
도서관 가는 한가함이 좋았고
엄마와 빨래개키면서 드라마 보는 저녁이 좋았거든요.
생각해보니, 두아이 키우느라 힘들었던 제 인생에서도 풋사과같은 20대가 있었군요.
20대를 떠올리면 너무 하얀해서 귀신같다는 말도 많이 들었던 시절.
한번 웃으면 좀처럼 멈추지못해서 가끔은 무안도 당하긴했지만 그래도 누구에게나 아가씨라는 말을 들었던
꿈같은 시절.
코스머스꽃향기 날리는 가을하늘 밑에서 멀리 끝없는 길너머까지 이어진 기차역, 빈 의자에 앉아있으면서도
홀로있음이 전혀 어색하지 않았던 그 빛나던 시절너머
이제는 저녁마다 식구들을 위해 나물을 씻은 푸른 물이 손가락까지 번질것같은 상상을 가끔 하고했던
40대 중반의 중년여성.
참나물이나 깻잎순을 씻은 뒤의 물이 푸르다는것을 알수없던 그 시절엔 분명 기형도의 시 한편을 종종 떠올렸어요.
우물가에 잉크한 방울 떨어뜨리니 푸르게 번져간다는 것을 보고 다시 길을 떠난다는 시 말이죠.
어떻게 저 여자들은 저렇게 착하고 다정한 남자들을 만났을까.
너무 부럽고 한편으로는 쓸쓸해지고..
그래서, 그래서 저는
인간극장도 신경질나서 안본지 꽤되었어요. 어쩌다 보게되어도 채널 돌려버리고..
보면 쓸쓸해지거든요..
이럴때 아련한 첫사랑의 기억이라던지, 추억이라도 있다면
좋을텐데 그마저도 없어용.
혹시 저같은 분 82에 또 있으신가요..
너무 속상해서 묵언수행하듯이 살다가 익명성을 빌려
몰래 하소연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