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정원일이 참 좋아요

정원사 조회수 : 924
작성일 : 2013-05-04 09:31:29
봄이 한국보다 한참 늦은 나라에 살아요.
오월이 시작된 지금에야 겨우 정원일을 시작했어요.

겨우내 쌓여있던 묵은 잎들을 긁어내고
화초보다 빠르게 성장하는 잡초들을 뽑고....

몇시간을 흙더미 위에 엎드려 사지로 기다시피 하며
정원일을 하는데 풀 내음, 땅 내음 정말 좋아요.

어젠 이른 아침부터 정원일을 시작했는데
방학하고 집으로 돌아온 딸이 무슨 마음인지
함께 나가겠다고 하더군요.

잡초랑 화초를 구분하지 못하는 딸에게 이것 저것만
뽑으라고 알려주고 일을 시작했지요.

딸이 금방 싫증내고 집안으로 들어가버릴 줄 알았는데
의외로 세 시간 넘게 나랑 함께 흙 위에 엎어져 
풀 뽑으며 놀기에 마음이 더욱 흐뭇했지요.

몇년전 동네 가든 클럽에 나갈 때 자칭 타칭 내노라하는
정원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렇게 몰입된 정원사의 삶을
살아가도록 영향을 준 분들이 꼭 있더군요.
조부모님이나 부모님이나 가까운 친척분 중에
정원을 가꾸던 분들을 도와드리며 나누었던 교감이
훗날 성장해서 스스로의 삶을 꾸려나갈 때
큰 영향을 주었다고 해요.

나에게는 할아버지가 그런 영향을 주셨어요.
할아버지에 대한 추억은 가족마다 희비가 엇갈리는데
이상하게 나는 좋은 추억만 생생하게 간직하고 있어요.

오십년, 길다면 긴 세월을 살아오며 이런 저런 고비들을
많이 넘겼는데 할아버지를 떠올리며 힘을 얻은 적도 많았지요.
(더불어 할머니도...)

정원을 가꾸기 시작한 것도 할아버지의 정원이 늘 내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었던 덕분일거에요.

아쉬운 것은 할아버지의 정원에서 자라던 나무들 중
내가 인상깊게 기억하는 나무들을 내 정원에서는 키울 수가
없다는 거예요. 고향집과 지금 살고 있는 곳의 기후가
다르기때문이지요.

그래도 괜찮아요.
처음엔 그게 너무너무 속상했지만 나 나름으로 애정하는 꽃이나 나무들을 
차츰차츰 만나게 되면서부터는 서운함이 많이 사라졌어요.
 
되돌아보면 가슴 아픈 일들도 많았고
어쩌면 내가 죽을 때까지 해결되지 않을 지도 모를 미결의 문제도
여전히 내 삶 한가운데 떡하니 자리잡고 있지만
과거와 미래를 다 내려놓고
화창한 오월의 봄날 흙 속에 엎어져
꼼지락거리며 일하다 보면
불안한 나자신과 그런 나를 둘러싼 세계의 불완전함이란 다 사라져버리고
고요함이 남아요.

오랫동안 갈망하던 스스로를 치유하고자 하던 욕심마저
사라져버리고 지금 여기 풀매고 있는 나만이 현존하는
그 몰입의 시간이 참으로 좋습니다.




IP : 209.195.xxx.201
3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좋아요.
    '13.5.4 10:01 AM (121.147.xxx.224)

    뭔가 신성한 노동을 한 후에만 느낄 수 있는 청아함이 제게도 느껴지네요.
    저도 그렇게 흙을 만지며 지내는게 꿈인데요, 저는 저희 친정아빠의 영향으로요 ^^
    아직은 애들이 너무 어리고 내내 아파트 생활만 해온지라 주택은 꿈만 꾸고 있는데,
    원글님 글 덕분에 그 꿈을 다시 일깨우는 아침이에요. 감사합니다.

  • 2. ^^
    '13.5.4 11:07 AM (1.235.xxx.88)

    저도 가꿀 수 있는 내 정원이 있으면 좋겠어요.
    오래된 아파트라 화단이 무척 넓은 편인데 거기서 토끼 준다고 풀 뜯거나
    비 온 뒤 아이들이랑 학교 운동장에서 수로만들기 놀이같은거 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겠어요.
    내 정원을 예쁘게 가꾸는 일이면 더 행복하고 즐거울 것 같아요.
    흙 만지다가 보게 되는 작은 벌레나 풀꽃들 보면 너희들도 참 열심히 사는구나 싶어 반갑기도 해요.

  • 3. .....
    '13.5.5 1:26 AM (41.130.xxx.0)

    어릴적 아버지께서 시골 출신인지라 옥상에 화단을 만들어서 파부터 시작해서
    배추,방울 토마토,석류나무,포도 심지어 옥수수까지 심으셨어요.
    어릴때는 여름날 여름방학때 매일 매일 물 주는게 귀찮아서 별로 하고 싶지 않아서 억지로 물 준적도 있는데
    지금 나이가 들어가니 외국에 사는데도 괜히 뭔가를 심어보고 싶고 그러네요...
    그런데 어찌된게 기르는거 마다 죽여놔서요...ㅎㅎㅎ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251458 정당직원 월급이 어느정도에요? 1 그린 2013/05/11 1,487
251457 구두가 똑같은 디자인 이네요 2 브랜드 다른.. 2013/05/11 1,104
251456 전에 기침에 해삼 달여 먹는 댓글 주신 분~~~~~(수정했어요 .. 24 기침 2013/05/11 2,241
251455 변꿈을 자꾸 꾸어요(비위 약하신분 패스해주세요) 3 2013/05/11 1,424
251454 뮤지컬 레미제라블 봤습니다. 그리고 거기 나온 마리우스가... 1 mac250.. 2013/05/11 1,260
251453 (질문)달지않은찹쌀떡을 배달해 주는 떡집이 있을까요? 7 찹쌀떡 2013/05/11 2,530
251452 윤창중이 성추행을 안 했더라도 저런 색희는 짤라야 합니다. 8 잠잠 2013/05/11 1,524
251451 이제 초등1학년인데 아이를 잡는거 같아 괴롭습니다(싱가폴 거주).. 15 괴로운 엄마.. 2013/05/11 3,560
251450 미국경찰 윤창중사건 경범죄로 분류해서 넘겨.. 14 인턴녀얼굴 2013/05/11 4,484
251449 한국엄마와 미국엄마 1 ㅇㅇ 2013/05/11 893
251448 한쪽다리를 못쓰시는데 요양원가면 기저귀 채우시나요?(83세친정엄.. 6 // 2013/05/11 1,985
251447 초등4학년아들이 색약이래요 5 .. 2013/05/11 2,047
251446 돈 벌라고 보냈더니, 내 새끼가 죽어왔다 2 caste 2013/05/11 2,199
251445 금나와라 뚝딱? 이거 웃기네요..ㅋㅋ 7 .. 2013/05/11 3,181
251444 SBS 김성준 ,편상욱 앵커 트윗.jpg 5 저녁숲 2013/05/11 3,613
251443 이 넌센스 퀴즈좀 풀어봐주세요~ 5 만원빵 2013/05/11 2,580
251442 장독해한번 부탁드려요ㅠㅠ 영어문장 2013/05/11 387
251441 뒤늦게 레미제라블 영화보다 갸우뚱? 5 .. 2013/05/11 1,770
251440 유럽 6살 여자아이에게 줄 선물로 뭐가 좋을까요? 7 선물 2013/05/11 1,050
251439 대기업임원부인이 수입차타는거 괜찮을까요? 12 캠리 2013/05/11 4,083
251438 산소찾아가서 잔디 깎아주는날이 4 궁금맘 2013/05/11 792
251437 kb와이즈홈카드 200만원이상 행사 문의 3 @@@ 2013/05/11 879
251436 집수리비용 1 집수리 2013/05/11 1,428
251435 플랫슈즈 6 발볼넓은여자.. 2013/05/11 2,409
251434 제가 살림 젬병이어서 생기는 일일까요ㅠㅠㅠ??? 5 ㅇㅇ 2013/05/11 1,8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