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도 나이가 들면 그 무게감을 의식하는 모양이다
인물과 성격이 육중한 연기를 찾는 걸 보면...
최민식의 이순신이나 한석규의 영조나
서울의 달을 지나 다다른 지금 그들의 얼굴이 반가우면서도 아깝다
특히나 한석규의 존재감이 이번 드라마에선 난항이다
옷이 문제인지 몸이 문제인지 분간이 안 되는 이유는
역시나 그가 가진 연기력 때문이다
흡인력 떨어지는 스토리텔링에도 불구하고
한석규의 신에서 만큼은 암말 안 하고 본다
대사와 표정이 완벽하게 일치하는 배우 중 단연 으뜸이다
예전 인터뷰에서 연기를 하면서도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연기자로서 회의에 빠져 아직도 부끄럽다고 말한 이유를 알겠다
얼마나 고민하고 자신의 배우적 역량을 끌어올리려 노력하고 있는지
쉰이 넘은 배우가
한때 한국 최고의 배우라 정점을 찍었던 명예와 자부심은 없고
지하 연습실에서 물고 뜯는 절절함 만이 있다
사실 예술인들의 원천은 끊임없는 자기학대라는 말도 있지만
역할에 접신하는 행위는 분명 고통일 거다
다시 사극으로 드라마를 한다고 했을 때
좀...빠르다...라는 생각이 있었다
뿌리깊은 나무의 여운은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데다
한석규라는 각인이 억세게 자리잡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 인장을 뽑을 사람 역시 한석규여야 한다
세종을 죽이고 영조로 태어나는 일은
일반인인 나조차 ... 그 연기를 발현하는 과정은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8월의 크리스마스야 말할 것도 없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한석규의 연기는
후남이를 아끼고 사랑했던 모습이었다
무색무취한 눈에 모든 걸 담아내고도 또 뭔가가 궁금해지는 배우가
어느 특정한 장르에 소비되고 한계에 이르는 모습을 아직은 보고 싶지 않다
가뜩이나 모든 문제의 원인을 자신을 통해 찾으려는 성향의 배우가
언론에서 흔들어대는 시청률의 난도질에서 초연할 수 있을지...
별 걱정이겠지만 그냥 팬으로서의 노파심이다
몇 년 전 여의도 지하 상가 그 후미진 카페에서
한 석규를 본 기억은 잊을 수가 없다
그저 추리닝에 까만 모자 ...
주머니에 손 꾹 눌러넣고 터벅터벅 걸어오던
서늘한 남자..
맑고 진중해 보이는 분위기를 그 짧은 순간에 풍긴다
그 인상 때문인지... 배우에 대한 사심 가득한 연정 때문인지
난 이 배우의 중후한 멜로가 그립다
그 목소리, 눈빛, 주름으로 빚어낼
사랑은 어떤 표현일까
너무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