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파' 하판락의 고문 중 가장 지독한 고문은 '착혈 고문'이었다. 하판락은 자백을 거부하는 독립운동가의 혈관에 주사기를 삽입한 후 하나 가득 피를 뽑았고, 그렇게 뽑아낸 피를 벽과 피해자의 몸에 마구 뿌렸다고 한다. 공포와 절망을 주기 위한 2차 고문이었다. 이 같은 하판락의 고문으로 인해 여경수 등 독립운동가 3명은 목숨을 잃었고, 다행히 살아 남은 이 역시 신체 불구 등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는 것이다.
이런 악행을 저지른 하판락이 죽은 때가 2003년 9월이었다. 그는 당시 92세의 나이로 천수를 누렸다. 또한 해방 후 이승만 친일 권력하에서 엄청난 부를 축적하여 내가 2006년 대통령소속 친일 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 조사관으로 일할 당시 그의 후손들은 그가 남겨 놓은 엄청난 유산 덕분에 넉넉한 삶을 살고 있었다. 참으로 개탄스러운 사실이었다.
이런 악행을 저지른 하판락이 죽은 때가 2003년 9월이었다. 그는 당시 92세의 나이로 천수를 누렸다. 또한 해방 후 이승만 친일 권력하에서 엄청난 부를 축적하여 내가 2006년 대통령소속 친일 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 조사관으로 일할 당시 그의 후손들은 그가 남겨 놓은 엄청난 유산 덕분에 넉넉한 삶을 살고 있었다. 참으로 개탄스러운 사실이었다.
6·25 전쟁영웅 백선엽, 친일파 백선엽
매년 6월 25일이면 백선엽, 그의 이름 석 자는 거의 모든 방송과 보수 신문에 빠지지 않고 나온다. 1950년 한국 전쟁 당시 많은 공을 세웠다며 그를 '살아있는 전쟁 영웅'으로 추앙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한민국과 국방부가 그에게 예우하는 사례를 하나하나 살펴보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먼저 계룡대 육군본부에서 운영 중인 '백선엽 장군실'이다. 육군은 살아있는 백선엽의 이름을 따 사실상 그의 기념실을 만들었다. 지난 2005년 3월 개관한 것인데 이 당시 친일 논란이 있는 생존 인물의 이름을 따 이 같은 공간을 만드는 것에 대해 비난 여론이 일자 이후 육본은 2011년 '안중근 장군실'을 개관하기도 했다. '백선엽 장군실' 유지를 위해 '안중근 장군실'을 만든 것 아니냐는 잡음이 있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한국전쟁 당시 백선엽이 사단장으로 근무했던 육군 1사단은 그의 동상을 세웠다. 생존해 있는 인물의 동상을 세운 것도 특이한 일인데 경기도 파주 시장 역시 이러한 시도를 하다가 결국 여론의 역풍을 맞고 포기했다. 동상도 세웠으니 그의 이름으로 만든 상도 뒤따랐다. 2013년 9월, 한미동맹 60주년을 맞아 그의 이름을 따 제정한 '백선엽 한미 동맹상'이 그것이다.
매년 6월 25일이면 백선엽, 그의 이름 석 자는 거의 모든 방송과 보수 신문에 빠지지 않고 나온다. 1950년 한국 전쟁 당시 많은 공을 세웠다며 그를 '살아있는 전쟁 영웅'으로 추앙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한민국과 국방부가 그에게 예우하는 사례를 하나하나 살펴보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먼저 계룡대 육군본부에서 운영 중인 '백선엽 장군실'이다. 육군은 살아있는 백선엽의 이름을 따 사실상 그의 기념실을 만들었다. 지난 2005년 3월 개관한 것인데 이 당시 친일 논란이 있는 생존 인물의 이름을 따 이 같은 공간을 만드는 것에 대해 비난 여론이 일자 이후 육본은 2011년 '안중근 장군실'을 개관하기도 했다. '백선엽 장군실' 유지를 위해 '안중근 장군실'을 만든 것 아니냐는 잡음이 있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한국전쟁 당시 백선엽이 사단장으로 근무했던 육군 1사단은 그의 동상을 세웠다. 생존해 있는 인물의 동상을 세운 것도 특이한 일인데 경기도 파주 시장 역시 이러한 시도를 하다가 결국 여론의 역풍을 맞고 포기했다. 동상도 세웠으니 그의 이름으로 만든 상도 뒤따랐다. 2013년 9월, 한미동맹 60주년을 맞아 그의 이름을 따 제정한 '백선엽 한미 동맹상'이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