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와 갑자기 하루 휴가가 생겼네요.
청소하다 갑자기 책이 눈에 띄어 <몽실언니> 읽었어요.
오랜만에 보니 마음이 순해지네요.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기도 모자란 세상에 벌어지는 혼란스럽고 끔찍한 일은 외면하고
나 말고는 다 밀어내는 세상의 처세에 슬그머니 어쩔수없다며 한다리 올리고 따라가다가
가만히 이분을 떠올리면 뜨끔하고 정신이 나기도 하고요.
다른 님들도 마음속에 그런 어른이나 책 있으세요?
제 마음의 종교는 이분인거 같아요.
권정생 선생님 지금도 살아계셨으면
아마도 천불이 나서 병이 더 악화되셨겠지만..그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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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권정생 선생님 유서는 못보신 분들 위해 올려봅니다.
읽을때마다 평생 아팠던 분이 고통을 받아들이며 일군 군더더기 없는 담백한 삶이 마음에 울려요)
<유 서>
내가 죽은 뒤에 다음 세 사람에게 부탁하노라
1 최완택. 목사. 민들레 교회. 이 사람은 술을 마시고 돼지 죽통에 오줌을 눈 적은 있지만 심성은 착한 사람이다.
2 정호경. 신부. 이 사람은 잔소리가 심하지만 신부이고 정직하기 때문에 믿을 만하다.
3 박연철. 변호사. 이 사람은 민주변호사로 알려졌지만 어려운 사람과 함께 살려는 보통사람 이다. 우리 집에도 두어 번 왔지만 나는 대접 한 번하지 못했다.
내가 쓴 모든 책은 주로 어린들이 사서 읽는 것이니 여기서 나오는 인세는 어린이에게 둘려주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만약에 관리하기 귀찮으면 한겨레신문사에서 하고 있는 남북어린이 어깨동무에 맡기면 된다. 맡겨놓고 뒤에서 보살피면 될 것이다.
유언장이라는 것은 아주 훌륭한 사람만 쓰는 줄 알았는데, 나 같은 사람도 이렇게 유언을 한다는 것이 쑥스럽다. 앞으로 언제 죽을지는 모르지만 좀 낭만적으로 죽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나도 전에 우리 집 개가 죽었을 때처럼 헐떡헐떡거리다 숨이 꼴깍 넘어가겠지, 눈은 감은 듯 뜬 듯 하고 입은 멍청하게 반쯤 벌리고 바보같이 죽을 것이다. 요즘 와서 화를 잘 내는 걸 보니 천사처럼 죽는 것은 글렀다고 본다. 그러니 숨이지는 대로 화장을 해서 여기저기 뿌려주기 바란다.
유언장치고는 형식도 제대로 못 갖추고 횡설수설했지만 이건 나 권정생이 쓴 것이 분명하다. 죽으면 아픈 것도 슬픈 것도 외로운 것도 끝이다. 웃는 것도 화내는 것도 끝이다. 그러니 용감하게 죽겠다.
만약 죽은 뒤 환생할 수 있다면 건강한 남자로 태어나고 싶다. 태어나서 25살때 22살이나 23살 쯤 되는 아가씨와 연애를 하고 싶다. 벌벌 떨지 않고 잘 할 것이다. 하지만 다시 폭군지도자가 있을 테고 여전히 전쟁을 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환생은 생각해봐서 그만둘 수도 있다.
2005. 5. 1. 권정생
<돌아가시기 전에 남긴 편지>
정호경 신부님,
마지막 글입니다. 제가 숨이 지거든 각각 적어 놓은 대로 부탁드립니다. 제 시체는 아랫마을 이태균 군에게 맡겨 주십시오. 화장해서 태찬이와 함께 뒷산에 뿌려 달라고 해 주십시오.
지금 너무 고통스럽습니다. 3월 12일부터 갑자기 콩팥에서 피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뭉퉁한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계속되었습니다. 지난날에도 가끔 피고물이 쏟아지고 늘 고통스러웠지만 이번에는 아주 다릅니다. 1초도 참기 힘들어 끝이 났으면 싶은데 그것도 마음대로 안 됩니다.
모두한테 미안하고 죄송합니다. 하느님께 기도해 주세요. 제발 이 세상 너무도 아름다운 세상에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일은 없게 해 달라고요. 재작년 어린이날 몇 자 적어 놓은 글이 있으니 참고해 주세요.
제발 그만 싸우고, 그만 미워하고 따뜻하게 통일이 되어 함께 살도록 해 주십시오.
중동, 아프리카, 그리고 티벳 아이들은 앞으로 어떻게 하지요. 기도 많이 해 주세요. 안녕히 계십시오.
2007년 3월 31일 오후 6시 10분
권정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