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에서도 고인의 죽음을 두고 이상하다는 얘기 나왔던 것 같은데...
교감 선생님께서 4월 18일에 숨진 채 발견되었죠.
사고 일어난지 3일째였어요.
그런데, 그 때까지만 해도 다들 설마 단 한 명의 학생도 못 구하진 않을 거라고...
어느 정도는 생존자 구조에 희망을 가지고 있었던 시점이었어요.
교감 선생님께서 수학 여행의 총책임자였기 때문에
배가 오하마나호에서 세월호로 바뀌게 된 경위를 알고 있고
해경이 강력히 부인한 '단원고 8시 10분 연락설'을 입증해 줄 유일한 증인...
(8시 10분 연락이 사실이라면 해경은 최소한 8시 이전에 이미 세월호 사고를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배가 거의 다 침몰한 9시 45분경에야 현장으로 출동한 것이 됨---육지에서 먼 바다도 아니었는데
왜 그렇게 오래 걸려서 출동했을까?)
8시 10분에 해경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는 교사가 교감 선생님의 연락처를 해경에게 알려 주었고,
해경은 교감 선생님에게 연락해 본 뒤, 전화를 받지 않는다며 다른 선생님의 연락처를 알려 달라고 했다죠.
그렇다면 교감 선생님의 휴대폰 통화 목록에는 받지는 않았어도 8시 10분 조금 지난 시각에
해경쪽 연락처가 남아 있을 겁니다.
박지영씨의 죽음과 관련지어 생각해 보니,
교감 선생님의 죽음도 이상하긴 해요.
사고 3일째는 아이들 생존에 희망이 조금은 남아 있던 때였는데,
아이들이 죽었다고 유서에서 단정지으시며 죽음을 택하신 것 같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