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떤 사람이 “옛날에도 임금에게 억울한 사정을 하소연하기 위해 수십일 간 단식한 사람이 있었냐?”고 물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이 임금에게 직접 하소연할 수 있는 길이, 지금보다 오히려 넓었습니다.
미안합니다 @histopian 4분
2. 지방에 다녀오던 세종이 길가에 백성이 보이지 않자 지방수령에게 연유를 물었습니다. “잡인이 임금의 이목을 어지럽힐까 봐 나오지 못하게 했다”는 대답을 들은 그는 불같이 화를 냈습니다. “수령이란 자가 감히 백성과 임금의 사이를 가로막다니..."
미안합니다 @histopian 4분
3. 왕이 억울한 백성의 말을 직접 듣는 제도로 조선 전기에는 신문고가 있었고, 중기 이후에는 상언과 격쟁이 있었습니다. 신문고를 폐지한 건 연산군이었고, 그를 부활시킨 건 영조였습니다. 백성의 억울한 사정을 외면하는 자는, 폭군이 되기 마련입니다.
미안합니다 @histopian 2분
4. 세종 동상에 그의 영혼이 깃들어 요즘 일을 본다면, “40일간 굶으며 호소하는 사람을 외면하는 정치가가 있다는 말은 고금에 듣도보도 못했다”며 분노했을 겁니다. 세종시대와 정반대의 정치를 지지하면서, 세종같은 지도자를 바라는 것도 정신이상입니다.
미안합니다 @histopian 28초
5. 인정(人情)을 베푸는 정치가 '인정(仁政)’입니다. 세종이 어린 백성을 먼저 생각했기에, 한글이 있는 겁니다. 예나 지금이나 '불쌍한 사람의 말’에 먼저 귀 기울이는 게, 좋은 정치의 출발점입니다. 마음이 모질면 무슨 일에든 포악해지는 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