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 앙뜨와네트’와 ‘마리아 테레지아’
2015.06.30
지난 일요일에 뮤지컬 ‘엘리자벳’을 보고 와서 어제는 뮤지컬의 배경이 되었던 합스부르크家와 헝가리 역사를 다시 찾아보고 있었습니다. ‘엘리자벳’이 어떤 인물이었는지 궁금했고, 뮤지컬을 조금 더 이해하는데 도움을 받을까 생각해서였죠.
그런데 어제 이종걸 새민련 원내대표가 박근혜 대통령을 뜬금없이 프랑스 혁명 당시 루이 16세의 왕비였고 사치로 프랑스 국민들의 원성을 사고 멍한 인물로 묘사되는 ‘마리 앙뜨와네트’로 비유하면서 논란이 되었죠. 논란이 일자 이종걸은 오늘에는 자신이 착각하여 ‘마리아 테레지아’를 잘못 말한 것이라고 해명했습니다.
http://news.ichannela.com/politics/3/00/20150630/72186584/1
저는 이종걸의 해명을 보고 속으로 많이 웃었습니다. 그냥 해명을 하지 말든지, 아니면 ‘마리 앙뜨와네트’로 계속 몰아가든지 하면 시간이 지나 잊혀질 일인데, 박근혜를 ‘마리아 테레지아’ 급으로 격상시키는 자뻑을 해 계속 논란을 이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마리아 테레지아’
저도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하는 입장이긴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마리아 테레지아’만큼 훌륭한 인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종걸은 마리아 테레지아를 전제 군주(왕후)로 절대적 권력을 쥐고 철권통치를 한 인물로 생각해 지금 박근혜가 여당을 압박하는 모양새를 ‘마리아 테레지아’의 모습으로 비유하려 했던 모양인데 이는 이종걸이 역사(서양사) 이해가 부족해서 나온 헛발질입니다.
‘마리아 테레지아’는 아버지 카를 6세가 아들이 없어 합스부르크 왕가의 유일한 상속녀였으나 당시 여자는 상속을 받을 수 없다는 살리카법 때문에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여성이 제위에 오를 수 없는 신성로마제국 황제 자리에는 남편인 프란츠 슈테판을 앉히고, 뛰어난 정치적 감각과 외교술로 유럽을 통치한 여제였지요.
이종걸은 박근혜 대통령을 비하하고 조롱하려 했지만 오히려 박근혜 대통령을 칭송하는 결과가 되어버린 것이죠. 아마 이종걸이 마리아 테레지아에 대해 자세히 알았다면 저런 자뻑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마 제 생각에는 이종걸이 마리아 테레지아를 몰랐을 리는 없는 것 같고, 다만 당시 전제 군주로서의 통치방식이 오늘에서는 맞지 않는데 박근혜 대통령이 시대착오적으로 마리아 테레지아와 같이 전제적 방식을 동원하는 것이라고 비난하려 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종걸이야말로 역사인식의 빈곤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죠. 각 시대는 그 시대에 맞는 방식이 있습니다. 세종이 전제 군주로서 한 행위를 오늘에 와서 오늘의 기준으로 비판할 수 없듯이 18세기 마리아 테레지아의 통치방식은 그 당시의 기준에서 평가할 문제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오늘의 기준, 우리 국민들이 합의한 방식, 헌법을 어떻게 훼손했는지 지적한다면 이종걸의 비판이 설득력이 있겠으나 뜬금없이 ‘마리 앙뜨와네트‘나 ’마리아 테레지아‘를 들먹이는 것은 그냥 대중들을 선동하기 위한 수사에 불과할 뿐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21세기판 대한민국의 ‘마리아 테레지아’가 된다면 진짜 성공한 대통령이 되는 것이고 대한민국이나 우리 국민들에게도 엄청난 축복이 될 것입니다.
참고로 ‘마리아 테레지아’와 ‘마리 앙뜨와네트’ 이야기를 더 해보록 하겠습니다.
테레지아는 남편 프란츠와 19살 때 연애 결혼하고, 프란츠와 사별하고 난 뒤에도 15년간 상복을 입고 기렸을 정도로 애틋한 사랑을 했고 무척 가정적인 인물이었다고 합니다. 프란츠와 16명의 자녀를 낳았고, 그 중 막내 딸이 그 유명한 ‘마리 앙뜨와네트’지요. ‘마리 앙뜨와네트’는 겨우 11살에 프랑스 루이 16세와 정략적 결혼을 위해 베르사이유 궁전으로 보내지게 됩니다. 어머니 ‘마리아 테레지아’는 어린 나이에 정치적 이용물로 프랑스에 보낸 막내 딸 ‘마리 앙뜨와네트’에 대해서 죽기 전까지 미안해 하고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사실 ‘마리 앙뜨와네트’ 만큼 잘못 알려지고 억울한 역사적 인물도 없을 것입니다.
‘마리 앙뜨와네트“도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달리 프랑스 혁명 당시에는 사치와 방탕에 빠져 있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어라‘고 말했다고 하면서 마리 앙뜨와네트를 사치와 방탕에 빠지고 세상물정 모르는 악녀로 표현한 것은 당시 혁명군들이 고의적으로 ’마리 앙뜨와네트‘에게 안 좋은 이미지를 확대 재생산해 혁명의 명분과 대중을 선동하기 위해서였지 앙뜨와네트가 저 말을 한 적이 결코 없습니다.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어라‘는 말은 장 자크 루소의 ’참회록‘ 중에 나오는 말로 루소가 저 문장을 썼을 때는 앙뜨와네트가 왕비가 되기 전이니까 저 말을 앙뜨와네트가 했다는 것은 순전히 지어낸 것이죠.
예전에 MBC '서프라이즈‘라는 프로그램에서 마리 앙뜨와네트에 대해 다룬 적이 있는데, 그 프로그램을 보면 앙뜨와네트가 사치를 하지 않았다는 것을 기록으로 보여준 것이 기억납니다. 왕실 예산이 전체 예산의 3%를 쓰게 되어 있는데 루이 16세 재위 19년간 이 3%를 넘은 적이 없고, 마리 앙뜨와네트도 왕실예산의 1/10 정도 밖에 쓰지 않았다고 합니다. 예전의 왕비들이 쓴 것에 비해 턱없이 적었다고 하네요. 베르사이유 궁전이 답답해 쁘티 크리아뇽에서 전원생활을 즐긴 것이지 그 곳에서 호화파티를 열지도 않았다고 하구요.
이렇게 앙뜨와네트가 사실과 다르게 악녀로 묘사된 것은 프랑스가 힘이 약해 오스트리아(합스부르크가)의 눈치를 보고 있는 중이어서 프랑스나 프랑스 국민들이 합스부르크(오스트리아)에서 온 앙뜨와네트를 곱게 보지 않았고, 혁명세력들이 대중을 동원하는데 앙뜨와네뜨를 희생양으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타국에서 온 왕비를 악녀로 만들어 희생양으로 만든 것은 프랑스나 프랑스 국민들이 좀 치졸하고 비겁했습니다.
제가 본 뮤지컬 주인공 ‘엘리자벳’의 남편 오스트리아 왕 ‘요제프’도 여제 ‘마리아 트레지아’의 후손이더군요. 지난 주와 이번 주에 제가 알게 된 인물들이 묘하게 모두 ‘합스부르크가’와 연관되어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