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연애하고 결혼하고 6년째..
주변에서 모두 부러워하는..나름 끈끈함을 자랑하는 부부입니다.
학교 다닐때 도서관에서 만나 같이 회계사 공부하고 시험도 같은 해에 붙었죠..
부부싸움도 거의 없는 편이고, 남편이 저한테 참 잘합니다. 닭살스러운 사람은 아니지만, 늘 변덕스러운 제가 하자는대로 하고, 제 지랄맞은 성격 다 받아주고, 큰아이 등하원도 4년째 담당하고 있습니다.
제가 주말에 피곤해 방에서 자면 두 아이 거실로 데리고 나가 놀아주면서 애들이 방문 앞에 얼씬거리면 엄마 피곤한데 깨우지 말라며 야단치고 혼자서 밥 해먹이고 데리고 합니다.
그런데 요즘..행동이 약간 이상해진 점을 느꼈습니다.
업무상 야근과 술자리가 굉장히 잦은데..(회계법인에 있지는 않아요.) 직장에 여자가 거의 없고, 있다해도 여자와 친하게 지내는 성격이 아닌 사람이라서 이전엔 이상한 행동을 한 적이 한번도 없었습니다. 핸드폰 모양이 같아 실수로 잘못 들고 나온적도 숱한데 서로 의심할만한 일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두달전쯤 술먹고 12시쯤 귀가했는데, 집에 들어와 씻고 나올 무렵 전화가 왔습니다.
남편은 누구지? 하며 전화를 받았는데 여자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잘 들어가셨어요? 하더군요. 남편은 아 예..잘 들어갔어요? 아 그래요? 그럼 조심해서 가세요~하더군요.
물어봤더니 팀에 알바가 새로 왔는데 술자리에 같이 갔었다더군요.
좀 어이가 없었습니다. 그 아이 참 맹랑하다 싶었죠..
물어보니 24살이라는데..솔직히 그런 술자리에 낀다는 것이 어이가 없었습니다. 이런 말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그 애가 어울리지 않는 술자리에 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팀원들 모두 SKY이상의 학력에 나이도 제일 어린 나이가 30대 중반에 모두 유부남입니다.
남편한테 좀 싫은 내색을 했더니 별일 아니라고, 전화도 걘지 모르고 받은거라고 하더군요. 알바는 장애인만 채용자게 되어 있어서, 장애 있는 애인데 왜 그러냐고 하더라구요.
조금 미안한 생각이 들어 그땐 그냥 넘어 갔습니다.
그러다가 한 20일전쯤 퇴근 후 아이 데리고 같이 밥을 먹으러 가서 전화기를 들여다보길래 장난으로 어디 오래간만에 핸드폰 검사나 해볼까? 했더니 정색을 하고 안보여주더군요. 그런 당황해하는 모습을 본적이 없어서 저도 정말 당황스러웠습니다. 남편 말로는 업무상 알고 지내는 사람이랑 쓸데 없는 음담패설이 오가서 챙피해서 그런다고 합니다. 어이 없어 밥먹다 말고 나왔습니다. 그랬더니 따라 나와 눈앞에다 들이밀며 보라고 하더군요. 기분 나빠 안보겠다고 하고 집으로 왔습니다. 집에와서 조금 기분이 누그러져 아까 숨긴 문자 보자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이미 지웠다네요.
기분은 나빴지만 이 때도 그냥 넘어 갔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인 사건은 그제..또 별생각 없이 남편 카톡을 들여다봤습니다.
팀원들과 주고받은 채팅이 세 개 정도 있더군요.
그런데 그 내용이.. 내 남편이 이런 사람이었나..싶어 가슴이 뛰더군요.
채팅은 팀원 중 가장 어린 유부남(A)이 항상 열고 여자애와 다른 사람들을 초대했습니다. 내용은 대충 이렇습니다.
A: 형 오늘 혠이 뭐 사줬어? 웃는거 봐라..형 혠이가 (둘이만 먹을 수 있었는데..)에 웃는거지?
남편: 들켰나.ㅋㅋ
B(알바 여자아이): 짜장면이요^^
A: 형은 맨날 짱깨로 도배더라?ㅋㅋ
B: 입에서 살살 녹는 짜장면 사주셨어요^^
남편: 울 이쁜 혠이 다음엔 짬뽕이다. 원하면 물만두도!
중략..
C(또다른팀원): 혠아 너 카톡 사진 바꿨네? 저거 너야?
B: 연예인이에요. 제사진은 당분간 안돼요.ㅋㅋ
남편: 우리 혠이가 더 이뻐.ㅋㅋ
중략..
A: 형 그거 알어? 혠이가 친구들 만나는데 우리 데리고 갈려고 했었데!
남편: 나도 델꾸가!!!!
A: 오~대답 빠른거봐라..ㅋ
남편: 이럴땐 오타도 안남 ㅋㅋ
중략..
A: 형도 카톡에 상의 탈착 사진좀 올려봐. 짐승남..(남편이 회사 헬스장에서 운동를 좀 해서 몸이 약간 좋아요)
B: ^^
남편: 이놈, 오늘 짐승 울음 소리를 들어 볼테냐!
중략..계속 짐승남 어쩌구 하는 대화가 오감
남편: 고마해라. 우리 혠이가 진짠 줄 알것다.ㅋㅋㅋ
중략..
B: 오라버니들 저 빼고 술 드시니까 맛나요? 흑흑..
A,C,남편: 노래방에서 일어나는 일 실시간 중계..이 와중에 남편은 우리도 팀장 버리고 너한테 가고싶다..라고 한 글도 있더군요.
뭐 이런식입니다..
어찌보면 별거 아닐수도 있고..제가 보기엔 A가 이런 요상한 분위기를 유도하는 감이 크긴 해요. A가 알바 아이를 좋아하는 것이거나 아니면 원래 좀 가변운 사람인 것 같아요.(A도 회계사이고 결혼한지는 1년 남짓 된 것 같아요). 그리고 남편도 적극적인건 아니지만 그 아이가 마음에 드는 눈치입니다. 물론 외도 상황까지는 전혀 아닌 것 같구요.
어쨌거나..남편이 이런 헤롱거리는 대화를 하고 지내며, 어린 여자애에게 저런 태도를 취한다는 것이 몹시 불쾌합니다. 워낙 서로 믿고 있고 친하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에 남편에게 제가 모르는 이런 사생활이 있다는 것이 참을 수가 없네요. 정말이지..남편 눈을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을 만큼 불쾌합니다.
여기서..반전일 수 있지만, 제게도 올 4월쯤 바람이 불었었습니다. 몸이 아파 다니던 원장이(저보다 두살 어린 총각입니다.) 제게 고백을 했었습니다. 그 친구도 배경을 말하자면, 중고등학교 때 학생 회장을 할 정도로 공부도 잘하고 모범생이었는데 체형 불균형으로 몸이 점점 아파져 공부를 제대로 못하고 어떻게 어떻게 중상위권 대학에 들어갔는데 대학 때도 몸이 아파 몸에 대해서만 생각하다가 체대 수업 듣고 통증 학회같은데 따라 다니며 독학으로 운동요법을 개발한 똘똘한 총각입니다. 암튼 가볍게 여자에게 접근하는 사람은 아니고, 매우 건실한 청년이죠..
그 원장이랑 운동하면서 이런 저런 대화도 많이 했는데, 제가 느끼기에는 이 총각이 저를 인생의 멘토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았습니다. (참고로 운동원이 요가원 비슷하게 생겨서 매트 8개 정도 놓고 각자 자신에게 맞는 동작을 지도 받아 합니다. 한방에 단둘이 있거나 그런거 아니에요..대화도 여럿이서 함께 하구요) 그 총각과 저는 제가 생각해도 약간 뭔가 통하는 것이 있긴 했어요. 원인 모를 전신 통증으로 몸 아픈것도 비슷하고 (몸이 아픈데도 항상 표정이 밝고 긍정적이라서 제가 좋다고 하더군요), 운동원에 항상 라디오를 틀고 있는데 음악 취향도 비슷했죠. 그리고 남들이 안정적이라고 여기는 직업을 버리고 하고 싶은 일 하는 것도요 비슷하구요. (저는 작년에 회계사를 그만두고 의류 쇼핑몰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그런 와중에 고백 받기 한달 전쯤부터 이상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자꾸 식사 한번 하자고 하고..뜬금 없이 운동과 관
련 없는 문자를 보내더군요. 그래도 그냥 그러려니 했습니다. 제가 워낙에 밥도 서서 먹을 정도로 시간 쪼개 일을 하게 바쁘던때라서, 그런데 신경 쓸 여유가 없었고 문자가 오면 대답도 없이 삭제하고 그랬습니다.
그러다 어느날 메일을 보냈더라구요. 제가 좋다고..그렇지만 더 가까워질 수 없는 현실이 힘들고 자기도 일을 확장 해야하고 자기 인연을 만나야 하니 두달 정도 운동 꾸준히 해서 몸이 안정되면 그만 오셨음 좋겠다구요. 그래서 제가 무책임하고 어른스럽지 않은 감정 혼자 추스려야지 이런식의 행동은 당황스럽고 불쾌하다고 하고 단번에 잘랐습니다. 운동은 그날로 그만뒀구요. 그 총각이 고안한 운동 방법이 제 만성통증을 확연히 개선되고 있는 중이었기에 저도 매우 아쉬웠지만, 그런 감정을 깔고 있는 사람에게 운동 지도를 받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남편과의 의리를 지키기 위해서 였기도 하고 남편한테 숨기고 싶은 일이 있는게 싫기도 했습니다.
이런 일이 있어서 운동을 그만뒀다고 기회 봐서 이야기 하고 싶었지만, 괜히 기분만 상해할 것 같아서 몇번 이야기하려다 삼켰습니다.
남편 문자를 보고 흥분해서는 이 일을 이야기 해 버렸습니다. 홧김에 얘기가 나와 버렸죠..난 그렇게 하고 살았는데, 너는 이렇게 가볍게 기지배랑 노닥대고 띠동갑 보다도 어린애한테 우리 누구 우리 누구 해가며 그 친구들 만나는데 따라가겠다고 말해 마누라 얼굴에 먹칠을 하냐고 했죠..니가 이런 식이면 나도 남자랑 단둘이 밥 먹고 하는 것에 죄책감 같은 거 갖지 않겠다고 했죠. (저는 사실..남자들이 좀 좋아하는 타입입니다. 털털하면서 약간 독특한 면이 있어서 제 쪽에선 아무 이성적 느낌이 없이 친하게 지내기 시작하면 어이없는 고백을 자주 받는 편이에요. 남편도 그런걸 잘 알고요..나도 남자 만나 밥먹고 친구 관계 정도 유지하겠다고 한 건 사실 남편을 협박하기 위한 거였지 그럴 마음은 없습니다. )
남편도 처음엔 화를 냈습니다. 일상적인 대화고, 여럿이 노닥거린 것에 불과하다고..그리고 오히려 그런 심각한 상황이 있었던걸 이야기 안했다고 화를 내더군요. 저는 남이 어쨌든 난 중심을 지켰고, 너는 체신머리 없이 어린애랑 낄낄대며 놀아났다고 했죠.
그제 싸우고 나서 어제 밤에 다시 핸드폰을 보니 카톡은 그대로 있고 그애와 문자를 주고 받은게 지워져 있더군요. 내용은 없었습니다. 오늘 아침에 그건 왜 지웠냐고 하니, 괜히 아무것도 아닌 카톡 여러 번 보고 곱씹으며 기분 나빠하니까, 문자도 지웠다고 하더군요. 미국 출장갈 때 오라버니 잘 다녀오세요 뭐 이런 내용인데 니가 여자애가 나보고 오빠라고 부르는 것도 기분나쁘다고 하니까 그래서 지운거라고..
어제만해도 아무것도 아니라고 그만좀 하라고 하다가 오늘은 자기가 행실을 똑바로 하지 않은게 맞는 것 같다고 낼모레 마흔인데 스무살 갓 넘은 여자애 끼워서 그런 대화 노닥거린거 잘못한 것 같다고 앞으로 처신을 제대로 하겠다고 하더라구요.(제가 운동원 총각 만나 진짜 밥이라도 먹을까봐 그러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더군요..)
전 여전히 화가 난 상태고 아직 남편 얼굴을 볼 수가 없어요. 낮에 애 둘 데리고 혼자서 문화센타 갔다 오고(남편이 운전해 같이 가려고 하는걸 뿌리치고 유모차 끌고 걸어서 갔다 왔습니다.) 애들 먹을 반찬 조금 해 놓고 밥 먹이라고 하고 제 사무실에 나와 있습니다.
이런 경우..제가 화 풀고 넘어가야겠죠. 뭐..아마 몇일 지나면 그렇게 될 것 같아요. 제가 두고 두고 뒤끝 있는 편은 아니기도 하고..결정적으로 바람을 피운 것도 아니니까요.
하지만..남편에 대한 신뢰가 확실히 반감된 것 같아요. 정말 죽고 못하는 절친이라고 생각했고, 나랑 늙어 죽을 때까지 놀아줘야 하니까 나보다 먼저 죽으면 죽여 버릴꺼야 하던 관계라고 믿었는데 애 낳고 각자 바쁘게 생업에 종사하다보니 이렇게 되는군요..참 씁쓸합니다.
이번 추석에 시어머니가 여행 약속이 있다 하셔서 저희도 4박5일 정도로 여행계획을 잡았는데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지금 같아선 저 혼자 훌쩍 다녀오고 싶네요. 근데 애들이 걸려서..ㅠ.ㅠ 둘째는 이제 돌 갓 지나서 젖도 먹거든요. 혼자 여행 떠나면 젖 물어야 잠드는 둘째는 어쩌나 싶어 혼자 떠나지도 못하겠네요.
에휴..
그냥 아무도 저를 모르는 곳에서 끄적이고 싶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