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스포츠 선수들의 투혼이 선정적 보도 경쟁으로 얼룩지고 있다. 폐막을 나흘여 앞둔 소치 동계올림픽이 전 세계 여성 선수들이 펼치는 외모 대결의 장으로 탈바꿈했다. 여성 선수들을 성 상품화한 기사들은 올림픽 기간 내내 끊임없이 쏟아졌다.
개막식 직후 영국 스포츠 전문지 토크스포츠가 ‘소치 동계올림픽서 가장 섹시한 여자 선수 톱10’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올리자 국내 언론들은 앞다퉈 이 외신 기사를 퍼날랐다. ‘눈이 즐겁다’는 내용이 주를 이루는 누리꾼들의 반응이 함께 소개됐다. 한발 더 나아가 일부 언론들은 이 매체가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에 올린 영상을 그대로 가져왔다. 영상 속 선수들 대부분은 평상복 또는 운동복 차림이 아닌 몸매가 훤히 드러나 보이는 란제리나 비키니 수영복을 입고 있었다.
한국 여자 컬링 대표팀과 러시아 대표팀과의 경기가 있던 지난 14일. 8-4로 올림픽 개최국을 꺾은 한국은 경기가 끝난 후 온라인에서 러시아와 또 한 번의 경쟁을 펼쳐야 했다. 이른바 ‘이슬비 대 안나 시도로바의 섹시 대결.’ 경기를 마친 이날 오후 인터넷에는 란제리룩을 입고 있는 러시아 컬링선수 안나 시도로바의 사진과 함께 한국 대표팀 선수인 이슬비가 외모 대결을 펼치는 뉘앙스의 기사들이 잇따라 보도됐다. ‘컬링 미녀들, 안나 시도로바 vs 이슬비 누가 더 예쁜가?’ ‘이슬비 vs 안나 시도로바 매력 대결…란제리 화보 보니’ ‘안나 시도로바 비키니 입고 컬링하는 모습…내 마음을 브러싱해줘’ 등 온통 언론은 선수들의 외모에만 집중한 자극적인 제목의 기사들을 생산해냈다.
이뿐만이 아니다. 국내 한 스포츠 일간지는 쇼트트랙 선수 박승희가 하의를 입지 않은 채 허벅지를 드러낸 화보 사진을 올리며 “박승희 허벅지 이 정도면 맥심(남성잡지)에서 섭외해도 될 듯” “화보 또 찍어주세요” 등의 누리꾼 반응을 전했다. 이 화보는 2010년 프로 복서 김주희 등과 함께 촬영한 것으로 ‘얼루어 코리아’에서 ‘아름다운 몸’을 테마로 진행했다. 여자로선 감추고 싶지만 스포츠 선수로선 자랑스러운 몸을 카메라 앵글에 담았다는 취지는 기사에 전혀 나와 있지 않았다.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이윤소 활동가는 “최근에는 외모뿐 아니라 몸매까지 더해 선정주의로 가는 흐름”이라며 “언론의 성인지적 감수성이 부족한 것이 근본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 활동가는 “기사 생산자가 스스로 반성하고 자정해야 한다”며 “여성 스포츠 선수들은 그 자리에 올라가기까지 남성 선수들 못지않게 혹은 그 이상의 혹독한 훈련을 했을 것이다. 외모를 강조하는 보도를 지양하고 전문성을 부각시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포털사이트들도 거들었다. 국내 최대 포털사이트는 소치 2014 테마포토에 ‘소치의 미녀들’이라는 섹션을 따로 만들어 관련 기사를 제공하고 있다. ‘그레이시 골드 미국 섹시 피겨 여신이에요’ ‘한뼘 치마 입은 소치 금발 미녀’ ‘소치 올림픽 시상식 도우미 몸매와 얼굴이 A++’ ‘러시아 컬링요정, 사람이야 인형이야?’ ‘소치의 미녀, 망사스타킹으로 섹시하게’ 등 기사 제목에는 온통 ‘미녀’ ‘요정’ ‘섹시’ 일색이다.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이재경 교수는 “한국 온라인 저널리즘의 선정주의가 극성”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이 교수는 “종이 신문의 힘이 떨어지고 인터넷 매체 영향력이 커지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라며 “방문자 수가 광고비와 연결돼 성인지적 관점이나 인권, 기사의 질을 고려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고 지적했다. 이어 “미국 등 해외의 경우에는 언론사 간 상호 비판과 감시 기능이 잘 돼 있어 그러한 보도 행태가 덜하다”며 “선정적 보도 경쟁 문제를 공론화해 사회적 논의와 합의 과정을 거쳐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독 여성 스포츠 선수들에게 실력보다 외모의 잣대를 들이대는 보도 행태는 최근의 일만은 아니다. 러시아 장대높이뛰기 선수 이신바예바에게는 ‘미녀새’가, 당구 선수 차유람 앞에는 ‘당구얼짱’이라는 수식어가 항상 따라 붙는다. 자극적인 제목과 사진 선점에 골몰하는 작금의 미디어 현실은 흡사 먹잇감을 찾아 내달리는 하이에나들의 전장같다. 국민은 더 이상 ‘미녀’ 선수가 아닌 그들이 흘린 땀과 눈물에 맺힌 진정한 아름다움을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