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2015년 1월 8일 경향신문, 한겨레 만평

세우실 조회수 : 586
작성일 : 2015-01-08 07:37:59

_:*:_:*:_:*:_:*:_:*:_:*:_:*:_:*:_:*:_:*:_:*:_:*:_:*:_:*:_:*:_:*:_:*:_:*:_:*:_:*:_:*:_:*:_:*:_

얼마 전에 졸부가 된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나의 외삼촌이다
나는 그 집에 여러 번 초대받았지만
그때마다 이유를 만들어 한번도 가지 않았다
어머니는 방마다 사각 브라운관 TV들이 한 대씩 놓여있는 것이
여간 부러운 게 아닌지 다녀오신 얘기를 하며
시장에서 사온 고구마 순을 뚝뚝 끊어 벗겨내실 때마다
무능한 나의 살갗도 아팠지만
나는 그 집이 뭐 여관인가
빈방에도 TV가 있게 하고 한마디 해주었다
책장에 세계문학전집이나 한국문학대계라든가
니체와 왕비열전이 함께 금박에 눌려 숨도 쉬지 못할 그 집을 생각하며,
나는 비좁은 집의 방문을 닫으며 돌아섰다
 
가구란 그런 것이 아니지
서랍을 열 때마다 몹쓸 기억이건 좋았던 시절들이
하얀 벌레가 기어 나오는 오래된 책처럼 펼칠 때마다
항상 떠올라야 하거든
나는 여러 번 이사를 갔었지만
그때마다 장롱에 생채기가 새로 하나씩은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그 집의 기억을 그 생채기가 끌고 왔던 것이다
 
새로 산 가구는
사랑하는 사람의 눈빛이 달라졌다는 것만 봐도
금방 초라해지는 여자처럼 사람의 손길에 민감하게 반응하지만,
먼지 가득 뒤집어쓴 다리 부러진 가구가
고물이 된 금성라디오를 잘못 틀었다가
우연히 맑은 소리를 만났을 때만큼이나
상심한 가슴을 덥힐 때가 있는 법이다
가구란 추억의 힘이기 때문이다
세월에 닦여 그 집에 길들기 때문이다
전통이란 것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것----
하고 졸부의 집에서 출발한 생각이 여기에서 막혔을 때
어머니가 밥 먹고 자야지 하는 음성이 좀 누구러져 들려왔다.
너무 조용해서 상심한 나머지 내가 잠든 걸로 오해 하셨나
 
나는 갑자기 억지로라도 생각을 막바지로 몰고 싶어져서
어머니의 오해를 따뜻한 이해로 받아들이며
깨우러 올 때까지 서글픈 가구론을 펼쳤다.


                 - 박형준, ≪가구의 힘≫ -

* 한국일보 1991년 신춘문예 시 당선작

_:*:_:*:_:*:_:*:_:*:_:*:_:*:_:*:_:*:_:*:_:*:_:*:_:*:_:*:_:*:_:*:_:*:_:*:_:*:_:*:_:*:_:*:_:*:_

 


 


 

2015년 1월 8일 경향그림마당
[※ 김용민 화백 휴가로 ‘그림마당’ 일주일 쉽니다.]

2015년 1월 8일 경향장도리
http://img.khan.co.kr/news/2015/01/07/5a0823a1.jpg

2015년 1월 8일 한겨레
http://www.hani.co.kr/arti/cartoon/hanicartoon/672672.html

 

 

앵무새가 발톱은 또 더럽게 날카로워요~

 

 


 
―――――――――――――――――――――――――――――――――――――――――――――――――――――――――――――――――――――――――――――――――――――

”길이 너무 실없이 끝나버린다고 허탈해 할 필요는 없어.
방향만 바꾸면 여기가 또 출발이잖아.”

              - 영화 "가을로" 中 -

―――――――――――――――――――――――――――――――――――――――――――――――――――――――――――――――――――――――――――――――――――――

IP : 202.76.xxx.5
1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꽃바람
    '15.1.8 6:35 PM (180.245.xxx.102)

    오늘 시 참 좋으네요.. 그간 전하지 못한 고마운 마음 전합니다..^ㅇ^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460362 펜션하시거나 잘 아시는 분 계신가요? 2 여름 2015/07/03 1,127
460361 베이징 외대 어떤가요? 4 중국 2015/07/03 1,291
460360 은동아에서 요번 주에 나올 추억의 데이트 장면을 가져왔어요 2 은동아 폐인.. 2015/07/03 1,272
460359 두피를 손으로 만지면 까슬까슬 만져지는데 거울로보면 안보여요 ㅜ.. 1 진실되게 2015/07/03 1,143
460358 시어머니께 전화드리고싶은데 무슨 말을 하나요..? 7 내고민 2015/07/03 1,527
460357 가게이전할때 시루떡이랑 뭐하면 좋을까요? 4 ㅇㅇ 2015/07/03 610
460356 아기와 제주 여행 일정 부탁드려요~ 4 ㅇㅇ 2015/07/03 884
460355 아랫글보고 저도 중2딸아이 성적공개합니다 13 올백입니다 2015/07/03 4,011
460354 시·도지사 직무수행 평가…1위 김기현·꼴찌 유정복 세우실 2015/07/03 1,084
460353 이세이 미야케 좋아하시는분 계세요? 6 2015/07/03 2,629
460352 디올팩트처럼 곱고 잘 먹는 피지 팩트 뭐 쓰세요? 3 피지팩트 2015/07/03 2,119
460351 처리 1 냉동 2015/07/03 476
460350 엘레베이터에서 인사해도 네~ 하고마는 사람들은.. 6 ㅇㅇ 2015/07/03 1,701
460349 아는 사람이 더 하다고 오년만에 전세금 돌려주면서 부자살림 2015/07/03 749
460348 내가 겪은 일베치킨 대표와의 추억 한토막.. 6 ㅇㅇ 2015/07/03 1,712
460347 영어강사 이ㅂ영씨면 영어 엄청잘하는거 아닌가요 14 ㅇㅇ 2015/07/03 3,934
460346 수능영어에서 고득점을 못하는 경우는 고급어휘가 약해서 5 인가요? 2015/07/03 1,533
460345 욕이 늘었어요 1 휴~ 2015/07/03 431
460344 그리스 경제 완전 마비. 지들 자업자득 26 인간이란족속.. 2015/07/03 4,573
460343 첫 산부인과 후기입니다 ㄷ ㄷ ㄷ ㄷ 16 후덜덜 2015/07/03 5,294
460342 대나무 이용한 뱀부마사지 좋은가요? 2 탄력 2015/07/03 1,290
460341 불쾌한 일이 있을때 빨리 안잊혀지고 계속 되새기고 있어요 13 .. 2015/07/03 2,037
460340 한화케미칼 울산공장 폭발 사고..'5명 사망·1명 실종' 1 참맛 2015/07/03 581
460339 어떤 운동하세요? 궁금 2015/07/03 291
460338 코스트코 체리 질문이요 2 하양이 2015/07/03 2,0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