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갈리안 인증]
하고 싶으나, 너무 젊은 처자들이 이제야 자기 발언을 시작하는 것이 기특하기는 하지만, 할매들이 뭐 해준 게 있다고
친한 척 하기도 머슥해서 지켜만 본다.
그런데, 가끔 가다가 남성들이 나한테까지 와서, '선생님 같은 분은 그렇지 않은데...'라며 말하기도 한다.
...
그래서, 내가 누구인지를 다시 한 번 알려드리고 싶다.
한 마디로 요약하면, 나는 강성페미들, 소위 말하는 꼴페미들의 원조괴수급에 해당하는 강강강성 페미니스트다.
이론가가 아니라 실천가에 해당하는, 무시무시한 꼴페미가 나다.
몰랐죠? ㅋㅋㅋ
내가 여성운동이라 할 만한 일에 뛰어든 건 네티즌이 되면서부터였다.
일반시민권은 없었으나 인터넷 시민권을 획득한 것이다. 나는 초기 네티즌 세상에서 보기 드물게 내 실명을 그대로
쓰면서 활동한 몇 안되는 여성이다.
1999년 무렵 시작한 게시판 활동은 은근히 성차별적이었다.
논리로만 대결한다는 암묵적 약속은 상대가 여성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 쉽사리 깨어지곤 했다.
그래서 닉네임으로 통하던 세상에서 여성들은 중성적이거나 심지어 남성으로 오인하기 쉬운 이름들을 썼다.
그 와중에 그 이름도 누가 봐도 보들보들한 [노혜경].
인터넷 세상의 초기단계에서 굵직한 문제들이 많이 터졌다.
군가산점 위헌 판결부터 시작해서, 운동사회 내 성폭력 실명 고발을 하고 나선 여성백인위원회 문제,
고 박남철의 여성시인 강간미수사건, 이는 문단권력 문제와 뒤얽혀 치사하고 복잡하게 전개되었고,
부산대 웹진 월장 사건, 또 두어 건 더 있는데 잘 기억은 안 나지만, 등이 연달이 터졌고, 삼십대 말 사십대 초반의 한창
논객으로 물이 오른 나이이던 나는 박사 과정에서 논문쓰는 대신 인터넷에서 쌈박질을 하게 되었지 뭔가.
굳이 표현하자면 1인 메갈리아 운영?
그 대부분의 활동 기록이 글로 제법 남아 있다.
[천천히 또박또박 그러나 악랄하게]라는 구호는, 나중에 명계남 명짱님이 이걸 노사모 집회에서 써먹는 바람에 정치적
구호로 전용되기도 했지만. 내가 쓴 책의 제목이다.
[아버지와의 전쟁]이라는 장으로 시작되는 책이다.
그 첫번째 글인 <말하면 죽인다? 침묵하면 죽는다!>는 [페니스파시즘]이라는 책의 표제글이었다.
성폭력으로 여성을 제압하려 드는 남성 시인과 그를 더러워서든 무서워서든 편리해서든 용인하고 은근슬쩍 비호하는
문단의 남성들과 그런 남성들이 무서워서건 잘보이고 싶어서건 맞서 싸우고자 나서지 않는 문단의 여성들을 향해 싸운
기록물이다.
메갈 사태를 보며, 오랜 세월동안의 안티 조선 운동이 2,30대 남성들에겐 아무 소용이 없었나보다 하는 자괴감이 살짝 들었다.
자주 하는 이야기지만, 내가 조선일보에 반대한 건 그 신문이 정치적으로 매우 올바르지 못한 때문이었다기 보다는,
그 신문이 자신들의 권력을 강고히 유지하려고 사용한 수법,
즉 문장 사용의 교묘한 비논리성이 한국인의 언어 생활에 미치는 해악이 크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오래 보면 생각하는 뇌가 마비된다고 나는 느꼈고, 특히 강자 그룹에 속했으나 실제로는 약자여서 언제고
스팔타쿠스가 될 수 있는 사람들에게, 너희는 쟤들이 아니거등? 이라는 수법에 넘어가기 딱 좋게 군다고도 느꼈다.
메갈리안은 특정할 수 있는 그룹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억눌려왔던 여성들의 말문이 대표적으로 터져나온
사건의 이름이기도 하다. 즉,
귄터 그라스 식으로 "아가리를 벌려" 외치는 모든 사람은 메갈리안일 수밖에 없다. 남녀 불문하고.
여기에 대응하여 각종 게시판이나 담벼락에서 글쓰는 남성들이 구사하는 수법은 참으로 언제나 치사할 정도로 똑같다.
"진정한 페미니스트는...", "너는 아니지만 꼴페미들이....", 라는 식으로 주체를 규정 지어주고, 즉 일단 분할해주고 말하거나.,
메갈들의 이러저러한 말은 나쁘다, 틀렸다, 라고, 딱 그 말만 놓고 보면 분명 문제인 말들을 가지고 온다.
이게 왜 문제인가 하면, 호명하는 권력, 대화 주제를 특정하는 권력을 행사하고자 하는 욕구 자체가 메갈이 타도하고자
하는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다.
평론을, 그것도 여성시운동의 일환으로 평론을 시작했을 때, 별것아닌 문장 한 줄을 놓고 수십번 쓰고 지우고 해야 했다. 도무지 젠더적으로 정당한 (정치적으로 정당한을 넘어 젠더적으로 정당해야만 한다) 언어를 찾아낼 수가 없어서였다.
이따금 내가 쓰는 글이 난폭하고 거칠다는 평가를 듣곤 한다.
책 쓰기가 두려워진 가장 큰 이유겠다.
하지만, 섬세하고 정교한 글쓰기를 통해 내가 나도 모르게 관철해내는 명징한 그 무엇은 언제나 남성 일반이
먼저 수혜자가 되는 깔끔하고 단정한 세계다. 아, 싫었다!!!!
방송중에 내가 내뱉는 말이 얼마나 슬그머니 부드럽고도 강했던지 기억하시는 분들은 아실 거다.
음성 지원되는 내 글이 정말 구어체이고, 정말 여성적이고, 정말로 논리가 아니라 심리적이라는 것을.
나는 철저히 페미니스트이기 때문에, 여성적 원리로도/논리가 아니라 원리로도 소통 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는 거다.
나는 나쁜 여자도 아니고 젊은 여자도 아니고, 철의 여인도, 대찬 여자도 아니다.
나는 수식어없이 그냥 여자고, 사람이다. 모든 남자들이 수식어없이 그냥 사람이듯이.
메갈리안들에게 나는 참으로 고맙다.
십수년전 한 줌 선배들이 꼴페미소리 들어가며 외치고 외친 광야의 소리가 잠꼬대가 아니게 만들어줘서.
그리고 소년들아, 청년들아.
너희들이 맞써 싸워야 하는 건 메갈들이 말하는 내용을 몸소 실천하여 여성들을 괴롭힌 그 어른 남자들이지 메갈리안들이 아니야. 알고 보면 너희들이 피해자야.
어른 남자들이 몸소 실천해온 각종 성폭력과 성차별 때문에 너희들 또래 여성들은 결혼도 연애도 싫다잖니?
그런데 그걸, 너희 젊은 여자들이 잘못 생각하고 있어, 라고 백날 말해봐라.
니들도 더 나이들면 저따위 짓을 하고 살고 싶다는 소리로 밖에 안들려.
왜 니들이 저지르지 않은 일들에 대해 대신 변명하고 생뚱맞게 매품팔고 그러니? 니들이 흥부야?
출처, 노혜경 시인 페북 https://www.facebook.com/madra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