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세좋게 나왔으나 카페 문닫고 나니 왠지 기가 팍 죽고 날씨도 춥고 해서 억지로 억지로 시간을 끌며 거리를 헤매다가 몸살이 나는듯할때쯤 집으로 돌아갔어요. 모양빠지죠? ㅠ.ㅠ 심지어 새벽에는 기침까지 쿨럭쿨럭..오늘은 열도 나요.
집에 가보니 남편놈은 이미 오래전에 잠들어서 푹푹 자고 있고 애는 눈치보면서 엄마를 기다리고 있더군요. 짜증섞인 얼굴과 안심하는 얼굴이 교차했어요. 제 속을 긁어대는 말을 하면서 한다는 소리가, 자기는 엄마가 집에 돌아와서 고맙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는데 엄마는 자기 마음 몰라준대요. 결국 가출을 완성하지 못한 탓에 아침에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데 저혼자 부어터져있으면서 자는척하는데 남편이 부시럭부시럭 역시 불만에 찬 얼굴로 새벽에 일어나서 아침을 간단히 차리더군요. 자는척하는 저를 깨워서는 얘기좀 하자고 하더니, 뭐 대단한 일이라도 하는 양 오늘과 주말에 자기가 뭐뭐는 해결하겠다고 하더라구요. 난 지금까지 마치 싱글맘처럼 나혼자 일하면서 살림하면서 해결하면서 애 키우면서 살았는데 고작 그 두 개로?
전 가을을 타는 것 같지는 않은데 뭔가 올것이 온 것 같아요. 정말 꼬박꼬박 집에 뛰어들어왔는데 이러고 있네요. 오늘도 집에 안가고 바깥에서 저혼자 저녁먹었어요. 부모도 형제도 말고 남편도 말고 자식도 말고, 오직 나혼자만을 위한 시간을 꼭 갖고 하루에 단 십분이라도 나혼자만을 위해 행복해야겠다는 다짐이 막 생깁니다. 왜 쇼핑을 하나도 안했나 생각해보니 직장과 가정을 병행하느라고 늘 급히 다녀야해서 쇼핑할 시간도 없었고 늘 단화에 통짜 원피스만 입었어요. 아마 옷에 빵꾸나도록 입은 사람은 저밖에 없을거예요.
동네를 천천히 걸으면서 참 많은 생각이 듭니다. 제가 살고 있는 동네 구석구석에 이렇게 가게가 많은 줄도 몰랐어요. 늘 정신이 없고 힘들었고 피곤했기에, 얼른 집에 가서 저녁챙겨야했고, 학원도 챙겨야했어요. 남편이 총각같은 자유를 누리며 살던 동안 저는 인생 막 피폐해졌더라구요.
어제 댓글에 여행다녀오라는 말씀이 너무 마음에 남아서 이번달 중에 제주도라도 다녀오려고 막 검색을 했어요. 하루를 자고 오더라도 이 생활에서 좀 벗어나려구요. 어젠 82님들 정말 너무나 고마웠어요. 모니터로 서로 만나고 있지만 그냥 가까이서 누군가가 제 등을 토닥토닥해주는 느낌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