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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냉장고 청소를 하면서 제 자신에게 너무 실망했어요

깍뚜기 조회수 : 5,658
작성일 : 2013-06-28 00:03:47
묵은 청소를 하면서도, 
널부러진 서류와 책을 째려 보면서도, 
이게 최고의 실망이야! 이 이상 더러울 수는 없다!!! 침울했었는데,
냉장고 앞에선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방바닥이 그냥 커피라면, 
냉장고는 티오피랄까요 ㅠ 


[냉장고 앞에 선 무뢰한, 셀프 보고서] 

발굴 요원 : X 개월만에 청소를 시도한 1인 (X가 두 자릿수일 가능성 농후)

대상 : X개월 방치된 석빙고 장착된 냉장 고분 

발굴 사유 : 이사를 앞두고 이삿집 센터 업체분들의 시력, 후각 등의 최소한의 복지와 안녕을 위해. 
나는 대강 참아도 도저히 남에게 피해를 입힐 수는 없으니까요. 
................ 그 꼴을 누가 본다니 생각만 해도 얼굴이 화끈거려 노구...는 아니고 게으른 몸을 겨우 움직임 

소요 시간 : 1시간 30분 

노동요 : 퀸, 'Under Pressure' 뮤즈님 음방에 신청곡 때림 

작업 복장 : 반팔티 + 반바지, 맨손에서 시작 ---> 나시 + 반바지, 일회용 비닐장갑 두 겹 착용 

출토 유물 : 전체적으로 오파츠 수준 ㅜㅜㅜ 정확한 연대는 방사성탄소 연대측정법으로 가능...미친 ㅋㅋ
식기류, 과채류, 어패류, 광물까지 역대급 품목

특기 유물로는 

선캄브리아대에서 막 건너온 말린 고사리, 역시 진화의 세월을 견뎌온 만큼 모양새의 변화 전혀 없음 
말라비틀어진 냉동 생선, 등푸른 고등어가 바로 탁본 뜨면 떠질 기세 
주먹크기 냉동 육류, 주먹고기? 돈인지 우인지 확인 불가 ㅠ
원조 할머니의 애매한 웃음이 얼음결에 더욱 빛나는 천안 호도과자 봉다리 
버리지 않겠노라 살뜰히 얼려둔 밥덩이들 

앤드 *ㅃ#@$@(*ㅖ@*$ㅖ@#*ㅖ$@#ㅖ(*$@# 

두부 반모로 추정되는 반죽 그릇 
남은 카레 봉지 1, 2, 3 호 
남은 드레싱 병 1, 2 호 
카레 1호는 드레싱 2호가 밉다!
@$*(@*ㅖ$#*ㅖ@#4 가 들어있는 작은 냄비 --> 유레카! 어쩐지 네가 가출했나보다 했거늘, 버려야겠죠? 흑  
우유팩 --> 색깔, 냄새가 고르곤졸라 피자와 100% 일치, 정말입니다!!!
느물느물한 오이김치통 
봄에 캠핑가려고 샀던 ** 봉다리 --> 두고 오는 바람에 캠핑가서 고기 모자랐음 흑 
오랜된 쨈병, 이거슨 미라인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었음 
3년 묵은 매실효소 --> 심봤다~~~ 

앤드 @(#$*ㅖ@*$ㅖ!*ㅖ#!@*ㅖ#*!ㅖ@*#ㅖ!@

발굴 사고 : 눌러붙은 찌꺼기를 벅벅 벗기느라 냉장실 야채칸 서랍 파손...;;

출토 의의 : 출토 유물은 천하의 쓸모없는 쓰레기로 변했으므로 보존의 가치, 기증 가치 전혀 없으며
발굴자의 무능, 게으름, 한심함 만을 증언하는 2차 자료 가치만 인정됨 

그나마 냉장, 냉동 보관이라 악취는 거의 안났지만, 
나란 인간은 대체 뭔가, 정말 한심해지더군요. 
냉장고를 저 따위로 만들어놓고 뭔 일을 한다고 쯧쯧
다 먹지도 못할 식재료를 저렇게 방치해두다니 그래놓고 쯧쯧 
혼자 반성할 수 없다! 공범자인 남편을 위한 증거사진은 찍어 두었습니다 

그나마 순화해서 쓴 보고서라는 게 참 부끄럽네요.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지만, 유물은 패자의 증인 ㅠㅠㅠㅠ
이제 새롭게 태어나고 싶어요.
흑흑흑 












IP : 124.61.xxx.87
23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충고
    '13.6.28 12:07 AM (125.180.xxx.210)

    남편에게 보여주지 마세요.
    그냥 원글님 이미지 보호하셔야죠!

  • 2. 쭐래쭐래
    '13.6.28 12:16 AM (221.148.xxx.107)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님 덕분에 많이 웃어요!!!

  • 3. 저도...
    '13.6.28 12:22 AM (211.217.xxx.202)

    엄청 반성반성 많이 합니다.
    나의 더러움에 놀라고,
    이렇게 많은 음식을 버려야 한다는 죄책감에 또 한번 놀라고.
    이전보다는 한단계 좋아지긴 했는데,
    앞으로 갈길이 멉니다
    -결혼9년차.^^

  • 4. 두분이 다 비슷 하신가봐요요
    '13.6.28 12:25 AM (24.209.xxx.8)

    저 혼자라면 님과 비슷할거라 보입니다만,

    저희 남편은 유물을 존중하지 않는 신흥 졸부라....
    일주일만 지나면 쓰레기 통으로.
    자기가 인식 안돼는 유물이 아니면 쓰레기 통으로.
    2차 자료 유물 한번 검출되면 잔소리가 랩으로....

    본의 아니게 냉장고가 엄청 산뜻 합니다. ㅋ

  • 5. 깍뚜기
    '13.6.28 12:26 AM (124.61.xxx.87)

    공동관리구역이라 남편도 이 사태를 직시해야할 것 같아요 ㅠㅠ
    부끄럽습니다. 부창부수네요

  • 6. 으흫
    '13.6.28 12:31 AM (211.221.xxx.183)

    왜 냉동실만 들어가면 모든 고기는 똑같아보이는 걸까요-_- 심지어 나물 뭉친거하고도 구분이 안됨요ㅠ-ㅜ 너그들의 정체성을 찾아 이것들아ㅠ

    제가 간만에 무거운 몸을 일으켜 n개월마다 냉장고에 퇴적된 음식쓰레기, 아차, 유물 정리를 하면 남편이 옆에서 비웃죠. 환경보호 말만 떠들지 말고 식재료를 아끼라고...ㅠㅜ

  • 7. 에디
    '13.6.28 12:38 AM (115.136.xxx.162)

    저는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제 머리를 탓합니다.
    물론 그 전에.. 게으름 탓이 젤 크겠지만요.

  • 8. 야시맘
    '13.6.28 12:44 AM (116.121.xxx.49)

    깍두기님 저보다 시간 덜걸리셨네요
    재미있게 보고 갑니다
    낼 서비스센터에 전화하세요 ㅎㅎ

  • 9. ㅎㅎㅎㅎㅎ
    '13.6.28 12:53 AM (49.144.xxx.33)

    고고학자셨군요.ㅎㅎ
    귀한 유물 출토하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전 한때 전도 유망한 생물학자였습니다.
    냉장고를 통해 식재료의 여러 균들을 직접 배양했고 식품의 유통기한을 직접 실험했죠.
    가족들은 이런 실험을 잘 견뎌줬고
    척박한 환경에 적응되어 어떤 음식에도 배탈이 잘 안나는 장으로 진화시켰죠.
    인간의 위대함이란..ㅡ.ㅡ

    이젠 은퇴를 해서 더 이상의 실험은 중단되었는데
    함께 이 실험을 목도했던 남편은 지금도 그 실험을
    히틀러의 가스 실험에 비견하며 비인간적이었고 비윤리적이었다고 토로합니다.ㅎㅎ

  • 10. ㅋㅋㅋㅋ
    '13.6.28 12:55 AM (211.234.xxx.159)

    무슨글이 이렇게 재미있나했더니 역시나 깍두기님글~ ㅋㅋㅋㅋ수고하셨어요ㅋㅋ

  • 11. 배고파
    '13.6.28 1:36 AM (211.108.xxx.160)

    원글도 댓글도 너무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 12. 흐흐흐
    '13.6.28 1:57 AM (211.179.xxx.254)

    저도 내일 유물 발굴 좀 해야겠습니다 ㅎㅎ

  • 13.
    '13.6.28 2:33 AM (211.246.xxx.153)

    님 냉장고가 엄청 큰가 봅니다.
    저게 다 들어있다니ㅡ

  • 14. 세헤레자데
    '13.6.28 2:47 AM (85.76.xxx.76)

    이말년 화백의 명작이 생각나네요...'어느 가정집 냉장고'
    http://comic.naver.com/webtoon/detail.nhn?titleId=103759&no=69&weekday=wed

  • 15. ..
    '13.6.28 3:33 AM (70.68.xxx.255)

    키톡의 깍두기님... 여기서 이러시면 아니되오 ㅠ.ㅠ

    아님, 키톡커의 자질을 발휘하여 몇백만년만에 음식으로 환생한 고생대 유물 특집이라도 올려주시길~

  • 16. gggg
    '13.6.28 3:39 AM (121.130.xxx.7)

    저도 오늘 냉동실 털어냈어요.
    아휴~ 뭐가 그리 두고 먹을 게 많은지.
    당장 먹을 건 없고 두고 먹을 것만 가득이네요 ㅋㅋ
    여지껏 안먹은 건 앞으로도 안 먹을 거라는 진실을 외면하지 않고
    모든 것이 숲으로 돌아가지 않게 과감히 버렸습니다.

  • 17. 미투
    '13.6.28 7:36 AM (183.96.xxx.97)

    저도 냉장고 청소하면 제 머리를 한 대 쥐어박아요

  • 18. 가브리엘라
    '13.6.28 8:35 AM (39.113.xxx.34)

    냉장고가 본래 우리가 접하는 3차원의 공간이 아닌거에요.
    냉장고안은 우리가 살고있는 세계와는 다른 우주가 있는 곳입니다.
    그안에는 블랙홀도 있고 끝없는 미로도 있고 분명 없다가도 짠!하고 나타나는 마법의 방도 존재하는 곳이에요.

  • 19. ...
    '13.6.28 8:47 AM (220.120.xxx.193)

    저희도 유물이 대거 묻혀있는,, 기대되는 유적 냉장고가 있습지요.ㅠ
    남편이 열기만 하면.... 잔소리가 랩수준이 아니라.. 전쟁으로 갑니다.ㅠㅠ
    발굴을 아예 하지 말아야하는데.. 점점 협소해지는 관계로..ㅠ 가끔 하나씩 남편이 싱크대에 보란듯이 쌓아놓습니다.. 전생에 적장(왠수)였던것이 확실.... 이생에서도 싸우는 운명이네요.

  • 20. 미투
    '13.6.28 10:49 AM (112.171.xxx.227)

    저도 곧 발굴작업에 나서야 하는데... 아. 두려어서 엄두가 안 납니다 ㅠㅠ
    마음같아선 그냥 냉장고 통째로 버려 버리고 싶어요.

  • 21. 신갈댁
    '13.6.28 12:31 PM (1.223.xxx.219)

    저도 이사전에 이삿짐센터 아줌마가 냉장고 열어보고 멘붕에 빠지실까봐 나름 정리했는데...큰 비닐봉투로 거의 5-6개는 갖다버린거 같아요.그런데도 그 분의 까다로운 기준을 통과하지 못했어요. 전 나름 정리 다 해놓고 자랑스러웠는데 아줌마가 냉장고 열어보고 정말 한심하다는 눈으로 "냉장고 사놓고 한 번도 안닦으셨나보다"라고..ㅜㅜ 아 그게 한거라고요..ㅜㅜ 나름 주부9년차라고요..ㅜㅜ

  • 22. 헐~
    '13.6.28 10:37 PM (1.243.xxx.145) - 삭제된댓글

    나 82죽순이 됐나봐.
    몇 줄 읽어 보고 누구 글인지 알것같아 위로 올려 봤더니 역쉬나...
    뭐하시는 분인지 궁금하네요.
    재기 발랄한 글 솜씨는 82에서만 볼 수 있는건 아니겠죠?

  • 23. 깍뚜기
    '13.6.29 1:26 AM (124.61.xxx.87)

    흑. 비슷한 경험 있는 분들 많으시군요 ^^;.
    그나저나 치웠는데도 이삿집 센터 아주머니가 힐난하셨다니 갑자기 걱정이 한 가득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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