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퉁이 내용을 무조건 반복해서 달달 외우는 역사과목.. 교육적 의미가 없다
‘하나의 역사’를 가르쳐야 혼란이 없다?
전문가들은 ‘하나의 역사’를 가르치는 국정 교과서가 도입되면 학교 현장에 ‘최악의 혼란’이 현실화할 위험이 크다고 경고한다. ‘국가가 정리한 승자 중심의 단일 역사관’만을 가르치게 되는 근본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5년 단임제인 우리나라에서 정권이 바뀔 때마다 한국사 교과서 내용이 바뀌는 일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은 탓이다. 국정 교과서란 필자 구성, 집필, 수정·개편 등 모든 권한을 교육부가 가진 교과서다. 이런 사정을 고려할 때, 보수 정부 입맛에 맞게 만든 교과서를 진보 정부에서 그대로 쓸 가능성은 낮다. 진보 정부가 만든 교과서를 보수 정부가 그냥 둘 가능성은 더욱 낮다.유신 시절 발행된 국정 교과서가 5·16 군사쿠데타를 왜곡한 선례를 보면 기우가 아니다. 원래 5·16 쿠데타 ‘혁명 공약’의 여섯째 항목은 ‘우리의 과업이 성취되면 참신하고도 양심적인 정치인들에게 언제든지 정권을 이양하고 우리의 본연의 임무에 복귀할 준비를 갖춘다’였다. 하지만 1979년판 중·고교 국정 국사 교과서에선 이를 ‘우리의 과업을 조속히 성취하고 새로운 민주공화국의 토대를 이룩하기 위하여 우리는 몸과 마음을 바쳐 최선의 노력을 경주한다’고 바꿔놨다. 박정희 당시 대통령이 민정 이양 약속을 뒤집고 대선에 출마하면서 변조한 항목을 그대로 교과서에 실은 것이다.
국정 교과서로 수능을 치르면 부담이 없다?
한국사는 2017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부터 필수 과목이 된다. 일반의 생각과 달리, 현행 수능에선 국어·영어·수학도 필수가 아니다. 한국사만 필수다. 국정화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국정 교과서 하나로 통일해서 배우면 여러 개의 검정 교과서를 공부할 필요가 없고, 수능 시험 부담도 줄어든다고 주장한다.그러나 오랫동안 한국사를 가르쳐온 교사들은 “오히려 그 반대”라고 지적한다. 수능은 모든 수험생이 치르는 국가 수준 시험이다. 검정 교과서가 여러 종류라면 모든 종류의 교과서에 공통적으로 나오는 핵심 내용 중심으로 문제를 출제할 수밖에 없다. 반면 국정 교과서 하나뿐이면 교과서 한 귀퉁이에 나오는 지엽적인 내용도 출제할 수 있다. 국정 교과서로 중·고교 역사를 배운 세대가 ‘태정태세문단세~’ 하는 식으로 조선 왕조의 임금 이름 순서를 필수로 외운 과거를 떠올리면 된다. 수험생 부담이 더욱 커지는 건 당연하다. 조한경 전국역사교사모임 대표는 “과거 국정 교과서 시절 국사 시험은 지엽말단적인 내용까지 공부해야 고득점을 받았다”며 “국정 교과서로 바뀌면 학생들은 재미없는 내용을 달달 외워야 하는 부담이 더 늘어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