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한 살 씩 더 먹을 수록 마음이 더 밀도가 낮고 종잡을 수 없어집니다. 집중이 잘 안 됩니다. 프로기사들은 전성기가 20대 초반 정도이던데, 두뇌의 사용에도 신체 전성기와 비슷한 전성기라는 것이 있는 것 같습니다. 두뇌를 집중적으로 사용하면 예상 외로 많은 에너지가 듭니다. 공부를 서너시간 아주 집중해서 하면 배가 무척 빨리 고파져서, 빵이나 단 커피 등으로 포도당을 보충해주지 않으면 머리가 잘 안 돌아갑니다. 이런 고도의 집중 상태에서는 한 끝차이가 중요하므로 타고나는 부분 역시 무시할 수 없어요. 누구나 열심히 연습해서 전속력으로 달리고 있다면, 이제 다리가 길고 근력이 좋은 사람이 앞서가게 되는 거지요.
나이가 들수록 이런 고도의 집중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생리적으로 프로그램 된 어떤 부분도 있는 것 같아요, 사회적인 위치나 일상의 관심사의 변화만 원인이 아니라. 대신 상황을 전반적으로 보는 능력이 조금 더 늘어나는 것 같아요. 저는 집중력이 가장 좋은 10대 후반에도 30분 공부 하고 10분 다른 책을 보는 사람이었지만, 지금은 10분 공부하고 10분 노는 지경에 이르렀군요.
저는 분류와 정리보다 통합과 직관에 의존하는 편이라는 걸 최근에 깨닫고 있어요. 이건 MBTI 같은 걸 할 때도 물어보는 질문인 것 같은데, 사람이 언제나 자기 성향을 객관적으로 알 수 있는가 하는 데 저는 좀 회의적입니다. 하여튼, 저는 저도 모르게 쏟아지는 아주 많은 정보를 대충 머릿속에 구겨넣고, 무의식 속에서 순간적으로 그 놈들을 이용해서 판단을 내립니다. 기억할 수 있는 작은 부분으로 잘라서 가능한 양만 분류해서 정리해 집어넣는 사람이 아니라요. 이런 방식이 제 전공에 별로 적합하지는 않은데, 시간이 좀 걸리지만 결국 다른 부분에서 좋은 성과로 연결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잘 되게 만드는 것은 저의 몫.
아직도 제가 어떤 사람인지 완전히 알지 못한다는 건 참 신기한 일이군요. 우리 고양이에게도 날마다 새로운 부분이 보입니다. 오늘 그는 처음으로 두부를 약간 먹었습니다. 생각보다 입에 맞는 것 같군요.
다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