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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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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신해철.

... 조회수 : 880
작성일 : 2014-10-28 03:00:35

오래 전에 그는 자신이 독신주의에 가까우며 결혼에 별 관심이 없다고 말했어요.

어린 나는 마음이 아팠어요.

나는 그와 결혼하고 싶은데, 그가 원한다면 시부모님도 모시고, 사돈의 팔촌까지도 다 모실 수도 있는데..

그래도 날 만나면, 운명의 실에 이끌려 언젠가 날 만난다면

그도 마음을 바꿀 거라고 나는 믿었어요.

The Ocean 을 들으며 우리는 전생의 인연으로 이어져 있는 소울메이트라고 생각했어요.

Here I stand for you..

그는 기다리겠다고 했고, 제발 나타나달라고 절규했어요.

나는 기다려 달라고, 곧 어른이 되어 나타날테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마음 속으로 그에게 말했어요.

넥스트 마지막 공연이 있던 날..

그는 마지막 곡을 부르고 오래도록 고개를 숙여 인사했어요.

많은 사람들이 울었지만, 난 울지 않았어요.

넥스트가 해체되는건 하나도 슬프지 않았어요. 넥스트가 사라져도 신해철이 사라지는건 아니니까요.

그는 변함없이 거기에 있을거니까요.

그는 젊고 오만한 뮤지션이었고, 난 그의 고귀한 오만을 사랑했어요.

그는 비범했고, 아름다운 비현실적인 존재였죠. 다른 별에서 온 사람같은 묘한 이질감이 있었어요.

난 그 이질감을 미치도록 사랑하고 동경했어요.

언젠가 어른이 되어 그를 만나고 우린 사랑에 빠지고, 그는 내게 청혼하고,

우린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아갈 거라고 믿었어요.

그리고

내가 어른이 되고 얼마 후에 스캔들이 터졌어요.  그녀의 사진까지 크게 실린 기사가 나왔죠.

나는 오랫동안 사진을 보며 생각하고 또 생각했어요.

나보다 예쁜가.. 나보다 성격이 좋을까?...

무슨 매력이 있을까?  어떤 여자일까?....

그냥 스캔들일 뿐이었는데, 이상하게 포기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녀는 나와 성이 같았어요. 그것도 묘한 기분이었죠.

난 마음을 추스리며 포기했고, 그들은 나중에 진짜로 결혼했어요.

그때는 나도 진짜 어른이 되어 있었는지 그렇게 마음이 아프진 않았어요.

그저 축하할 뿐.. 아쉬운 마음은 하나도 없었어요.

나는 학교를 다니고, 졸업을 하고,  계속 나이를 먹고..

더는 팬이라고 할 수 없는 사람이 되었어요.

공연 소식이 들려도 더는 찾아가지 않았고, 새 음반 소식이 들려도 그냥 시큰둥..

그를 예전처럼 숭배하기엔 난 너무 나이들어 버렸고,

할 일도 많고 고민도 많았어요.

그래도 방송에 나오면 기쁘더군요. 반갑고 좋았어요.

그가 한때 내가 질투했던 여인과 방송에 나와 애정을 과시하는 모습도

그저 좋았어요.

잘 살고 있구나. 그는 지금 행복하구나..

감사하고 좋았어요.

그는 점점 살이 쪘고, 예전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어졌죠.

그래도 좋았어요.

다른 별에서 온 것 같은 차갑고 날이 서있던 청년은

이제  나와 함께 나이들어가는 동네 아저씨가 되어 있었고

난 그 아저씨가 참 좋았어요.

이번에 새롭게 방송을 시작한다고 해서 또 좋았어요.

이렇게 함께 늙어가겠구나. 그가 늙어가는 모습을 보는게 좋았어요.

갑자기 말도 안되는 소식이 들리고,

심장이 떨리고 하루종일 불안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난 그가 일어날 거라고 믿었어요.

가능성이 별로 없어 보이지만, 그래도 그는 일어날 것 같았어요.

그는 보통 사람들하고는 다르니까. 그는 신해철이니까.

나는 잘 모르지만, 혼수상태로 있다가도 몇 년 뒤에라도 그는 일어날 것 같았어요.

기적같이..

그렇게 일어나서 더 깊은 음악을 하고 더 귀한 시간을 살아갈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여기까지였나봐요.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여기까지가 끝이었네요.

모든 사람은 자기가 가야 할 때를 선택해서 하늘나라로 간대요.

그의 의식은 죽음을 원하지 않지만,

무의식 깊은 곳에서 그는 자신이 떠나야 할 때를 알고 있고,

더는 이 곳에서 배울 것이 없다고 느낄 때 떠난대요.

어느 책에서 봤어요.

이곳에서 그가 배워야 할 모든 걸 배웠을 때 가는 거라고..

그는 결혼할 생각이 없다고 했었는데 결혼을 했어요.

많은 음악을 남겼고, 놀랍게도 아이까지 둘이나 남겼어요.

잘 살았어요.

무의미하지 않았고, 살았다고 할 만한 삶을 살았어요.

그럼 된거예요.

그리고

나는 결혼을 하고 싶어졌어요.

오래 전에 난 그와 결혼하고 싶어하는 어린 아이였지만,

이제 난 결혼을 두려워하는 노처녀가 되었네요.

그저 홀가분하게 혼자 살고 싶었어요.

그런데 결혼을 하고 싶어졌어요.

그가 그랬듯이 나도 깊은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고, 날 닮은 아이들을 낳고,

세상을 바라보며, 이 세상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면서 열심히 살다가

주어진 시간이 다 되면 떠나고 싶어요.

그곳에 가면 세상을 떠난 사람들 모두가 살아있대요.

가장 아름다웠던 모습으로 사랑하면서 기쁨 속에서 살아간대요.

언젠가 내가 그곳에 가면

먼저 떠난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과

그도 거기에 있겠죠.

그때 만나면 반갑게 인사할래요.

그때까지 열심히 살다가 갈께요.

잘가요..

열 일곱의 내가 아주 많이 사랑했던 사람..

IP : 58.229.xxx.111
3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1126
    '14.10.28 4:25 AM (14.52.xxx.119)

    좋은 글 고마워요...

  • 2. ..
    '14.10.28 9:00 AM (182.218.xxx.14)

    아침부터 이글보고 또 눈물한바가지 쏟고있습니다.

  • 3. .....
    '14.11.13 5:14 PM (58.229.xxx.111)

    ㅠ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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