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들이 다 죽었는데 무슨 특례 입학?”
“부모로서 자식들이 왜 죽었는지 알고싶어”
“진실이 밝혀지지 않는다면 저희는 죽은 목숨”
“진실이 두렵지 않다면 조사위에 수사권 줘야”
좌담 참가자들
고 이창현군 아버지 이남석씨
고 이재욱군 어머니 홍영미씨
고 박성호군 어머니 정혜숙씨
고 김동혁군 어머니 김성실씨
사회 김익한 명지대 교수
세월호 참사 120일을 맞지만 유가족들은 여전히 집으로,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자식을 잃은 상처를 치유할 틈도 없이 거리에서 “진상규명”을 외쳐야 하는 이들의 고단한 삶은 언제쯤 끝날 수 있을까? 누가, 무엇이 이들을 단단한 돌덩이로 만든 걸까? <한겨레>는 이들이 진상조사위원회에 반드시 수사권·기소권을 주어야 한다고 요구하는 이유를 직접 듣고 싶었다. 그들을 향한 세간의 오해에 대한 심경과 세월호 참사를 앞뒤로 바뀐 삶이 어떠한지도 궁금했다. ‘세월호기억저장소’ 건립을 주도하는 김익한 명지대 교수의 사회로 11일 김성실(단원고 2학년 고 김동혁 어머니), 이남석(고 이창현 아버지), 정혜숙(고 박성호 어머니), 홍영미(고 이재욱 어머니)씨가 한자리에 모여 속내를 털어놨다.
사회 본인 이름보다 누구의 엄마라는 칭호를 쓰는 이유가 있는 듯합니다.
정혜숙(이하 정) 사고 전에는 엄마가 학교를 찾아가는 일이 드뭅니다. 선생님과 전화통화를 하거나 학기 중에 한 번 찾아뵙는 정도인데요, 학부모들 간에도 얼굴을 아는 일이 드물어요. 사건이 일어나고 나서부터는 내 아이만 내 아이가 아니고, 네 아이, 다른 반 아이 할 것 없이 아픈 경험을 한 부모들은 모두 형제, 친구, 가족이 됐습니다.
고 이창현군 아버지 이남석씨
군, 통영함 출동 명령 내렸는데
그걸 막을 권한 대통령 등 소수
과연 누가 저지했는지 밝혀야
크레인 사용 안한 것도 조사를
이남석(이하 이) 누구 아빠라는 소리를 많이 듣다 보니 저도 상대방을 부를 땐 누구 엄마, 아빠라고 부르게 돼요. 모두 자식 때문에 만난 부모들이잖아요. 제 이름보다는 누구 아빠가 마음이 더 편해요.
사회자 진상조사위원회에 수사권과 기소권이 반드시 있어야 하는 이유가 뭔가요?
김성실(이하 김) 세월호 사고에 대처하는 국가를 보며 신뢰가 무너졌어요. 정부의 무능과 부정부패가 드러났잖아요. 이런 정부를 믿고 진상규명을 맡길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인정하는 조사위원회를 만들고 수사권과 기소권을 줘야 한다는 거죠. 진실이 밝혀져서 자신들이 입을 피해가 없다면 수사권을 못 줄 이유가 없겠죠.
홍영미(이하 홍) 여성 대통령, 여성 야당 지도자라 엄마들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어요. 그런데 대통령은 그렇다 치고 야당이 ‘제2의 여당’이에요.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힌 거죠. 처음에는 제대로 대응을 못할 수도 있겠다고 여겼지만, 독단적으로 특별법에 합의하는 건 유가족을 두 번 죽이는 겁니다.
이 유가족들은 아이들이 왜 죽었나 알고 싶거든요. 사고 뒤 100일이 넘었습니다. 검사가 해경·국정원·청와대를 조사하고 기소해서 유가족이 납득할 만한 처벌을 해야 하는데 다 손 놓고 있잖아요. 유가족이 진도VTS(해상교통관제센터) 감시카메라에서 삭제된 영상을 되살려내서 직원들이 자고 있었다든지, 둘이 근무해야 하는데 혼자 근무한 사실을 밝혀내는 현실입니다.
정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는 세월호 특별법을 침몰시키고 있습니다. 선장이 세월호를 침몰시킨 것과 똑같죠. 박 대표가 도보순례도 함께 했고 부모의 마음이라며 국민 앞에 약속한 내용인데 그 마음은 어디로 갔나요.
사회 박 대표가 유가족 내부에 세월호 특별법을 두고 이견이 있다고 했습니다.
정 처음에는 정확하게 모르니까 이견이 많았어요. 그러나 특별법이나 진상조사위원회 관련해서는 하나로 뭉쳐 있습니다. 이건 분명합니다.
사회 중요한 교착국면에서 유가족들이 힘을 합쳐 가장 잘 버텨주셨는데, 그 힘의 원천은 무엇인가요?
이 가만히 있을 수는 없고 뭘 해야 하는데 주변에서 많이 도와줬습니다. 저희는 조그마한 불쏘시개였던 거죠. 힘의 원천은 국민입니다. 아직까진 시작이고 앞으로 더 큰 고난이 있을 건데 국민이 함께해야 어려운 산을 넘을 겁니다.
정 힘은 저희의 트라우마에서 와요. 제주도를 다녀오느라 비행기를 탔는데 그 공포감이 말할 수 없을 정도였어요. 아이가 배 안에서 겪었을 상황을 상상하게 되더라고요. 또 생존자 아이들을 학교에서 만나보면 아이들이 모든 걸 차곡차곡 정리하는 거예요. 아이들이 빈 교실에 놓여 있는 꽃다발도 반듯하게 놓아요. 아이들도 트라우마에 빠져 있는 거죠. 저희는 그 트라우마 속에 살고 있습니다. (세월호가 침몰한) 4·16 이전으로 결코 돌아갈 수 없기 때문에 싸우는 겁니다. 진실이 밝혀지지 않는다면 저희는 죽은 목숨이나 마찬가지일 겁니다.
사회 새누리당에선 접촉이 없었나요?
김 제 전화번호를 그분들한테 좀 가르쳐 주세요(웃음).
이 유가족들이 국회에서 10명, 광화문에서 5명 단식했는데 새누리당 의원은 오지 않았어요. 안산이 지역구인 김명연 새누리당 의원만 지역구 관리 차원에서 인사 한 번 온 게 전부입니다. 다른 의원들은 국회 단식 중에도 눈인사 한번 한 적 없어요.
정 팽목항, 진도체육관에 있을 때는 뻔질나게 왔어요. “미안합니다” 그걸로 끝내고 가는 거예요. 선거 유세 하러 왔구나 생각했어요.
사회 유가족 처지에서 반드시 규명돼야 할 의혹이 뭔지 짚어 보면 좋겠어요.
고 이재욱군 어머니 홍영미씨
여성 대통령·여성 야당 지도자라
엄마들 아픔 공감 기대했는데…
구조때 “아래에 친구들 많다” 말에
해경이 걔네 못구한다 대답했다더라
홍 사고가 났을 때 3일 동안 구조 행적과 왜 적극적인 구조를 하지 않았는지가 첫 규명 대상입니다. 3일 동안 잠수부가 시신을 전혀 건져올리지 못한 이유가 뭐냐는 거죠.
정 왜 세월호만 국정원의 지시를 받고 보고를 해야 하는 건지, 세월호 사건 전날 단원고 애들이 왜 오하마나호에서 세월호로 바꿔 탔는지, 그날 세월호만 출발한 이유 등도 밝혀야죠.
이 3군사령부가 통영함 출동 명령을 두 번이나 내렸습니다. 그걸 막을 수 있는 권한은 합참의장과 국방부 장관, 대통령 정도인데 누가 그걸 저지했을까요? 또 침몰 직전의 배를 크레인으로 충분히 잡아놓을 수 있었는데 왜 그렇게 하지 않고 침몰시켰는지도 규명 대상입니다.
홍 구조된 아이들한테 들었는데, 아이들이 헬기로 구조될 때 “아래에 친구들이 많이 있다. 저 아이들은 어떻게 되냐”고 하니까, 헬기에서 “어차피 걔네들은 못 구한다”고 말했다고 하더라고요.
이 해경이 승객을 당연히 먼저 구해야 하는데도, 영상을 보면 해경은 선수로 가고, 어선은 선미로 가서 아이들을 건졌잖아요. 세월호 선원과 해경이 사전에 미리 연락이 됐던 것은 아닌지….
사회 세월호 참사 이후 계속되는 논란에 국민들이 피로감을 느낀다는 얘기도 나옵니다. 굉장히 조작적이라는 생각이지만 이 과정에서 유가족에 대한 오해도 여럿 있습니다. 배상금, 대학 특례입학, 의사자 문제 등인데 진실을 직접 말씀해주시죠.
고 박성호군 어머니 정혜숙씨
“우리가 아이들 의사자 지정과
특례입학 요구했다? 어이없어”
교황님이 잘못된 것에 일침 가해
이런일 세계에 다시 없게 했으면
정 의사자 문제는 저희가 거론한 바 전혀 없어요. 정부에서 먼저 의사자 만들어주고 싶다 그랬죠. 저희도 처음엔 아이들이 억울하게 죽었으니까 의사자가 될 수도 있다 생각은 했어요. 진상조사가 되면 그다음에 뭘 하든 상관 안 하겠다 했거든요. 그런데 정부여당이 진상조사위원회에 수사권·기소권이 없는 법안을 들고 오면서 이 와중에 ‘특례입학’ 얘기가 나왔어요. 어처구니없죠. 특례입학할 우리 아이들이 다 죽었는데 무슨 특례입학입니까? 단원고 고3 학부모들이 “우리도 손해 봤다. 여당이 말하는 특례입학에 우리 자녀들도 끼워달라”고 한 이야기를 우리가 한 것처럼 떠드는 것은 말도 안 되고, 유가족을 분열시키는 말입니다.
사회 세월호 이전의 삶과 지금, 그리고 앞으로는 많이 다를 듯합니다.
이 돌이켜보니 비록 몸과 마음은 힘들었지만 평범하게 살았을 때가 제일 행복했던 것 같아요. 가족이 모여서 없는 반찬에도 웃으며 밥 먹을 때요. 사고 이후엔 가족이 모여서 밥 먹은 게 다섯 손가락으로 꼽을 것 같아요. 내가 집에 있으면 아내는 서울에 오고, 살아 있는 아이는 학교 다니느라 충남 아산에 있어서 주말에야 집에 와요.
유가족 부모님들끼리 만나면 이런 질문을 해요. 10년이 될지 30년이 될지 모르지만 어느 정도 정리가 되면 뭘 할 거냐고요. “이민 가고 싶다. 아무도 모르는 산속에서 살고 싶다” 이런 대답을 하는데 저도 그 둘 중 하나에 해당되는 사람이고요. 그렇지만 그보다 먼저 이 나라를 안전한 곳으로 꼭 만들 겁니다. 있는 힘껏 우리 아들이 죽은 이유를 알아내고 안전한 나라로 만든 다음에 산속에 숨어 살든 그것도 싫으면 떠날 겁니다.
정 우리가 죄인도 아닌데 왜 떠나야 합니까. 정작 죄인들은 여기에 살고 있는데. 저는 아이가 넷이에요. 이전엔 생활고 탓에 사회적 이슈에 나설 여유가 없었어요. 우리 성호 꿈이 이태석 신부님 같은 사제가 되는 거였어요. 자기를 봉헌해 많은 ‘우리’를 만드는 것이요. 그래서 사회, 역사, 정치, 경제 쪽에 관심이 많았어요. “왜 이렇게 자기들만의 정치로 고달프게 살아요?”라고 물을 때도 저는 치졸하게 답을 해준 엄마였어요.
성호의 목숨을 바치고 나서 제 삶도 바뀌었어요. ‘우리’가 커진 거지요. 성호를 닮은 많은 사람들이 몰려오고 소통하는 모습을 보며, 우리 성호가 원한 것이 이런 것이었구나 싶었어요. 이제 ‘우리’가 너무 커졌어요. 저는 4·16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어요.
홍 너무 큰 대박을 맞고 나니 아무런 생각이 안 들더라고요. 간 사람은 가고 산 사람은 살아야 하는데. 사는 사람은 (삶에) 어떤 의미 부여를 하며 살아야 할까요. 이 아픔으로 나는 얼마나 성장할지 모르겠어요. 이 삶을 그 전으로 되돌리려는 방법 중 하나로 ‘4·16 베이비’를 만들까도 생각했어요.(웃음) 재욱이의 영혼이 다른 몸을 빌려서 그 삶을 이어가도록…. 그러면 치유가 되려나 해서요.
고 김동혁군 어머니 김성실씨
애인과 국가 중 국가 택하겠다던
아이를 국가가 죽게 내버린 것
페이스북 친구들 “특별법 통과땐
서로 자기가 밥쏘게 해달라” 응원
김 동혁이는 제가 열달 동안 품고 키운 아이는 아닙니다. 제가 재혼을 해서 동혁이를 처음 보고 아이는 엄마가 키워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따뜻하고 좋은 엄마는 아니었지만 사회적으로는 좋은 엄마였다고 생각합니다. 이 아이들을 이쁘게 기르는 것만으로도 이 사회가 좀더 건강하고 괜찮은 국가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거지요.
그런데 내가 믿었던 사회가, 국가가 이 정도밖에 안 되니…. 동혁이가 죽기 한달 전에 “애인과 국가를 선택해야 될 때가 오면 국가를 택해야 한다”고 말한 엄마였는데, 국가가 아이를 버린 거죠.
사회 교황 방한에 관해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15일 대전 미사에 유가족 일부를 초청하겠다고 했는데, 제 생각엔 16일 유가족 150명을 가장 앞자리에 앉게 해달라고 요구할 수 있다고 봅니다.
정 그동안 제가 유가족 대표로 가톨릭과 소통을 하며 여러가지로 생각한 게 많죠. 저희는 몇 명만 뽑아서 만나게 해달라는 게 아니었어요. 유가족이 지금 겪는 아픔은 예수님이 겪은 고통과 같습니다. 정치에 희생돼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이나 아무 죄 없이 죽은 아이들이나 다를 게 없잖아요.
광화문에서 단식하는 사람들은 거기가 집입니다. 종교는 보편적인 사랑이지 일부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88올림픽 전에 판자촌 뜯어내듯이 유가족 천막을 들어내는 것은 안 된다는 뜻을 전달했는데, “유가족 10명을 광화문 시복미사에 참석하게 해주겠다. 이것도 굉장히 노력하는 거다. 우리도 압박을 받고 있다”고 답하니까 너무 안타깝습니다.
저는 교황께 광화문이 아니라 팽목항으로 오시라고 하고 싶습니다. 교황이 모든 것을 정리해줄 수는 없습니다. 유가족들도 그걸 너무 잘 압니다. 그러나 교황님이 잘못된 것에 일침을 가해주실 수 있기를, 세계에 더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그런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는 겁니다.
사회 그동안 도움을 준 국민들께 감사 인사나 당부할 게 있으면 해주시죠.
홍 세월호의 아픔이 수장되지 않도록 유가족들이 나머지 삶을 잘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데 국민들의 힘이 필요합니다. 대신 유족들은 이런 일이 다시 생기지 않도록 수호신 역할을 할 겁니다.
김 광화문의 한 식당에서 우연히 페이스북 친구를 만났어요. 그분이 밥값을 내주시고 가는 거예요. 우리는 얻어먹어본 적이 별로 없는 사람이잖아요. 표정을 어떻게 할지 모르겠는 거예요. 페이스북에 감사한데 앞으로는 그러지 마시라고 올리니까, 그 밑에 “저한테도 밥 살 기회를 달라”고 예상하지 못한 댓글을 다셨어요.
또 얼마 전엔 인천 부평에 있는 부대찌개 집에서 세월호 특별법 통과되면 ‘2일 동안 무료’라고 현수막 걸었다는 걸 페이스북으로 공유하며 “특별법 통과되면 제가 쏠게요” 그랬어요. 그랬더니 페친들이 서로 자기가 쏘겠다며 댓글을 다시는 거예요. 세월호 특별법이 이런 국민들을 보호하기 위한 법이라는 걸 정부여당이 알아주면 좋겠어요.
진행·정리 이재명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세월호 유가족들은 왜 교황을 기다릴까 [21의생각 #301]
박래군 “세월호 특별법 안에는 안전한 사회 만드는 대안 담겨” [한겨레담]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65096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