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이 된 스위스 베른이나 리스본에 가고 싶다는 바람보다는
깊게 패인 주름과 조금은 흐려진 안광 사이로 여전히 멋진 제레미 아이언스가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
원작을 영화화 할 때 대부분 그 오리지널의 한계를 넘지 못한다
글에는 관념적 언어가 가능하지만 영상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지나치게 생략되거나
지루해지기 십상이다
대부분의 원작을 가진 영화가 그랬지만 이번 리스본행 야간열차 만큼은 의외다
소설보다 영화가 더 감흥을 주고 몰입하게 만든다
음울한 미스테리가 한 편의 그림 같다
화면 마다 구도며 빛이며 그 전체를 아우르는 풍광이며 감독의 시선이 촘촘하다
작가의 삶을 따라가는 여정은 고요하지만 어긋난 퍼즐이 제자리를 찾아가듯 숨막히는 압박이 있다
영화에 있어 왜 편집이 중요한지 이렇게 부드럽고 서정적으로 교차된 영상은 오랜만이다
이야기의 뿌리에는 혁명이 있지만 사랑과 신에 대한 부정과 확신이 철학적 물음을 던지기도 한다
그래서 잠시도 한눈을 팔 수 없다...
대부분 영화의 프리뷰들은 힐링이 되는 감성 여행이나 용감한 일탈이 주는 인생의 변화를 말하지만
보는 내내 가끔씩 올라오는 질문은 평범한 삶에 대한 지루한 물음이 왜 필요한지를 느끼게 한다
너무나 당연해서 상기할 필요도 없는 구차한 습관들이 실은 자신의 존재 이유가 된다는 것...
살면서 내가 가장 무서워하는 건 지루함이었다
마음에서부터 올라오는 한기가 참을 수 없는 강박으로 이어지다
결국엔 자신 만의 세계에서 순응하며 무탈하게 습관적으로 사는 삶...
주고받지 않으면 그런 순환하는 고통에 시달리지 않을 거란 교만한 확신
영화 속 제레미 아이언스의 모습에 밀착될 수 있었던 데는 별로 유익하지 못한 나의 경험이 있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 던져진다는 건 선물이다
내 생각의 탄력과 강도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는 기회다
영화의 첫인상을 보면 대개 끝이 어떨지 답이 나온다
밤새 주거니 받거니 혼잣말 하며 체스를 두는 주인공
마른 빵에 전날 먹다 버린 티백을 재활용하고 이른 아침 집을 나서는 모습부터
새벽의 잿빛 구름과 비바람 ... 난간에 서있는 빨간코트를 입은 여자...
빨려들어가는 건 대사 한마디 없는 제레미아이언스의 표정이면 충분했다
이 배우는 참..중후하다라고 하기엔 찬사가 부족하다
저 나이에...
관능이 아직도 유효하다 못해 다른 차원의 것으로 빛을 낸다
애매한 연기를 가장 분명하게 연기한다
너무나 아름다운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