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프리랜서 카메라 기자의 세월호 3주기 기억식 행사에서 주변 스케치 내용의 글을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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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19대 대통령 선거운동이 시작됐다.
어제 나는 안산 세월호 3년 기억식에 다녀왔다.
정치인들 만나는 거 싫어해서 신문사 사표 쓰고 뛰쳐나온 나지만,
거절하기 곤란한 선배의 부탁으로 이번 주에 온에어되는 문재인 홍보영상을 촬영해주기로 했었다.
편집시간 감안하면 딱 이틀의 시간이 있었다.
이거저거 찍고 싶은 장면을 적어 캠프에 협조를 요청했다가 일언지하에 거절당했다.
홍보영상 때문에 연출은 절대 안하기로 했으니 공개된 현장에서 ‘그냥’, ‘알아서’ 좋은 걸 찍어 달라는 거다.
14대 대선을 따라다니며 겪었던 과거의 악몽이 살아났다.
대선 후보, 특히 유력 대선 후보의 주변에는 언제나 수많은 사람들이 몰리고
그 사이에서 좋은 영상을 만든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엄청난 취재력을 지닌 막강한 미디어들과 무슨 수로 경쟁을 해서 차별화된 영상을 만드나?
고민을 하다가 수퍼 클로즈업으로 얼굴만 따내기로 했다. 후보의 얼굴만큼 중요한 것은 없으니까. (그게 아니라고 주장하는 광고천재라는 사람도 있기는 하다만)
세월호 기억식에 몰려온 많은 기자들이 노리는 건 문재인과 안철수의 악수 장면
(또는 서로 시선을 반대로 두는 장면)이었다. 그 틈에서 나는 500밀리 망원렌즈를 통해 문재인의 얼굴만 살폈다.
포토라인과의 거리 때문에 아마 현장에 있던 대부분의 기자들은 눈치를 채지 못했을 거다.
추모노래가 울려퍼지는 동안 문재인은 애써 눈물을 참고 있었지만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단 한 번, 그가 코 옆으로 흘러내린 눈믈을 닦아냈다. 바로 그 순간, 기자인지 행사요원인지가
포토라인 앞을 지나갔다. (저주받을 인간 같으니...)
평생 사람 얼굴만 관찰하다보니 나는 사람의 얼굴을 통해 그 사람의 속마음을 알아내는 재주가 생겼다고 자부한다. 어제 문재인의 표정은 가식이 아닌, 속마음이 그대로 드러나는 얼굴이었다.
나는 이번에 새로 대한민국을 맡을 대통령이 정말 모두의 바램대로 온갖 적폐를 청산하고
새로운 국가를 이룩할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취임과 함께 시작될 수많은 방해와 걸림돌이 그의 앞에 놓여 있다.
그렇더라도, 나는 최소한 따뜻한 마음을 지닌 대통령을 갖고 싶다.
문재인을 무조건적으로 과하게 위하는 지지자들과 주변의 떨거지 군단 등 많은 걱정들이 있지만
나는 적어도 가슴 아픈 일에 눈물을 흘릴 줄 아는 사람에게 다른 후보들보다 더 많은 점수를 주고 싶다.
어제 행사장에는 문재인이 먼저 와서 앉아 있었고 안철수가 나중에 도착했다.
그런데 앞 줄의 사람들과 하나하나 악수를 해나가던 안철수가 마지막 추미애와 문재인 앞에서
몸을 싹 돌리더니 자기 자리에 앉아버렸다.
두 후보가 악수를 하는 장면을 찍으려던 주변의 사진기자들 사이에서
‘허, 참!’, ‘야, 심하다’, ‘저런 밴댕이!’, 등등의 탄식이 터져 나왔다.
그때 문재인이 자리에서 일어나 안철수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고,
당황한 안철수는 어정쩡하게 악수를 하더니 바로 시선을 다른 곳으로...
아마 이때 안철수는 머릿속에서 여러 가지 생각을 했나보다.
나중에 대선주자들이 한 사람씩 연단에 올라 짧은 연설을 했는데, 안철수는 말을 끝내고 자기 자리로 가면서
뜬금없이 문재인에게 악수를 청하고 앞 줄의 사람들과 하나씩 악수를 한 후 자리에 앉았다.
대통령이 국회 시정연설을 마친 것도 아니고 추모식에서 짧은 연설을 한 후 저게 무슨 시츄에이션이지?
주변의 기자들이 ㅋㅋㅋ 웃었다.
문재인이 연설 도중 여러번 박수를 받은 반면 안철수 연설 당시 누군가가 ‘거짓말 하지 마라“라고 소리친 건
현장 기사를 통해 많이 보도가 되었다.
어제의 짧은 장면을 통해 나는 ‘안철수는 이번 대선에서는 안되겠구나’ 하는 사실을 명확하게 느꼈다.
행사 내내 500밀리 망원렌즈를 통해 본 그의 눈은 계속 딴 생각 중이라는 사실을 알려줬고,
손과 발은 얌전히 있지 않고 계속 초조하게 움직였다.
평소 TV로 볼 때는 몰랐었는데 가장 거슬리는 것은 연속적으로 심하게 깜빡거리는 그의 눈이었다.
말로는 큰소리 치지만 그는 지금 불안한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 따뜻한 가슴을 가진 문재인이 많은 표를 얻기를 소망한다.
2등과의 격차가 좀 더 벌어져야 나도 내가 지지하는 심상정에게 마음 편하게 투표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