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부터 우리나라의 전통은 비교적 여성의 지위가 높았습니다.
여성을 하대하는 일본이나 중국, 그리고 중세 전까지 여성을 역시 하대했던 서양보다
고구려, 신라, 백제 삼국시대부터 고려, 조선전기까지 비교적 여성을 존중하고 여성의 지위가
높았던 게 우리의 전통이었죠. 그리고 중국과 차별화되는 점이기도 했죠.
그래서 조선전기까지만 해도 재산상속에 있어서도 딸은 차별을 받지 않았고
만약 아들이 없으면 딸이나 사위, 외손이 제사와 재산을 물려받았고
조선의 양반들은 어린 시절 외가에서 태어나 외가에서 자랐습니다.
이 풍습이 상당히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임신했을 때 스트레스를 덜 받아야 할
환경이 낯선 시댁보다는 친숙한 친정이 훨씬 낫고 태아에게도 낫고
태교나 뱃속에 있는 자손의 성격에도 이 편이 낫다는 생각입니다.
즉, 시집살이보다 처가살이의 전통이 더 깊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아이들이 크면 시댁 근처로 옮기긴 했지만요.
그랬던 오랜 전통은 임진왜란 이후 지배층 사대부가 편집증적으로 성리학에 집착하고
예법에 집착하면서 서서히 변질, 붕괴됩니다.
딸은 서서히 모든 권리에서 제외되었고 종손과 다른 자손의 차별이 시작되었고
여성의 지위가 하락합니다.
그래도 사대부들은 집안에서 부인에게 존대말을 쓰는 등 기본 예의는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가 시작되면서 유별나게 여자를 천대하는 일본의 풍습이 흘러들어오고
육이오전쟁을 거치면서 한국은 세계에서 여성을 하대하는 나라 중 하나가 되었어요.
그리고 원래의 전통은 씻은 듯 사라지고 지금 이 모습이 전통인 것처럼 당연시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중국 상하이 신혼부부 모습을 보았는데, 맞벌이하고 들어와 남자가 요리하고 청소하는 게 일상화된
모습에서, 맞벌이해도 여자가 가사를 떠맡고 시댁 제사나 시댁 뒷치닥거리의 의무까지 지는
한국의 현실이 교차됩니다.
명절의 며느리 노동 풍습과 없어져야 할 제사 풍습과 아직도 갈 길이 머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