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송전탑 문제를 생각하면 착찹하면서도
저같이 평범한 개인이 접근하기엔 너무 큰 문제가 아닌가...라는 알량한 핑계로
외면해 왔습니다.
그러나 멀리서 안타까워만 하는 건 아무 소용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밀양에 다녀왔습니다.
제가 방문한 마을은 동화전 마을과 고답 마을이었습니다.
지금 송전탑 반대 농성장은 10군데 남짓 남아 있다고 합니다.
70,80대 할아버지 할머니들께서 송전탑 건설 예정지에 이 추운 겨울에 비닐하우스 움막을 짓고
난방도 제대로 안 되는 그 곳에서 먹고 자며 외롭게 버티고 계셨습니다.
고답마을 움막에는 큰 구덩이를 하나 파 두었더군요.
공권력이 움막으로 투입될 경우 모두 그 곳으로 내려가
목줄을 매고 구덩이에 준비해 둔 휘발유를 끼얹고 불을 질러 돌아가실 거라고...모두 각오하고 있는 일이라고
차분하고 담담하게 말씀하시더군요.
지난 8년 동안 버티고 버티다가
이젠 내놓을 게 정말 목숨밖에 없어서...목숨밖에 걸 수가 없어서
그렇게 각오하고 계신 것 같았습니다.
아직도 고답마을의 노인분들은
새벽 6시면 마을 입구에 모여서 공사 현장으로 가려는 경찰과 한전 직원들과 몸싸움을 하고
그 과정에서 심한 폭언과 폭력을 되풀이해서 당하고 계셨습니다.
연로한 주민 몇십명을 진압하기 위해 경찰 300명이 투입되고
밤중에 기습적으로 공사현장으로 가는 한전직원들을 막으려고
1월 한겨울에 길바닥에서 노숙을 하면서까지 그 분들은 저항하고 있었습니다.
고답마을은 그 아래 형광등을 들고 서 있으면 저절로 불이 켜질 정도로 강력한 765kv 고압 송전탑이
주민들이 살고 계신 마을 한가운데와 주민들의 삶의 터전인 과수원 한가운데에 세워지게 된다고 합니다.
그 정도로 엄청난 고압 전기가 흐르는 송전탑이
사람이 거주하는 지역에 세워지는 일은 지금까지 유례가 없다고 합니다.
지금 밀양 송전탑 예정지 주민들이 분노하는 이유 중 하나는
송전탑 예정지 정보를 소위 돈 있고 힘 있는 사람들은 일찌감치 알아내서
송전탑 인근의 땅을 미리 처분했거나
송전탑 노선을 바꿔서 자신의 땅이나 친인척의 땅 주변은 못 지나가게 변경했다는 것 때문입니다.
얼마 전 농약을 음독하고 돌아가신 고 유한숙 어르신께서도
권력자의 조카 소유의 땅을 피해서 일방적으로 변경된 송전탑이
할아버지의 돼지 사육장에서 불과 150m 떨어진 곳에 세워진다는 것을 통보받고
실의에 빠져 지내시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셨습니다.
애초에 밀양 사건이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게 된 것도
이치우 어르신께서 '누구 한 사람 죽어야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줄 것 같다'고 하시면서
스스로 분신자살하시면서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밀양 송전탑 문제는 아직 끝난 이야기가 아닙니다.
약하고 힘없는 분들의 절규를 외면하지 말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