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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공녀 세-라"를 보고 느낀 점

고양이10 조회수 : 3,948
작성일 : 2015-12-06 21:19:01
[스포일러 포함]

어렸을 때 동화책에서 읽었던 것 같고, TV 애니메이션으로는 본 것 같기도 안 본 것 같기도 합니다. 소공자를 TV에서 본 건 기억하는데, 소공녀는 봤는지 안 봤는지... 어쨌든 며칠 전에 소공녀 세-라 애니메이션을 봤습니다. 1985년에 일본에서 만든 세계명작극장 시리즈입니다.

우선 보기 전에 기억하고 있었던 건, 세-라라는 부잣집 아이가 여학원에서 공주 대접 받으며 살다가, 갑자기 아버지가 죽고 거지가 되면서 원장에게 학대를 당한다. 그러다가 나중에 어떻게 다시 아버지의 재산을 찾아 부자가 된다, 여기까지였으며, 자세한 결말은 잊어버리고 있었습니다. 이 상태로 스포일러를 피하기 위해 웹을 읽지 않고 애니메이션을 쭉 봤습니다.


===세 명의 중심 악역===
[민친 선생] 정신에 심각한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그냥 성격이 나쁜 게 아니고, 뭔가 피해망상에 자격지심도 있는 것 같고요, 자기 마음에 들 때는 갑자기 자상한 얼굴을 하다가, 갑자기 세-라가 한 별 것 아닌 일에 이를 부득부득 갈면서 화를 주체 못하기도 합니다.

[요리사 제임스, 하녀 감독 모리] 이 둘은 그냥 성격이 나쁜 놈들이더군요. 아주 이기적이며, 자신의 부하이면서 어린 아이들인 세-라와 베키를 철저하게 부려 먹는데, 정상인이면 그 아이들의 고통을 눈 앞에서 보면서 저렇게는 못할 듯한데도 그렇게 하는 것을 보면 남의 고통을 인지하지 못하는 소시오패스일 수도... 어쨌든 민친보다 이 두 명이 더 꼴 보기 싫고 벌을 받았으면 했습니다. 끝까지 아무 벌도 안 받더군요.


===기타 인물===
[시-저] 고양이인데, 별로 이야기 전개와 아무 상관도 없으면서 (단 한 번, 옷에 잉크를 쏟은 적 외에는 있으나마나한 존재)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나옵니다. 그런데 생긴 것도 그렇고 행동도 그렇고 귀엽더군요. 그냥 보고 있으면 재미있습니다.

[아-멘가-드] 교수의 딸로 세-라의 친구입니다. 아버지가 교수면 상당히 먹고 살만한 집안이었을 텐데 (이미 부잣집 딸들 기숙학교에 와 있는 것 자체가 부자라는 증거), 친구가 거의 종처럼 일하고 있는 걸 보면서, 아버지에게 말해서 적어도 하녀 일은 안 하고 지낼 정도의 도움을 줄 수는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계속 들었습니다.

[베키] 영국의 시골에서 올라온 하녀입니다. 하지만 일본어이다보니, 뭔가 일본 동북 지방 비슷한 억양을 쓰는데 어느 지방 억양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제게는 뭔가 이 쪽 억양은 좀 없어 보이고 무식하게 들리더군요. 하늘처럼 보이던 세-라가 갑자기 자기와 같은 레벨로 추락을 했는데 끝까지 お嬢様라고 부르며 따르고 도와 줍니다. 이 인물의 팬이 상당히 있나 봅니다. 베키가 없었으면 세-라는 죽었을 겁니다 (말 그대로).


===기억에 남는 장면===
아침부터 세-라가 밥 먹을 시간도 없이 계속 혹사시킨 요리사 제임스 등은, 저녁이 다 되어 비가 오는데 세-라에게 감자가 없다고 감자를 사 오라고 합니다. 베키가 자기가 대신 갈 테니, 세-라에게 밥이라도 먹고 일하게 해 달라고 하자, 갔다 와서 먹으면 되는 데 말이 많다고 그냥 보냅니다. 가 보니 가게는 이미 다들 문을 닫았고, 몇 끼를 굶고 빗 속에서 우산도 없이 한 쪽 신발은 벗겨진 채로 런던을 돌아다녀 겨우 감자를 삽니다. 영양결핍과 중노동으로 눈 앞이 어지러운 걸 참으며 무거운 감자 바구니를 들고 힘들게 걷는데 결국 돌부리에 걸려 쓰러져 빗길에 감자가 다 흐릅니다. 눈물을 참으며 감자를 주으려고 노력하는데 힘이 없어 잘 안 됩니다. 마침 그 근처에 무표정한 영국 근위병이 있었습니다. 아마 근무 시간에는 어떤 말도 하면 안 되고, 표정도 보이지 않아야 하는 규칙이 있나 봅니다. 잠깐 망설이는 듯 눈동자만 움직이더니, 달려 와서 얼른 감자를 주워 담아 주고, 다시 제 자리로 재빨리 가서 무표정하게 섭니다.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중노동을 하다가 병에 걸려 불도 없는 찬 다락방 침대에서 정신을 잃고 앓고 있는 세-라에게, 이웃집 부자 신사는 뭔가 도움을 주기로 결심합니다. 그리고는 하인들을 시켜, 다락방 창문으로 몰래 들어가, 난로의 불을 피워 주고, 따뜻한 모포를 깔아 주고, 맛있는 식사를 차려 놓습니다. 세-라와 베키가 일어나서 둘이서 마법이 일어났다며 기뻐합니다.  

이런 장면들은 우리 인간의 뇌에 하드코딩된 아이들을 도와 주려는 감정을 잘 보여 주는 게 아닌가 합니다. 위의 경우에, 세-라를 도와 주어도 얻을 건 아무 것도 없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마 뭔가를 해 주지 않고는 견디기 힘들 겁니다. 

===아동 학대와 그 당시 시대정신===
물론 애니메이션을 보기 전에 이미 세-라가 고생을 한다는 내용은 기억하고 있었습니다만, 실제로 애니메이션을 보면 그 정도가 매우 심합니다. 정신적으로 괴롭히는 것도 많지만, 일 자체와 그 강도가 장난이 아닙니다. 애니메이션이라고 알고 봐도 보고 있는 사람이 화가 날 정도입니다.

10대 초반의 아이들이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중노동을 합니다. 아이들을 혹사시키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그 주변 인물들도 불쌍하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적극적으로 말릴 생각은 안 합니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불과 100여 년 전에 저런 일이 실제로 많이 벌어졌을 걸 생각하면 그 당시에 살았던 사람들이 불쌍하고, "정상"의 기준이 바뀌는 것도 빠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말===
세-라가 앞서 말한 세 악인을 왠지 용서할 것같은 불길한 생각이 들었고 용서하지 않았으면 했습니다. 결론은... 용서하더군요. 물론 그 세 명이 뭘 반성하거나 정신을 차린 것도 아닙니다. 민친선생은 충격을 받고 멍하게 있긴 하지만, 자기 잘못을 반성하거나 앞으로 아이들을 괴롭히면 안 되겠다 이런 생각을 한 게 아니고, 내가 돈다발을 잡을 기회를 놓쳤구나, 이렇게 자책하고 있는 것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요리사 제임스 등은 어떠한 물리적, 정신적 처벌도 받지 않습니다. 그런데 세-라는 민친선생한테 10만 파운드 (검색해 보니 약 300억 원 정도로 추정하는 사용자들이 있네요)를 기부하고 다시 그 학교에서 공부하기로 합니다. 마음에 안 드는 결말입니다. 저 세 명은 세-라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게 돈 때문이지 조금도 반성을 한 게 아닌데 말입니다. 

검색을 해 보니, 이 건 애니메이션에서 각색한 것이고, 원작에서는 세-라는 학교를 버리고 인도로 떠나고, 민친선생은 망해서 잡일을 하는 빈민으로 전락한다고 하더군요. 그 게 더 현실적인 결론일 겁니다, 세-라가 인간의 감정을 뛰어 넘는 성인군자가 아니라면.

===결론===
이야기를 어릴 때 들어서 아시는 분도 보시면 뭔가 느끼는 바가 많은 애니메이션이 아닐까 합니다. 그리고 일본어 공부하시는 분은 세-라의 고급 お嬢様 말투를 배울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세-라의 "まあー"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IP : 118.41.xxx.208
8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15.12.6 9:40 PM (14.47.xxx.3)

    오호 어른이 되어 보는 그 당시 애니메이션은 느끼는바다 다를거같아요.
    저는 일본어 못해서 그냥 최근에 좀 보다 말았는데
    결말이 또 용서 라니 별로네요 ㅎㅎㅎ

    아동학대 심각한거 맞고요.
    소시오패스 정의도 맞는거같아요

  • 2. 음....각색해서 다른 나라로
    '15.12.6 10:01 PM (180.229.xxx.3)

    이야기가 들어올때 학교나 교육부측에서 손 봤겟지요..
    부족하고 문제 있었어도 선생님도 사람이니 그럴 수 있다..
    돈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으며.. 나보다 약자를 괴롭히는건 어찌 보면 그시대에 당연하게 받아지던 논리?
    세라가 아버지에게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아이다 보니...사람 미워하는것도 한계가 있는거 같아요
    원글님이 다른 사람들은 그냥 넘어갔을 인물의 세세한 심리묘사와 인간의 탐욕스러움을 정말 잘 분석해서
    글을 써주셨네요....저도 초등학교때 읽었던 명작소설중에 소공녀가 제일 감정이입이 되더라구요

  • 3. 원작...
    '15.12.6 10:20 PM (122.128.xxx.177)

    원작(소설)에선 세라는 학교를 버리고 인도에 가지 않고 근처에 살죠. 그래서 세라가 마차를 타고 가는 것을 우연히 볼 때마다 민친 선생 기분이 나빠지죠 ㅎㅎ 그리고 민친 선생은 몰락하지 않고 계속 학교를 경영하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기부금까지 내고 학교로 돌아간다니 그 애니 너무 마음에 안 드네요. 원작에선 민친선생이 학교에 돌아오라고 설득하러 갔을 때 세라가 단호하게 안 간다고 했던 듯~

  • 4. 고양이10
    '15.12.6 11:02 PM (118.41.xxx.208)

    애니메이션은 이랬는데 원작은 저랬다고 했을 때 원작은 미국인 소설가가 쓴 원작 소설을 말하는 것입니다. 애니메이션은 일본에서 방영된 것이라 우리 나라에서 고친 게 아닙니다. 영어 원작을 읽어 볼까도 하는데, 위키에서 읽은 내용으로는, 원작에서는 인도로 간고 원장은 몰락한다고 했습니다. 물론, 판본이 몇 개 있고 연극도 있고 해서 결말이 살짝 다른 게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 5.
    '15.12.6 11:30 PM (116.37.xxx.87)

    소공녀 너무 좋아하는 책이라 저장합니다

  • 6. 그렇죠
    '15.12.6 11:55 PM (124.50.xxx.70)

    당시 아동인권이란게 여성만도 못했으니까요.
    탄광이나 공장에서 만4살 아이들이 못먹고 못자면서
    노동했던 시절이니...그냥 사람들 인식이 작은 어른 취급을 했죠. 세라의 불행한 사건이었을 뿐 심각한 아동학대라는 점도 현대에 들어와서나 인지된 걸거에요.
    당시 부모 잃거나 빈민가의 아이들의 삶이란 어미 잃은
    동물새끼들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던것 같아요.
    현재도 아프리카 같은 곳은 달라지지 않았죠.

  • 7. 계몽사전집
    '15.12.7 5:50 AM (1.225.xxx.212)

    이것도 일본판 번역일텐데 결말이 생각이 안나요.
    갑자기 가난해진 세라, 조금씩 부유해지는 세라의 환경이
    어린마음에도 신기하고 -서양식의 가난? - 베키라는 어린하녀가 더 불쌍했어요.
    옆집 인도신사와 원숭이, 동거하는 쥐 멜키세덱,
    배운거 다 잊는거같다고 헨리8세 부인 수 를 외우던
    기억이나요.
    어린이명작동화 만화 보며 우시던 우리엄마 ㅎㅎ

  • 8. 버넷 여사가 쓴 원작
    '17.1.27 2:03 AM (203.81.xxx.74)

    소공녀 좋아해서 무삭제판으로 여러번 읽은 사람인데요

    미국소설가(버넷 여사.. 비밀의화원 소공자도 썼죠)가 쓴 원작 내용이 저 위에 원작...님(122.128님) 말이랑 똑같아요. 인도로 가는게 아니라 아빠친구 인도신사랑 그 민틴학교 근처에서 살고요. 베키는 본인 몸종으로 데려가 버려요. 그래서 민틴교장이 가끔 베키가 기쁘게 시중들고 세라가 지나가는 모습 보며 속 뒤집어져하고요(반성 네버..)

    세라가 부유한 상속녀 다시 됐단 말 듣고 다시 비굴하게 돌아와 달라호 하지만 세러가 단호하게 거절하고요. 이게 사이다 포인트죠~~

    다만 민틴교장 동생 아밀리아 선생이 상바보로 언니의 가혹행위가 마음에 안들지만 언니위세에 눌려 새라 잘 안돌봐주다가 마지막에 새라 놓치고 나서 갑자기 바른 말 따박따박하면서 난 사실 언니가 걔한테 좀더 잘해주길 바랬다고... 돈굴러오는 학생이 사라져서 아쉽겠지만 그건 언니 자업자득이라고 민친교장은 동정심도 없고 돈밖에 모르는 사람이라고.. 하니까 자기돈생 바보로만 알고 캐무시하던 민친이 얘가 다른 사람 앞에서 또 바른말 할까봐 동생뉸치도 약간은 보게 돼요

    일본 애니;; 내용 마음에 안드네요. 원작을 읽으면 항상 당당한게 소공녀의 포인트인데;;;; 호구병을 만들어놨네요;;;;;;

    자기도 굶으면서도 공주답게 살려고 더 굶은 거지에게 빵을 주는 진정한 공주님인데.. 공주는 옷을 공주처럼 입어서가 아니라 감옥에 있어도 공주답게 행동하고 시련을 견디고 품위있게 행동하는 게 진짜 공주라고 말하는 소공녀님이 원작의 핵심린데;;;;;;;: ㄹ혜양에게 한번 권해주고 싶다는. 공주가 장래희망이면 좀 보고 배우시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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