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다니엘 블레이크>를 보고
참 오랜만에 짬을 내어 아내 김미경 교수와
켄 로치 감독의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를 봤습니다.
개봉할 때부터 보고싶었던 영화였는데 겨우 오늘에서야 보게 됐습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다니엘 블레이크는 유능한 목수로 평생을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온 59살의 평범한 시민입니다.
하지만 갑자기 찾아온 심근경색으로 그의 삶은 송두리째 위협받기 시작합니다.
사실 그의 삶을 위협하는 것은 심근경색 자체라기보다는 그를 대하는 국가의 태도입니다.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온 한 시민의 어려움을 돌보기는커녕
국가는 온갖 절차를 동원해 그의 자존심을 무너뜨립니다.
국가의 정책을 집행하는 의료전문가는 ‘갑’으로 윽박지르고,
시민인 다니엘은 ‘을’로 한없이 왜소해집니다.
그런 와중에 다니엘은 두 아이의 엄마이자 싱글맘인 케이티를 만납니다.
다니엘은 자신보다 더 어려운 이웃인 케이티를 따뜻하게 돌봅니다.
구호식품을 나눠주는 마트에서 케이티가 통조림을 허겁지겁 몰래 먹는 장면은
우리의 삶이 어디까지 내몰렸는지 알려주는 충격적인 장면입니다.
어렵게 사는 이웃은 서로에게 따뜻한데,
국가와 정부는 시민의 불행으로부터 너무나 멀찌감치 떨어져 있습니다
사람에게 자존심은 생명과 같습니다.
자존심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국가는 어려움에 처한 시민의 자존심을 송두리째 짓밟습니다.
인간은 없고 제도만 있는,
국민은 없고 국가만 있는,
시민은 없고 공무원만 있는 영국의 현실이 가슴 아프게 다가온 이유는
우리의 현실과도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일 겁니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라고 벽에 휘갈긴 그 스프레이에서
관객들은 촛불의 모습을 보셨을 겁니다.
‘자존심’을 힘주어 말했을 때
행인들이 보여준 뜨거운 환호는 천만 촛불이 보여준 희망의 불빛과 다르지 않게 느껴졌습니다.
“나는 시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는 항고이유서가 가슴에 남습니다.
“모든 사람은
보험 번호 숫자도, 화면 속 점도 아닌, 존중받을 권리가 있는 고귀한 인격체다" 라는
인간선언이야말로 오늘날 우리가 간직해야 할 고귀한 정신입니다.
국가란 무엇일까,
정치란 무엇일까, 생각이 많아진 하루였습니다.
국민의 생명을 지키지도, 시민의 삶을 지키지도 못한다면
국가는 도대체 왜 존재하는 것일까요?
제가 정치를 시작한 이유가
상식과 정의가 통하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였습니다.
국민의 생명,
시민의 권리,
사람의 자존심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정치의 기본 소명이라는 생각을 다시 갖게 됩니다.
함께 잘사는 정의로운 나라를 만들기 위해
저부터 더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영화 이상의 영화를 만들어낸 켄 로치 감독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영화를 통해 세상을 조금이나마 더 낫게 바꾸려 했던 노감독의 열정에
칸 영화제는 황금종려상을 수여했습니다.
아울러 이런 좋은 영화들이 더 많이, 더 오래 상영되기를 바랍니다.
지방의 한 시민께서 이 영화를 보고싶은데
상영관이 없다고 안타까워하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제가 발의한 영화독과점 방지를 위한 영비법 개정안이
2월국회에서 통과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다니엘이 케이티의 딸에게 들려주던 카세트테이프에서 흘러나오던
음악이 참 좋았습니다.
‘항해 Sailing by’라는 곡이었는데,
로널드 빈지가 BBC 일기예보 시그널로 작곡한 것이라고 하죠.
올 한해가 아무쪼록 우리에게 미래를 위한 멋진 항해를 시작할 수 있는 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설 연휴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오늘 저녁 8시 라이브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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