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어처구니없고 불행한 사실을 접하고 마음이 우울해졌습니다. 인천의 모 중학교 2학년 남학생이 여러명의 학생이 지켜보는 가운데 고교 1학년 남학생 다수로부터 집단폭행을 당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 이같은 집단폭행 끝에 목숨을 잃었다는 뉴스였습니다.
이처럼 집단 폭행이 벌어진 이유를 살펴보니 더 어이가 없습니다. 가해자인 남학생이 사귀는 여자 친구를 피해자인 중2 남학생이 사귄다는 소문 때문에 벌어진 사단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소문이 사실은 ‘헛 소문’이었다고 하니 채 피워 보지도 못한 채 죽음을 맞은 이 아이의 불행 앞에 무슨 말을 할까요. 그리고 이런 경위로 옥보다 귀한 아들을 잃은 그 부모님과 가족이 느낄 참담한 슬픔 역시 할 말을 잃게 만들 뿐입니다.
그러다보니 피해 부모 입장에서 아들이 맞아 죽을 때까지 그냥 방관하며 지켜본 학생에 대한 분노 역시 이해가 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무도 말릴 생각없이 이 어린 학생이 고등학생 다수로부터 당하도록 그냥 ‘나몰라’라 했다고 하니 저 역시도 이해할 수도, 용서하기도 힘든 분노감이 듭니다. 그러다 보니 피해 학생의 부모는 당시 곁에서 이 폭력 사태를 방관한 학생 모두도 처벌해 달라고 경찰에게 요구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안타까운 사건을 살펴보며 저는 한편 이런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과연 그 아이들에게 끼어들지 말고 방관하라며 가르친 사람은 누구였을까. 그냥 지켜볼 뿐 나서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게 만든 이들은 없었을까.
저는 90년대 초반부터 인권운동가로 일해 왔습니다. 인권운동가의 역할을 한마디로 정리한다면 ‘남의 일에 숙명적으로 끼어드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도와달라며 찾아오는 분들도 많지만 제 스스로가 어떤 부당하거나 불의한 일을 보며 끼어드는 일이 더 많습니다. 예를 들어 과거 90년대에는 경찰의 부당한 검문이 빈번했습니다. 그러면 가던 걸음을 멈추고 그 일에 끼어들었습니다. 경찰에게 검문받는 이에게 “만약 불심 검문을 거부하고 싶다면 불응할 권리가 있다”며 말해 주곤 했습니다. 그러면 “당신이 뭔데 공무 방해 하는거야” 운운하는 검문 경찰과 ‘시비 아닌 시비’를 자청한 것입니다.
힘이 약한 여성 등이 폭력적인 누군가로부터 억울한 피해를 당하는 지하철에서 이런 사례는 더욱 많았습니다. 술에 취한 남자가 젊은 여성에게 큰 소리로 쌍욕을 하며 행패를 부리는데도 바로 그 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 침묵하며 눈을 감고 있거나 신문만 보는 상황을 참 많이 경험 했습니다. 그럴 때 저는 ‘생각’보다 ‘몸’이 먼저 나섭니다. “저 일에 개입할까 .말까.”하는 생각보다 제 몸이 먼저 그 상황에 개입하고, 그러다가 그 싸움이 제 싸움이 되는 일도 참 겪은 많은 사례중 하나입니다.
아내는 종종 이런 저에게 너무 과도하게 남의 일에 개입하지 말았으면 한다고 조언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다치거나 억울하게 몰리면 당신을 누가 도와줄 사람이 있겠냐. 또 그러다가 칼에 찔리거나 다치면 어떻게 하냐며 진심어린 걱정을 하기도 합니다. 아내의 말에 수긍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개입한 지난 일들을 돌이켜 생각해보면 ‘제가 참 어리석었다’는 생각이 드는 일도 적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지난 2000년에 어느 취객으로부터 따귀를 맞고 있는 한 공익요원을 도와줬던 일입니다. 이번에도 생각보다 몸이 먼저 나섰습니다. 지하철에서 맞고 있는 공익요원을 위해 취객의 폭행을 제지했습니다. 그러자 취객은 나의 넥타이를 움켜쥐고 한바퀴 돌려 내 목을 조르는 등 패악을 멈추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다행히 경찰이 출동했고 함께 파출소로 갔습니다. 그런데 이때 공익요원의 행동은 참으로 어처구니 없음, 그 자체였습니다. 자신을 도와준 나에 대해 고맙다는 말은 고사하고 그저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말만 되풀이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경찰이 “취객에게 맞은 사실이 있냐”고 물었고 공익요원은 “그런 사실은 있지만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라고 했습니다. 이어 나와 취객 사이에 벌어진 폭행 사건에 대해 다시 묻자 그는 조그마한 소리로 “정신이 없어 잘 모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야말로 ‘헐’ 소리가 나오지 않을 수 없는 기억입니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기억이 사실은 적지 않습니다. 그중 이 사건이 가장 대표적인 사건이라고 말하겠습니다. 여하간 다행히 저는 이 사건에서 쌍방 피의자로 몰리지 않고 무죄 처분을 받았지만 한동안 경찰과 검찰 수사를 받는 처지가 되어야 했음은 씁쓸한 기억입니다.
그럼 이제 다시 이번에 벌어진 사건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왜 아이들은 이 폭행사건에 개입하지 않았을까요. 왜 이 잘못된 범죄행위를 말리려 하지 않았을까요. 바로 우리가 잘못입니다. 어른의 잘못입니다. 어른이 말합니다. ‘괜히 남의 일에 끼어 들지 말라’고 말입니다. 끼어들어 봤자 너만 손해라는 말을 저 역시 어려서부터 참 많이 들었습니다. 민주화 운동 전면에 나서지 말고, 공안 사건 벌어지면 나서지 말고, 촛불 시위에 참여하지 말라는 말 역시 우리의 어른들이 ‘살아본 삶의 지혜’라고 늘 들려준 말이 아니었나요.
바로 이러한 우리의 방관과 무관심이 이번에 벌어진 불행한 사건을 일으킨 ‘주범’입니다. 내 아이는 안 되고 다른 사람 누군가가 나서서 도와주면 된다는 이기적인 마음이 제2, 제3의 불행한 누군가를 만드는 ‘영양분’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말합니다. 남의 일에 적극적으로 끼어 드십시오. 제가 그런 당신과 함께 하겠습니다. 불의를 보면 용기 내서 ‘안돼’라고 외쳐 주십시오.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이 한 명, 두 명 늘어나면 그것이 바로 우리가 바라는 ‘사람사는 세상’이 되는 가장 빠른 길입니다. 왕따는 잘못이라고 싸워주시고 세상은 다 이런 것이라며 ‘불의를 정당화 하는 것’에 화를 내 주십시오. 지금 우리가 해야할 정의로운 행동입니다.
남의 일에 끼어드는 것이 때로는 피곤하고 한심해 보일 수 있지만 지금까지 살아온 제 경험에 비춰본다면 이것 한가지는 분명히 말할 수 있습니다. 제 스스로가 느끼는 자부심입니다. 가치있게 살아가고 있다는 자기 스스로의 확신입니다. 그래서 오늘 또 다시 누군가가 자신의 힘과 권위를 통해 불의하게 군림하려 한다면 저는 기꺼이 끼어들며 외칠 것입니다.
“안돼”
바로 이것이 인권운동가의 숙명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인권운동가가 되는 날이 ‘정의로운 세상’의 첫 시작임을 말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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