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보면, 저는 우리 친정엄마를 잘 이해해주지 못했나봐요.
딸만 넷을 둔 엄마는, 그중 둘째인 제게 제일 히스테릭하고 노여움을 잘 표현하고, 마치 핑퐁과도 같은 주고받기식의 대화가 잘 연결되질 않아요.
하지만 제 바로밑의 두살터울 여동생한테는 엄마가 먼저 다가가 말을 건네는 모습이 마치도 봄밤, 벚꽃나무그늘아래 서보면 금방이라도 그 꽃망울 하나하나가 폭죽이라도 터뜨릴것처럼 조마조마하게 터질듯말듯 부풀어오르는 모습, 올려다본적 있으시죠? 그런 설레는 감정과 즐거워하는 감정이 옆에 앉은 제게도 전해져요.
마치 동생이 오기전에는 커튼이 열리기전의 무대처럼 저와의 대화가 그냥 잔잔한데, 동생이 갑자기 오면 손바람을 불러 일으키고 동생의 팔을 건드려가면서 중간중간 추임새도 넣으면서 아무렇지도 않은 대화에 잠깐의 파도가 일어요.
그모습을 보면서 저는 일말의 소외감도 느껴요.
왜냐면, 저도 엄마의 뱃속에서 나온 딸이니까요.
생각해보면, 어릴때부터 저는 유독 엄마아빠한테 구박을 많이 당해왔어요.
그리고 외모도...
안타깝게 귀여운 러블리한 모습은 전혀 없었고 알콜중독자인 아빠도 제게 머리에 두부만 들었다고 삿대질을 하면서 누가 집에 오든말든 가족들앞에서도 그렇게 많이 구박을 했었거든요.
그럼 손님들은 목구멍이 찢어지게 웃어대다가 갑니다.
그런 모습을 많이 봐온 가족들은 무기력하게 피곤한 눈을 어둠침침한 전구불아래 뜨는둥 마는둥하면서 관심이 없고요.
그래서 저는 직장생활도 일부러 먼곳에서 기숙사생활을 하면서 살았어요.
고3여름방학에 실습을 나가잖아요. 그때부터가 제 직장생활이 시작되었어요.
똑같은 제복의 사람들이 사무실에 앉아 전화를 받고, 문서를 작성하고, 저도 그런일을 하면서 혹여나 누가 나보고 머리에 두부가 들었다고 하진않을까 하고 먼저 주변사람들을 살펴봤어요.
물론 그런사람들이 없더라구요. 혹여나 나중에 파란 잉크가 묻어나오는 스템프로 날짜를 찍을때 가끔 찌그러져 찍힐때에도 부장님은 다정하게 책망을 하실뿐 허허 하고 웃으며 지나가주셨어요.
그 너그러움에 더 놀랐던것 같아요.
기숙사로 돌아오면, 세명이 쓰는 한평도 채안되는 방에 이층침대가 두개 놓여있고 한쪽벽에는 담쟁이덩굴이 보이는 낡은 나무창틀이 보여요. 그 육중한 창문을 열고 뒤뜰을 보면 아직 채 걷지않은 빨래들이 한가하게 펄럭이고 초승달이 한조각 걸려있는 모습을 보면서 아, 저녁이라는게 이리도 조용할수 있구나.. 하고 혼자 가슴떨었던 스무살이전의 나.
그곳에서 5년을 있었는데 아빠는 그 돈을 다 쓰고 가셨어요.
그리고 나중에는, 암이 전이되어 손도 못쓰고 스스로 끊어지지않는 그 목숨을 애써 끊고 갔어요.
그때 화장터에서 돌아오던 그 여름날, 우리가족들은 눈물한방울 나오지도 않더라구요.
알콜중독으로 살아온 아빠, 그리고 머리에 두부만 들었다고 어릴때부터 삿대질을 하면서 동생하고 가방을 서로 바꾼것으로도 화가 나 파리채를 휘두르면서 쫒아낸 아빠, 운동화밑창이 다 떨어져서 위,아래가 따로 놀아도 사주지도 않아 체육시간마다 헐떡대는 운동화를 신고 달리기를 해야했던 12살,
나의 뿌리깊은 열등감에는 분명 아빠가 있다는 생각이 가끔 들어요.
그런 가족이다보니, 우리는 서로의 아픔이 단지 내 아픔이 아니면 된다라는 생각으로 살아온 가족들이었어요.
엄마는, 아빠가 가고난뒤 임파선암을 얻었고 한쪽 고막도 날아간 상태며, 고혈압,고지혈증, 심장협심증,관절염등등의 질환들을 다 진단받았죠.
그런 엄마를 보면서 딸로써 마음아파하는것말고 더 해줄수 있는 건 없었어요. 다만 일기장에도 써놓았듯이 한때는 술주정꾼인 남편을 만나 아들도 둘이나 얻어보았지만 초기유산도 당해보고 경매로 쫒겨나보기도 했고 식당을 운영했던 경력도 있지만 현재는 한쪽 고막이 날아간상태에서 눈도 노안이 와서 잘 안보이는 상태및 암으로 인한 여러 합병증이 있는 경력을 가졌다고 썼죠.
그런데 엄마의 외모를 가장많이 닮은 사람은 또 저에요.
그게 전 또 정말 싫은거에요.
하지만 싫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가슴이 미어터지게 가련하고 딱하고 사랑하지않을수없는 사람.
그래서 반찬을 바리바리해서 계속 갖다주게되었어요. 그런데도 엄마는 빈손으로 오는 동생이 더 반가워서 눈에 생기가 돌아요.
그런데 동생만 가고나면 동생욕을 합니다.
집에 뭘 흘리는 것을 싫어해서 앉아있을수가 없다는둥, 이러저런한 욕을 합니다.
그런데도 동생이 있으면 그 동생의 얼굴을 사랑스레 쳐다보면서 좋아 어쩔줄을 몰라요.
그리고 옆에 제가 있다는건 모르는것처럼 저는 블라인드에 가려진 듯 한번도 제게는 고개한번 돌리지 않아요.
그런 민망한 상황을 몇번 겪고보니 저는 그냥 엄마의 집을 나오게 되요.
엄마의 심리는 도대체 무엇일까요.
저도 쿨하면 되는데 서운한 이 감정은 뭘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