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이 눈물 흘리는 현장, 야당은 없었다
7월 31일 광화문 광장,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야당은 절망을 안겨 주었다. 그들을 위해 야당은 무엇을 했는가!
국정원, 국군사이버사령부의 댓글 조작 불법행위에 대해 과연 야당은 어떻게 대응했는가!
철도 민영화, 의료민영화 저지를 위해 지금 야당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기초노령연금제도가 휴지조각처럼 구겨지면서 국민연금과 연동하여 직장인에게는 경제적 손해를, 가장 어려운 기초생활수급 어르신들에게는 ‘줬다 다시 뺏는’ 기만을 행할 때, 쌀시장 개방으로 농민들이 자식 같은 논을 트랙터로 갈아엎을 때 야당은 어디에 있었는가!
불합리하고 무원칙한 공천으로 당의 후보와 지지자들이 절규하며 당을 떠날 때, 야당은 무엇을 했는가!
전국 방방곡곡에서 국민들이 피눈물을 흘리고 있다. ‘아무도 우리의 이야기를 해주지 않는다’며 절규하고 있다. 그러나 그 어느 곳에서도 그들이 기댈 야당은 없었다.
7.30 재보궐선거에 대해 이길 수 있는 선거를 졌다고 한다. 아니다. 우리는 질 수밖에 없는 선거에 졌다. 이번 선거 패배는 후보들 개인의 패배가 아니라 명백한 당의 패배이다. 국민이 야당을 버린 것이다.
1990년 218석의 거대 여당이었던 민주자유당을 상대한 야당은 71석의 평화민주당이었다. 1997년 새정치국민회의는 79석으로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루어냈다.
지금 야당은 어떠한가? 용기도, 당당함도, 치열함도 없다. 국민은 야당이 무언가 끝까지 물고 늘어져 관철시키는 모습을 본 지 오래다. 국민은 지금 세월호 참사에 대한 피곤함이 아니라 야당의 무기력함에 대해 피곤해 하고 있다. 국가기관의 댓글 조작사건에 대한 피곤함이 아니라 국민 모두가 진실을 밝히고 처벌을 원하는 상황에서조차 선거의 유불리로 판단하는 안일함에 대해 피곤해 하고 있다. 문제투성이인 기초연금안 통과에도 어르신의 노후와 국민연금에 미칠 악영향에 대응하지 않고, 지방선거에 미칠 유불리에 더 주목했다. 집권세력 비판·반대에 대한 피곤함이 아니라, 대안을 제시하지 못 하는 이런 무능함에 피곤해 하고 있는 것이다.
투지와 결기를 상실한 야당,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치열하게 지켜야 할 것을 제대로 세우지 못 했기 때문이다. 깃발이 분명하지 않고, 길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야당은 나침반 없는 항해를 하고 있다. 누가 그들에게 대한민국호의 운항을 맡기겠는가!
우리의 목표는 ‘진보정권의 창출’이다
정당의 목표는 정권의 획득이다. 이를 위해서는 결국 국민이 당을 선택해야 하는 이유를 분명히 해야 한다. 핵심은 무엇을 하려는 세력인가 즉, 당의 정체성과 노선이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취임 일성은 ‘보수정권의 재창출’이다. 그런데 우리는 정권심판만을 외친다. 국민은 오만하고 무능하며 무책임한 그들을 심판해야 할 이유를 충분히 알고 있다. 하지만 그들을 대신해 선택해야 할 대안세력에 관해 확신을 갖지 못 한다. 야권은 실패한 보수정권을 대체해 집권했을 때 어떤 정권이 될 것인가에 대해 국민에게 정확히 말해야 한다. 그리고 그 정권을 만들기 위해 흔들림 없이 치열하게 행동함으로써 신뢰를 쌓아야 한다.
진보정권은 어떤 정권인가? 현실 속에서 사회적·경제적 약자와 소외자들의 권리와 이익을 증진하는 데 더 큰 가치를 두고 행동하는 정부이다. 서민이 눈물 흘리는 현장에 함께 하며 그 눈물을 닦기 위해 실천하는 정치세력이 집권하는 정권이다. 진보정권이었다면 세월호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불행하게도 참사가 일어났다면 그 유가족이 요구하기 전에 먼저 특별법을 만들고 재발 방지를 위해 행동했을 것이다. 국가권력기관이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들지 못 하도록 제도를 전면 개혁하고 엄중하게 처벌했을 것이다. 빈곤과 양극화를 불러 온 시장 만능의 신자유주의 물결에 굴복하지 않고 국민의 삶을 지키기 위해 단호하게 나섰을 것이다. 약속에 대해서는 반드시 책임지는 신뢰의 정치를 정착시켰을 것이다.
진보정당의 모델은 루스벨트의 '뉴딜 민주당'이다. 남부의 농장 지주들을 대변하던 보수정당 민주당은 대공황을 겪으면서 사회보장과 노동자의 권리 보장 2가지를 핵심 축으로 입법을 주도하고 뒷받침하면서 진보 민주당으로 전환했다. 이를 통해 20년 연속 집권에 성공하게 된다. 미국 민주당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이다.
진보정권은 결코 추상적이고 낡은 이념적인 목표가 아니다. 국민의 삶의 문제에 대한 가장 현실적 대안정권이며, 비정상인 사회를 정상화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다. 목표를 분명히 해야 길이 보인다. 우리의 목표는 ‘2017년 진보정권의 창출’이며, 이를 위한 길은 곧 ‘진보 정당’의 기치를 드는 것이다.
‘현장진보’와 ‘실천진보’, 유능한 진보 정당으로!
지난 한미FTA 무효화 투쟁은 야당 역사에 기록될 획기적 전환점이었다. 그 속에는 지금 우리가 직면한 모든 문제의 해결방향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시작은 ‘반성’이다. 정치적 신념과 정책 방향의 근본은 국민이다. 변화된 현실을 직시하고, 국민의 아픔을 극복하기 위해서라면 과거의 결정에 대한 전면적 전환을 감수해야 하며, 이를 위해 스스로의 과오를 담대하게 고백해야 한다. 한미FTA 무효화 투쟁은 이렇듯 ‘반성’에서 비롯되었다.
다음은 ‘공론화’이다. 한미FTA에 대한 입장을 정리하기 위한 치열했던 당내 토론의 과정을 기억할 것이다. 각계각층의 전문가는 물론, 지역 국회의원들은 해당 지역민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하기 위해 주저하지 않았다. 각종 토론회와 공청회는 공개성의 원칙 속에 진행되었으며 결국 2011년 12월 11일 전당대회를 통해 <한미FTA 비준안 무효화 결의문>을 공식 당론으로 채택하기에 이르렀다.
‘전면전’으로 이어졌다. 합의된 당론을 관철시키기 위해 야당으로서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이 동원됐다. 시민과 함께 하는 촛불집회는 물론, TV 생중계 끝장토론, 오바마 대통령에 대한 서신 전달까지 끈질기게 전개해 나갔다. 이 모든 과정은 야5당의 정책과 노선에 따른 강고한 연대를 통해 더 큰 힘을 발휘했다.
비록 여당의 날치기 비준안 처리와 이명박 대통령의 일방적 비준으로 막을 내렸지만, 그 과정 속에서 야당의 역할과 태도는 분명한 교훈으로 남을 것이다.
결국 한미FTA 무효화 투쟁은 진보적 야당이 지향해야 할 ‘현장 진보’와 ‘실천 진보’의 방향을 생생하게 증명해주었다. 중소기업과 자영업자, 농민 등 한미FTA로 인해 실질적인 고통을 받을 현장의 눈물이 그 모든 과정을 지탱한 동력이었다. 한진중공업의 무자비한 정리해고와 용역 폭력집단의 투입도 현장에서 함께 호흡하지 않았다면 평화적인 해결책에 도달 할 수 없는 문제였다. 모든 문제와 해답은 현장 속에 존재한다. 고정관념을 깨뜨려야 한다. 국회는 엘리트 집합소가 아니다. 5천만 각계각층 국민을 대변하는 중산층과 서민의 대표기관이다. 특히 이 시대 야당은 고단한 국민의 삶 속에 존재해야 한다. 야당이 있어야 할 곳은 여의도가 아니라 현장이다.
정치는 운동처럼 치열하게 하되, 운동을 뛰어넘는 현실적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의제로 만들고, 여론을 조성하여, 입법과 제도화로 이어지는 치밀한 전략과 치열한 실천이 필요하다. 그것이 곧 국민의 선택을 받을 수 있는 길이다. 야당의 가장 큰 무기는 결국 국민과 함께 하는 실천밖에 없다.
무엇보다 우리는 우리를 당당히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 왜 우리는 ‘진보’라 말하기를 두려워 하는가. 진보는 결코 진보적 국민만을 위한 노선이 아니다. 서민과 사회적 약자를 넘어 전체 국민에게 복지의 혜택을 부여하는 ‘보편적 복지’는 국민의 안정적 삶을 위한 최소한의 노력이다. ‘경제민주화’는 재벌에 대한 징벌이 목표가 아니라 공정하고 지속가능한 경제구조로 전체 국민의 삶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이다. 국가의 권력남용을 차단하고 이를 개선하는 것 또한 전체 국민의 자유를 확장하기 위한 노력이다. 당당하게 진보를 이야기하고 당당하게 진보적 야당의 길을 가야 한다. 그것이 곧 승리의 길이다.
진보 정당을 위한 구체적 실천을 시작하자
저는 2010년 8월 12일, ‘민주당의 당권은 당원에게 있고 모든 권한은 당원으로부터 나온다’는 당원 주권 조항을 당헌 제1조에 명문화할 것과 ‘역동적 복지국가 건설을 목표로 서민과 중산층의 권익을 적극 대변한다’는 강령전문 개정안을 민주당에 공식 제안했다.
민주당은 2010년 10월 3일, 전당대회를 통해 새로운 당헌을 통과시켰다. 핵심은 당헌 제1조 2항에 당원주권 조항을 신설하고, 당헌 제2조(목적)에 ‘보편적 복지’를 명시하는 것이었다. 60년 야당 역사에 획을 긋는 결정이었으며, 당원이 주인되는 진보적 민주당으로의 선언이었다.
그리고 당 강령에는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강령1조)·노동권 보장(강령3조)·보편적 복지(강령4조)·한반도 평화체제(강령5조), 한미FTA(강령22조)·종편·원전 반대 등을 명시했다. 하나같이 진보 개혁적 정치인들이 저와 함께 현장에서 강력하게 주창했던 것들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당헌과 강령에는 이러한 핵심가치들이 사라져 있다. 국민의 시대적 염원과 당원의 열렬한 지지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진보적 가치와 노선들이 언제 없어진 지도 모르게 슬그머니 사라져버렸다.
진보정권의 창출을 위한 진보 정당을 위한 실천은 바로 여기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첫째, 버릴 것은 계파요 취할 것은 정체성이다. 당헌에 진보적 가치를 다시 명확히 선언하자.
당의 목적에 보편적 복지와 경제민주화, 노동중심성의 강화 등을 선명하게 적시해야 한다. 아울러 고질적 지역주의를 걷어내기 위한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를 당론으로 결정하고 이 또한 당헌에 명시해야 한다.
당헌은 당 운영의 기본원리이며 당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바로미터이다. 나아가 진보정권 출범 후 국정운영의 방향을 알려주는 나침반이기도 하다. 리더십 문제의 본질은 노선이다. 노선을 바로 세우는 것이 곧 리더십의 발현을 가능하게 하는 기본이다. 당당히 진보적 야당의 길을 선언하고 실천하자.
둘째, 당의 진정한 주인을 세워야 한다. 당원주권 조항을 복원하고 ‘전당원투표제’를 채택하자.
당의 주인인 당원에게 주인 자리를 되찾아 주는 것이 최고의 혁신이다. 그것만이 당원들의 분노를 품는 길이며, 실망해서 떠나가는 당원을 돌려세우는 길이다. 무엇보다 그것만이 정치에 관심이 없던 국민들이 야당을 돌아보게 할 수 있는 길이다.
‘당권은 당원에게 있고, 당의 모든 권력은 당원으로부터 나온다’는 당원주권 조항을 복원해야 한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당 지도부는 물론 지역위원회 위원장과 대의원까지 당원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당의 주요 당론 또한 당원이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결국 ‘전당원투표제’ 채택이 대안이다.
이는 기득권 포기 없이는 불가능하다. 국민이 야당에 7.30 참패를 안긴 뜻이 밑동부터 환골탈태하라는 명령이었다면 첫 출발점은 기득권 내려놓기여야 한다. 정당 권력의 핵심은 공천권이다. 중앙당에서 낙점하듯 하는 공천은 사라져야 한다. 민주 정당에서 누가 누구를 공천한다는 말인가. 공천권은 오직 당의 주인인 당원이 행사하는 것이 원칙이다.
셋째, 이러한 당의 혁신을 기반으로 노선과 정책을 중심으로 ‘야권재편’을 전면화하자.
선거 승리만을 위한 야권 연대는 당원에게도, 국민에게도 더 이상 감동을 주지 못 한다. 한진중공업 문제 해결을 위해 그러했듯, 한미FTA 저지를 위해 그러했듯 노선과 정책을 중심으로 한 공동 실천만이 희망을 만들 수 있다. ‘누구’와의 연대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위한 연대인가를 명확히 해야 한다. 그럴 때에만 제 정당을 넘어 모든 시민사회세력들이 하나가 될 것이다. 진보적 야당을 넘어 야권재편으로까지 나아가야 한다.
선거 패배가 야당의 몰락으로 끝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힘없는 국민에게 돌아간다. 더 이상 야당에게는 실패할 여유가 없다. 국민을 위한 진보정권 창출을 위해 한국 사회의 변화를 갈망하는 대다수 중산층과 서민을 우군으로 삼아 당당한 진보 정당의 깃발을 들고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