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정권이 스위스에 비자금 계좌를 개설해 운용했다는 문서가 공개됐다.
박근혜 후보 측에서는 전면 부정했다.
하지만 이 비밀계좌 명의가 10·26사태 이후 박근혜 현 새누리당 대선후보로 바뀌었다는
주장도 그동안 심심찮게 나온 바 있어 대선 정국에서 어떤 영향을 줄지 주목된다.
재미 언론인 안치용씨는 7일, 1978년도 미국 의회 프레이저소위원회 청문회 문서 공개를
통해 박정희 정권의 스위스 비자금 계좌와 구체적인 입금 사실을 폭로했다.
이 문서는 1978년 박정희 정권에 대한 정치자금 제공 여부를 묻는 미 하원 외교위
프레이저소위원회 설문에 대한 걸프사의 답변 내용을 기록한 것이다.
안치용씨는 "메이저 오일컴퍼니인 걸프사가 지난 1969년 박정희 방미경비 명목으로
20만 달러를 스위스 UBS(유니언뱅크) 비밀계좌에 입금시켰던 것으로 확인됐다"며
"1969년 걸프사가 흥국상사 주식 25%를 200만 달러에 인수하려 하자 계약 직전에
이후락이 박정희 방미경비 명목으로 20만 달러를 요구해 이를 스위스 유니언뱅크의
서정귀 계좌로 송금했고, 이 돈은 이후락이 찾아갔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걸프사는 입금 경위를 2페이지에 걸친 문서를 통해 상세히 설명한 것은 물론,
프레이저소위원회는 스위스 유니언뱅크의 입금서류 등도 확보한 것으로 드러났다"며
"서정귀의 스위스 유니언뱅크 계좌번호는 626,965.60D였으며 19만9750달러는
1969년 12월 인출됐다"고 덧붙였다.
"걸프사, 1969년 8월 20만 달러 서정귀 계좌로 송금... 12월 이후락이 인출"
안씨는 이어 "(이후락의 사위) 정화섭이 중앙정보부에 국장으로 재직하면서 정권의
해외비자금을 관리했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라며
"이 서정귀의 유니언뱅크 계좌 역시 이후락이 관리하던 박정희의 스위스은행 비밀 계좌 중
하나일 가능성이 큰 것"이라고 주장했다.
안씨는 "스위스 유니언뱅크의 626,965.60D라는 계좌, 이 계좌가 박정희의 비자금을 관리하는
제2의 스위스 비밀계좌로 추정된다"며 "박정희 방미자금 20만 달러가 바로 이 계좌로 입금됐기
때문에 박정희와의 연관성을 부인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유니언뱅크의 이 계좌에 과연 얼마가 예치돼 있었는지도 낱낱이 밝혀내야 할 것"이라며
"이 비자금은 박정희 정권이 걸프에 막대한 이권을 안겨주는 더러운 뒷거래의 대가이기 때문"
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안치용씨는 3일 자신의 블로그 'secret of korea'에 프레이저청문회 보고서를 싣고
박정희 정권의 스위스 비자금 계좌 의혹을 제기했다.
안씨는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박정희 정권의 스위스 비밀계좌 이야기는 미 하원 외교위원회의
프레이저청문회 보고서에서 시작된다"며 "프레이저청문회는 1978년 10월말 발간한 종합보고서 233페이지와 234페이지에서 박정희가 정치자금을 스위스은행 계좌에 예치해 관리했으며,
김성곤이 육영수 여사 등에게도 자금을 상납했고 이후락의 아들 이동훈이 박정희 자금
위스계좌의 존재를 증언했다고 기록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안씨는 "미 상하원 청문회보고서와 부속책자를 검토한 결과 박정희 정권 차원에서
최소한 3개 이상의 스위스은행 비밀계좌에 비자금을 유지, 관리했음을 알 수 있었다"고
폭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박정희 비자금은 이후락이 모은 뒤 스위스은행 계좌에 예치했다
나중에 인출해 박정희에 전달됐고, 박정희는 이 비자금을 청와대 내 대통령 집무실 책상 뒤의
캐비넷에 보관했다는 것이다.
안씨는 "(보고서에 따르면) 이동훈은 박정희가 스위스 비자금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
지지자들뿐 아니라 야당 지도자들을 매수하는 데도 돈이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며 "보고서는 다른 페이지에서 이후락이 권좌에서 밀려난 이유, 이후락 사위 정화섭의
박정희 비밀계좌 관리 사실 등에 대한 이동훈의 증언을 담고 있기도 하다"고 했다.
안씨는 "이처럼 박정희는 이후락을 통해 스위스은행에 비밀계좌를 개설, 비자금을 관리했음은
명확하다"며 "다만 그 액수가 어느 정도인지는 알 수 없다"고 덧붙였다.
"박정희, 이후락 통해 비자금계좌 관리... 박근혜 후보, 낱낱이 고백해야"
안씨는 이어 "이후락이 실각한 뒤에는 또 다른 사람이 박정희 비밀계좌를 관리했을 것"이라며
"이후락이 해임된 후 박종규 경호실장에게 힘이 쏠리면서 박종규가 자금을 관리했다는
것이 프레이저위원회의 분석"이라고 전했다.
박정희 사망 이후 비자금과 관련, 안씨는 "누군가 돈을 인출해 갔을 것이다, 이 돈이 어디로
갔는지 반드시 찾아내서 국고로 환수해야 한다"며
"박근혜 후보도 자신이 진정 이 나라의 지도자가 되기를 원한다면 아버지 또는 정권 차원에서
관리했던 스위스계좌에 대해 낱낱이 고백해야 할 것"고 강조했다.
안씨는 또, 보고서를 인용, "청와대 고위공직자 증언에 따르면
'1970년 이후락, 김성곤, 김형욱이 각각 개인적으로 1억 달러의 재산을 축적했으며
김형욱이 선서증언을 통해 자신도 김성곤이 모아온 정치자금 중 75만 달러를 개인적 용도로
관리했다고 말했다'고 적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 이같은 의혹에 대해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 캠프의 이정현 공보단장은 6일
"스위스계좌 문제의 경우, 존재하지 않는 게 최근 법정에서도 밝혀졌다,
우리는 박정희의 대변인이 아니다"며 부정했다고 <미디어오늘>이 전했다.
박정희 비자금 의혹은 과거에도 끊임없이 제기된 바 있다.
지난 2008년 12월 별세한 곽태영 전 박정희기념관 반대 국민연대 상임공동대표는
평소 박근혜 후보의 '스위스은행 60억 달러 비자금' 의혹을 거론했다.
곽 전 대표는 10·26 이후 박근혜가 은행전문가 등 5명과 함께 스위스로 건너가
박정희 명의의 계좌를 자신의 명의로 변경했고, 이들에게 수고비조로 5만 달러씩 주었다고
주장했다.
이는 이들 중 한 명이 당시 <경향신문> 기자였던 문명자씨에게 알리면서 세간에 퍼진 것으로
알려졌다.
문명자 기자는 남측 언론인 처음으로
등소평과 김일성 주석,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단독 인터뷰하고 김대중 납치사건을 최초로
폭로하는 등 세계적 언론인으로 명성을 날렸으며,
미국기자협회 이사와 여기자협회 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그는 책 <내가 본 박정희와 김대중>에서 박정희의 스위스은행 비자금 의혹을 제기한 바 있으며, 2008년 7월에 별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