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서기 성공한 ‘친노’ 안희정 충남지사
“노 전 대통령은 팔이 안으로 굽는 것 혐오했는데 노무현 정신 사라지기 바라나”
·“도지사 되고 배운 것은 설령 답이 없더라도 들어주는 것”
노무현… 이미 임기를 끝마친 전임 대통령이시다. 심지어 이 세상에 계시는 분도 아니다. 그런데도 세상은 왜 이리 그의 이름을 놓고 시끄러운가.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적 자산이 친노라는 이름으로 불공정 상속되고 있다는 불만이 이 소란을 일으키고 있는 원인 중의 하나다. (중략)
노무현 대통령 4주기 다음날인 5월 24일 새벽, 안희정 충남도시자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올렸다. 노 대통령 생전에 ‘좌희정 우광재’로 불렸지만, 2008년 18대 총선에서 과거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 전력으로 당시 비리전력자 공천 배제 룰에 걸려 공천장을 못 받고. 친노는 폐족이라고 선언했던 안희정 충남도시자는 그러나 정치인으로서 홀로서기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내년 지방선거 재선에 성공하면 노통 적자로서 대권가도에서도 유리해진다. 친노와 반노로 시끄러운 정국에서 안희정 지사를 만나 노무현 전 대통령, 그리고 그의 정치적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안희정 충남지사 / 이상훈 기자
6월 2일이면 충남 도지사 3년째다. 3년차 소회를 말한다면.
이미지도 그렇고 전임자에 비해 너무 젊어서 ‘도지사님’이란 말이 잘 어울리지 않는다. 체질에는 맞는가.
“공직자, 지휘자로서 훈련받는 과정이다. 일반 직장생활과는 확실히 다르다. 나를 지지했거나 반대한 이들 모두의 대표자로서 가치와 신념을 행정에 반영시키려 한다. 스스로 고민한 것이 매일 서류를 결재하면서 도지사로의 권리를 행사한다는 의식보다는 210만명의 도민 모두에게 결재받고 올린다는 심정으로 살핀다. 도민들은 추상적이긴 하나 확실한 실체다. 그분들이 그 기안에 사인을 해줄까, 안 해줄까를 먼저 고민한다. 그러면 내 마음 속의 추상적 실체인 도민들과 내 역사인식이 자꾸자꾸 자리잡고 실체화한다.”
최근 광역시·도 통폐합을 주장했다.
“현재의 지자체 구조는 임금님이 나라 통치하던 시대의 유물이다. 1896년 고종 33년에 만들어진 체제다. 임금님의 땅으로 통치 필요성에 따라 나누고 관찰사를 보낸 것이 도지사다. 중요한 것은 어떤 국가 시스템이 가장 효과적으로 작동하는가다. 이젠 임금님의 땅이 아니라 땅 위에 사는 사람들의 관점으로 국가를 봐야 그들이 필요로 하는 생활상의 요구들이 보인다. 학교, 도로, 버스정류장, 철도, 상하수도 등등…. 개인이 해낼 수 없는 생활상의 요구를 공공적으로 관에서 처리하라고 만들어진 것이 지자체 아닌가. 또 인구에 따라 나누기보다 땅 위에 살아가는 시민의 눈으로, 그들의 생활 필요의 기준으로 나눠야 한다는 것이다. 중앙정부에서 처리할 일도 있지만 국가 단위에 넘기기에는 애매한 공공수요들을 자방광역단체가 해야 한다. 정부는 외교·국방 등에 주력하면 된다. 그래야 대통령도 대통령답게 큰 그림을 그리고, 국회의원들 역시 국가 의제를 결정하는 제 역할을 할 수 있다. 지금 국회가 지역문제 해결하는 로비 장소로 변질된 것도 지자체의 구분부터 잘 안 되었기 때문이다.”
공약의 97% 완료 또는 정상 추진했다는 보도를 봤다. 공약은 그야말로 헛된 약속이라는데, 이것이 가능한 비결(?)은 무엇인가.
“무리한 공약은 안 한 덕분이다.(웃음) 3년 전의 제1공약은 지역주의를 철폐하고 국가로부터 분권을 실천하겠다는 것이다. 세종시 원안 지키기, 무상급식, 무상보육 등이 완료되었거나 정상진행 중이다.”
지역민들과는 어떻게 소통하나
“그분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드린다. 어느 자리에서건 그분들이 이야기할 수 있도록 권위적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내 말을 자르고 들어오거나 비난을 해도 기분 나빠하지 않으면 된다. 도지사가 되고 많이 배운 것 중에 하나가 설령 답이 없더라도 들어주자는 것이다. 논쟁에서 결론을 내려 하지 않는다. 사실 모든 일은 전문가와 도민들이 직접 한다. 도지사가 삽을 드나, 모를 심나. 도정 목표를 설명하고 대화와 타협을 하고, 그 과정을 공정하고 투명하게 공개하면 된다. 민주주의 지도자로서 기본 원칙은 민이 주인이라는 것이다. ‘내가 해줄게’의 관점으로는 안 된다. 내 등 어디가 가려운지 남들이 모르는 것처럼 주민들의 요구는 주민들로부터 들어봐야 한다. 열린 마음으로 그 자리에 앉아 싫은 내색 없이 평온한 표정으로 있다. 주위에선 ‘도지사 하랬더니 마음공부하고 있네’라는 말도 한다.”
OECD 가입국이긴 하나 도농간 격차가 매우 심한 나라이다. 최근 주장한 3농 혁신사업으로 그 격차가 해소될까.
또 마을 가꾸기를 잘하는 것도 3농 혁신에 포함된다. 깨끗하고 예쁜 마을에서 아름답게 살자는 것이다. 농가에 고령의 어르신들이나 독거노인들이 대부분이라 쾌적한 노인 공동숙소를 만들어 안전망도 구축하려고 한다. 그런데 70대가 대부분인 이장님들부터 ‘내가 살면 얼마나 산다고 내 집을 고치거나, 새로운 곳에 모여 살아’라며 비협조적이시다. 5년 임대 조건으로 폐가나 폐교를 갤러리로 만드는 등 문화시설 증축도 필요하다. 귀농자들이 꼭 농사만 짓는 게 아니라 고향이나 농촌에 돌아와 숲을 가꾸고 이웃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등 행복감을 실천하며 제2의 인생을 만들 수 있다. 임금피크제가 아니라 인생피크제를 농촌에서 시작하면 되지 않는가.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렇게 되면 휴식과 관광, 레저 등 농촌의 6차산업화도 가능하다.”
이젠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5월 23일이 노무현 전 대통령 4주기였다. 한 인터뷰에서 ‘노무현을 보내자’고 했다. 무슨 의미인가.
“전직 대통령을 여야가 정쟁수단으로 삼는 것은 못난 후손들이 하는 일이다. 노 대통령은 특권과 반칙이 사라져야 한다고 주장하며 그 역할을 다 했으니 이제 역사의 대통령으로 보내드리자는 것이다. 솔직히 한나라당 시절에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너무 심하게 모욕을 드리지 않았나. 대통령 선거 끝나고도 자격 검증을 하자고 하고, 의원 연찬회에서도 조롱하고 희롱했다. 대한민국 국민들이 선택한 대통령인데 그건 결국 국민을 조롱한 것이다. 보내자는 것은 버리자는 것이 아니다. 친노와 비노가 나뉘는 것은 현실의 퇴행이고 후퇴하는 것이다. 정파로 몰아서 기득권을 가지려고 하는 것은 그 정신과 가치를 훼손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왜 민주당에서 친노와 반노로 나뉘고 친노들 사이에서도 싸우고 분란이 잦은가.
“그건 모르겠다. 다만, 반칙과 특권을 앞세우면 다시 노무현 대통령의 정신이 현실의 정치적 파워가 되기에 불편해하는 것 같다. 인연과 연고주의, 팔이 안으로 굽는 것 등을 노 대통령이 너무 혐오했는데, 정작 자신들은 그러니 노무현 대통령의 정신이 사라지길 바라는 것 같다.”
노무현 대통령처럼 애증이 교차되는 지도자도 드문 것 같다. 노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가장 크게 오해받는 노무현 대통령의 이미지는 무엇인가.
“정치적으로 분열시키고 항상 싸움하는 사람이란 이미지다. 원칙을 중요시하고 권력을 내려놓으려는 것이 대중들보다 권력층에 몹시 불편했을 것이다. 그래서 더더욱 그런 이미지를 보수언론이나 기득권층에서 강화한 것 같다. 종부세의 경우, 정말 노 대통령은 선량한 서민들의 주택 소유에 대해 신중하게 판단한 것인데도 엄청난 저항을 받았다. 안보문제도 한·미동맹은 강조하고 자주국방 책임은 지지 않아 무책임하다는 판단에서 따끔하게 지적을 한 것이다. 좋은 대한민국, 강인한 나라를 만들자는 호소조차 오해를 받았다.”
얼마 전 정상명 전 검찰총장을 만났더니 임기 중에 단 한 번도 대통령이나 청와대의 전화나 개입을 받은 적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재벌 구속문제 등으로 여론이 들끓을 때는 차라리 적절한 조언이라도 받고 싶은 심정이었는데 혼자 고독하게 결정해야 해서 고통스러웠다고 하더라. 공과를 떠나 노무현 대통령이 관행적 지위까지 내려놓은 것은 확실한 것 같다.
“참여정부의 기조는 각자의 자기 책임 완수다. 검찰은 물론 각 기구가 법률과 국민 앞에 사실에 입각한 책임을 다하면 된다. 20대 중후반인 나와 이광재 전 강원지사에게도 참모나 스태프가 아니라 업무 담당자로서의 영역을 존중해주셨다. 나 역시 주어진 권한에 책임을 다할 뿐이었다. 당시 제1당인 열린우리당 의원들도 ‘대통령 뜻이 뭔가요’라고 물었다.”
장군, 선생님, 총재로 카리스마를 가진 여러 전직 대통령에 비해 노무현 대통령은 너무 서민적이어서 국민들에게 불편하고 어색했다는 주장도 있다.
“대통령이라고 부르고 마음 속으로는 임금님이라고 생각한 나라에서 처음으로 명실상부한 대통령이 탄생했으니 그런 저항감이나 어색함을 가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대중들은 변화를 거부하는 속성도 있다.”
최근 한 조사에서 가장 훌륭한 대통령으로 노무현 대통령이 꼽혔다. 그런데 친노는 왜 비난을 받을까.
“친노란 주홍글씨이긴 하나 실체가 없다. 친노는 전매특허도 아니다. 우리 모두의 노무현이다. 폐쇄적인 정파로서의 친노는 없고 누구와 경쟁하기 위해 패거리지어 배타하고 골탕 먹이는 그런 쩨쩨한 친노는 없다. 그렇게 의심한다면 그 자체가 노무현 정신의 후예로서 모욕이다. 연고주의와 냉전시대 논리, 중앙집권의 논리로 대한민국을 지배해왔던 낡은 기득권 질서가 노무현 정신의 정치적 성장을 두려워하며 공격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과 반대하는 이들을 친노로 규정하는 것 같다.”
내년 지자체 선거에 다시 도지사에 도전하나.
“도민이나 국민은 ‘디테일(세심함)을 함의하는 시대정신’이 있는 사람을 선택한다. 그걸 알고 성실히, 열심히 일했다. 이런 스타일과 태도가 이 시대가 요구하는 측면에 부합한다면 쓰임이 있을 것이다. 청바지도 처음 빨래할 때 물이 많이 빠지고, 두 번째부터는 덜 빠지지 않나. 두 번째 빨래할 때가 다가오면서 제가 이끌었던 충남도정을 도민이 어떻게 평가할지 궁금하다. 올 연말쯤 종합적으로 도지사 업무 실적과 평가서를 정리해 도민에게 보고하는 자리를 마련할텐데 선택은 도민의 것이다.”
안희정 충남지사와 유인경 기자 / 이상훈 기자
원하건 원치 않건 대선후보로 꼽힌다. 2017년의 국민들은 어떤 대통령을 필요로 할까.
노골적으로 출마 선언을 하진 않았지만 그는 ‘노무현 정신‘으로 무장하고 도시자 재선을 거쳐 청와대로 가는 꿈을 갖고 있는 게 확실했다. 물론 결과는 국민들의 마음, 그리고 하늘이 조금 도와주셔야겠지만….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305251617171&co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