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상실증은 늘 드라마에 나오는 이야기 이다. 기억상실증이 나오면 너무 식상하고 왜 꼭 드라마 전개에 이것이 있어야 되냐고 인터넷을 들끓고 찬반양론이 있다.
그러나 사실 진짜 삶에서 기억상실증은 늘 있는 것이라는 것을 요즈음 알게 되었다.
당연히 나를 위해 기억해 주어야 하는것임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의 이익이 없을 때는 잔인하게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것. 전체 기억상실증일 뿐더러 부분적인 기억상실증. 언론을 흔히들 사실 전체를 보지 못하고 주제를 정하고 그 부분만 집중하면 전체 시야가 달라진다고 하지 않았나. 언론인 출신인 목사님이 하시던 이야기가 생각난다. 똑같은 사건을 두고도 어떤 시야로 보느냐에 따라서 완전히 다르게 보인다고. 똑같은 강의를 두고 조는 사람을 촬영하느냐, 집중하고 있는 사람을 촬영하느냐에 따라 그 강의가 재미있게도 지루한 강의도 된다고.
남편하고도 늘 이런것을 느꼈다. 똑같은 사실을 두고도, 똑같은 대화 내용을 가지고도 내가 기억하는 부분하고 남편이 기억하는 부분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그래서 내용보다는 어떤 사실을 보는 관점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느끼곤 한다. 그 관점이 일치하면 사실보다 더 내용이 일치하는 것이다.
그런데 아버님 장례식이 끝나고 나서이다. 아마도 너무나 갑작스런 장례식을 치루게 되고나서 맏며느리이자 외며느리로서 주체가 되어서 장례를 치루었다. 여러가지 행사들을 치루다 보니 음이 조금 높아져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10년이 넘도록 한번도 해보지 않았던 서운했던 이야기들을 아들, 딸 다 똑같다는 아가씨 말에 동기가 되어서 서운했던 많은 부분을 이야기 하기 시작하였다. 어머니가 결혼할때 내게 했던 이야기들, 결혼을 준비할때 서운했던 내 맘들, 그런 이야기들을 하다보니 어머니도 내게 서운하셨던 이야기들을 하시게 되었다. 그런데 그런 이야기들을 하면 서로 오해가 풀리고 예의있게 넘어갔던 부분들이 풀리리라 생각했엇다. 그러나 한가지 사실을 두고도 너무나 첨예하게 다른 기억들을 가지고 있었다. 현장 녹음같이 녹음과 사진으로 증명하지 않고서는 누가 옳다 하겠는가? 분명히 난 그랬고 없는 형편에 선물했다고 생각했는데 어머니는 하나도 기억을 못하시고 어머니가 주신것만 기억하고 내가 과일을 안사왔다는 것에 늘 기분이 나쁘셨다고 이야기 하셨다. 내가 드린 롯데 백화점에 가서 산 흑진주 반지는 어디 있는 걸까? 내가 드린 과분하게 많았던 그 추석 용돈은 왜 기억못하시는 걸까? 시어머니라는 위치에서 내게 꼭 그때 그런 말을 하셨셔야 했나? 그런데 그런것들은 하나도 기억 못하시고 어머니는 어머니가 서운했던 기억들만 기억하셨다. 내가 가까이 사는 어머니네 가면서 과일을 안사왔던 것이 서운하고 예의가 없다고 생각하셨단다. 그날 난 술 한잔도 마시지 않았는데도 술이 아니 서러움에 취했다.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할정도로 시댁식구와 헤어지고 나서는 서럽게 울었다. 얼마나 울고 헛소리를 하던지 가게를 하던 남편은 내가 꼭 술취한 손님같았다고....그래도 다행인건 그날, 남편이 내게 미안하다고 했다. 그동안 살아왔단 내 삶이 불쌍하고, 언젠가는 나의 선함이 기억될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이 허무했음을 깨달으면서 서글펐던 기억. 그 맘이 얼마나 아픈지! 그래도 남편이 내게 미안하다 해서 난 그날 구제 받은거나 마찬가지였다. 남편하고 결혼하고 겪었던 그 이후의 일이 결혼한 여자들이면 다 해야 되는것 아니냐고 큰소리 치곤 했던 남편이 이젠 나의 어려움을 이해해 주고 미안해 하는것만으로도 드라마에서 도도하고 차가웠던 남자들이 16부가 끝날때쯤 변했듯이 10년의 세월이 지나면서 변한 남편이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기억상실증은 드라마에만 있는 것이 절대 아니다. 늘 우리에게 있는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우리의 삶을 드라마틱하게 하는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