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밌는 드라마는 무한 다시보기를 한다
그야말로 질릴 때까지...
음악 또한 그런 편식이 심하다
CD한장에 앞뒤로 똑같은 곡을 녹음해 듣고 다녔다...귀가 헤지도록
책은...
책은 한 번 읽으면 영원히 안녕이다
다신 보지 않을 깨끗한 책장 안으로 밀어버리고 그 흔적을 만족스러워 한다
가지런한 치아처럼 그렇게 줄 서있는 제목들을 쭉 훑어보면서 말이다
삐딱하게 앉아 멍하게 책장을 바라보던 어느 날
무심코 집어든 책 하나
"가난한 사람들"...
입에서 당기는 음식을 몸이 원하듯이 내 궁핍하고 팍팍한 맘이 "가난'이라는 글자에 닿았다
그 옛날 문고판 사이즈에 깨알 같은 글씨...
한두 장 넘기다 보니 머릿속에서 재해석이 필요한 매끄럽지 못한 번역
머리 지끈하게 만드는 러시아의 그 등장 인물들의 이름들...
"러시아 소설"이라는 영화 제목이 말해준다
방대하게 파고드는 인간 심리의 애매모호함이 러시아 작가 특유의 음울함과 섞이면서
도처에 깔아놓은 안개 같은 배경이 시야를 가리는 듯한 문체들...
그래도 꾸역꾸역 작가의 세계에 들어가려 버둥댔으나 머리 하나 집어넣고 마감한 책들
지나치게 담백해서 더 복잡해지는 상황
너무 정직한 ? 번역도 문제였던 듯싶다
그런 곁가지 생각으로 읽어내려간 가난한 사람들은 의외로 술술 읽혔다
그때나 지금이나 가난이 주는 삶의 피폐함은 변한 것이 없구나...
그 와중에도 초라한 품위를 지키려 안간함을 쓰는 인물들의 구구절절함
같은 처지의 서로가 위안이 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서로의 거울이 되어
지금의 가난을 더욱더 각성시키는 가슴 아픈 인연
인상적인 건 그렇게 힘들고 닳고 닳은 오늘 내일을 살면서도 책에 대한 열정을 잃지 않는 모습들이다
평생 돈과 가난에 시달렸다던 작가의 마지막 희망이 그것이었나 보다
페이지 사이사이 밑즐이며 낙서가 있다
당시.. 꽤나 심각하고 적극적으로 책을 읽은 모양이다
누렇게 뜬 책의 세월이 2014년 어느 날 다시 살아났다
좁아터진 방구석에서 책 하나 끌어안고 씨름했던 청춘이 있었다
지난 열정을 다시 끄집어내는 건 어려운 일이다
간혹 오늘처럼 맘에 끄달리다 불쑥 불어오는 훈풍에 나를 내놓으면 된다
통장 잔고에 신경쓰느라 맘의 잔고가 바닥인 걸 몰랐다
현실이 성에 차지 않으면 맘이 끓는다
뭐든 자신만이 채워넣을 비밀이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