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화숙]내란음모 수사래도 의심받는 국정원
국정원이 현직 국회의원을 내란예비음모로 수사에 나섰습니다. 자택과 개인연구소 사무실, 의원회관까지 압수수색을 했습니다. 지하당을 결성하고 유사시에 총기를 사용해서 발전소 전화국 유류시설 등의 기간시설을 점거하고 파괴하려고 모의했다는 것입니다. 엄청난 내용입니다.
해당 국회의원은 국회 회기중이라 체포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나타나서 해명을 하지 않습니다. 변장하고 탈주했다고 종편방송이 나발을 불어대기도 했습니다. 그런데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이 정도가 되면 상식적으로는 이 국회의원을 의심해야 합니다. 그는 종북주의자라고 여러 차례 언론에 등장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멈칫하게 됩니다. 왜냐? 발표하는 곳이 국정원이기 때문입니다. 대선에 개입하고도 안했다고 우기는 국정원, 경찰에게 축소수사를 지시한 국정원, 전말이 다 드러났는데도 그건 대북심리전을 펴고 종북세력을 잡기 위해서 했다고,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는 국정원이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신성한 국회 국정조사장에서 말입니다. 거짓말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이 무슨 일인들 거짓없이 하겠습니까? 그러니까 믿기가 어렵습니다.
더구나 최근에는 국정원이 수사해서 간첩이 서울시 공무원으로 암약하고 있다고 대대적으로 보도됐던 사건이 사실은 국정원의 고문 수사에 의한 거짓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바로 지난 주에 이 공무원에 대한 재판부의 무죄선고가 있었습니다. 이런 국정원이니 무슨 거짓말로 가짜 혐의를 얽어맬지 어떻게 압니까.
더구나 이번에 들이댄 죄목이 내란음모죄입니다. 33년전 1980년에 군부독재의 부활에 저항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기 위해 막강한 야당 정치인인 김대중 전 대통령과 지식인들을 얽어서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을 꾸미는 데 등장한 것을 마지막으로 사라졌던 죄입니다. 1974년에, 역시 정부에 비판적인 경북 지역의 진보지식인을 죽이기 위해 등장한 것이 내란음모죄입니다. 인혁당 사건입니다. 이 복고적인 죄명의 등장이 국정원의 진의를 의심하게 만듭니다.
간첩이 없으면 간첩을 만들고 멀쩡한 국민들을 지역차별의 대상으로 삼아 동서분열에 앞장선 국정원의 전력을 생각하면 도대체 말 그대로 믿기가 어렵습니다.
더구나 민주당은 국정조사를 마치고 국정원의 개혁안을 곧 내놓을 예정입니다. 그곳에는 수사권을 없애고 예산을 감시하며 특정경비를 줄이는 내용도 들어있습니다. 그러니 국정원이 존재감을 과시하기 위해 무슨 일을 꾸민 것은 아닌가 이런 의심이 드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런 의심에 기름을 붓는 것은 정부의 행동입니다.
우선 청와대는 전혀 몰랐다고 합니다. 뉴스를 보고야 대통령은 경악을 했다고 홍보수석이 발표했습니다. 1인 입법기관이라 불리는 국회의원에 대한 압수수색입니다. 그런데 그걸 대통령에게 사전보고하지 않았다면 그게 비정상입니다. 그런데 그런 척을 합니다. 그거야말로 뭔가를 숨긴다는 느낌이 듭니다. 더구나 종편은 청와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서 이석기 의원이 변장하고 택시타고 도주했다고 보도했습니다. 과거 이명박 정부에서는 청와대 관계자란 홍보수석의 다른 이름이었습니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그냥 종편이 막 가공해서 써대도 되는 사람인지, 역시 홍보수석인지 궁금합니다. 확실한 것은 국회의원에 대한 압수수색이 대통령에게 사전에 보고되지 않아도 심각한 문제이고 보고됐는데도 생판 몰랐던 듯 거짓말을 한다면 그것 역시 심각한 문제입니다. 굳이 따진다면 보고되지 않는 것보다는 거짓말이 더 심각한 문제입니다. 거짓말을 하는 집단은 더 나쁜 일도 서슴없이 저지른다는 것은 국정원 정치개입에서 다 드러나고 있으니까요.
국정원이 압수수색에 나서는 동안 검찰은 전혀 몰랐다, 압수수색에도 전혀 관여하지 않고 있다고 입장을 발표했던 수원지검은 갑자기 오후 들어서 검사 4명과 수사관 8명으로 수사팀을 급히 꾸렸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검찰과 국정원을 함께 조율하는 어딘가의 지휘를 받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국정원말고는 전혀 몰랐다는 듯한 행동은 쇼로 보입니다.
현재의 국정원이 국민의 신뢰를 완전히 잃은 것과는 별개로 국정원 자체는 신뢰를 얻어야 할 국가기관입니다. 국가기관이 신뢰를 잃는다면 진짜 범죄자를 누가 막아주겠습니까. 그 문제가 바로 이렇게 터진 것입니다. 엄청난 혐의를 받고 있는데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국회의원을 의심해야 할 상황에서도 국정원의 행위를 의심하는 이 불상사는 바로 국정원 자신이 자초한 것입니다.
국정원이 의심을 사지 않는 길은 뻔합니다. 국정원이 저지른 거짓과 불법을 말끔히 털어내는 것입니다. 그래야 국가안보를 지키는 기관으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내란음모는 국정원이 없어도 검찰이 잡을 수 있지만 국정원이 정치개입을 한 것은 국가기관이 민주국가의 근본을 흔드는 불법에 나섰다는 어마어마한 사건입니다. 이 진상이 규명되고 문제 인물들이 국정원으로부터 완전히 제거되지 않는 한 국정원이 국가안보를 지키기 위한 어떤 사건을 찾아내도 신뢰를 받기 어렵습니다. 국가안보를 책임진 기관이 신뢰를 받지 못하면 국가안보가 얼마나 위태로워지겠습니까.
그러니 이제라도 국정원 자신이 엄정한 수사를 받고 국정원 정치개입에 대한 진실만을 밝히기 바랍니다. 그래야 진짜 국정원을 세운 목적, 나라안보를 지킨다는 목적을 제대로 수행하게 됩니다. 만일 청와대가 국정원 국정개입의 진상조사를 외면하고 엉뚱한 소리나 하고 있다면 대통령은 국정원이 나라안보를 지키는 기관이 아니라 권력을 지키는 기관으로 간주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국가의 수장으로 자격이 없다는 말입니다.
아울러 통합진보당과 이석기 의원에게도 말합니다. 통합진보당이 국정원의 정치개입 진상을 밝히는 일에 적극 나서고 있는 점, 높게 평가합니다. 그러나 당사자가 신변보장이 되는국회의원이면서 이런 초미의 관심사에 자기 입장을 밝히려 등장하지 않는 것은 오해를 사고도 마땅한 행동입니다.
내란음모죄에 대한 수사와 국정원 정치개입에 대한 진상조사는 별개의 일이라는 것은 정부뿐 아니라 이석기 의원과 통진당도 분명히 인식하기 바랍니다.
☞ 2013-8-29 서화숙의 3분칼럼 팟캐스트로 듣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