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중2때
아저씨는 (경북에서 제일 유명한)상고졸업 후 막 은행에 취업하신 때
나이를 계산해보니 나와 7살 차이인가 보다
그때 그런 감정이란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하숙집에서 그 아저씨가 나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았었다
그때 친구의 얘길 들어보면 아저씨는 내 친구들에게 맛있는 짜장면도 사주셨다 하고
대학생이었던 아저씨 친구 전언에 의하면 일기장이나 낙서에 내 이름을 긁적이셨다 하고
내 이름으로 적금을 들고 있더라는 하숙집 주인 아줌마의 순박한 표정도 떠오른다
대구의 중앙통에 있던 그 은행에 퇴근 무렵 찾아가서 맛있는 걸 먹었던 기억도 있고
하숙집에서 단체로 놀러가면 아저씨는 나를 중심으로 열심히 샷터를 눌러 주셔서
지금도 흑백사진으로 그때의 기록이 있다
곧 하숙집을 옮기면서 나는 그 아저씨를 잊고 지냈고
서울로 진학해 명동을 누비던 소위 명문대의 용모단정하던 나는 충분히 그럴만 했었나 보다
결혼에 실패하고 가족과 사회에서의 아픔에 만신창이가 되었던 중년의 어느 날
문득 아저씨가 궁금해서 그 은행을 통해 수소문 해보니
예전의 그 반듯하심으로 지점장으로 계셨고 퇴임하신 후였다
한번 차를 마시며 하숙집 식구들 안부를 궁금해 하던 것이 재회의 전부였다
명절이나 특별한 날 안부 문자를 가끔 주셨고 만날 수 있는 기회는 피하고
서로의 가정에 대해서는 모른 체 궁금해 하지도 않았고 좋은 분으로만 기억하고 있던 중에
그저께 소천하셨다는 급보를 받고 오늘 발인...
참 맑고 따뜻하신 분이셨고 그저 살아 계시는 것만으로도 든든한 마음의 의지가 되었었기에
반백의 나이에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이렇게 몇 자 쓰고 싶다.
눈물도 흐르고 안절부절하는 며칠을 보내고 있다
물리적인 거리만큼의 핑계로 그저 몇 만원 계좌이체한 걸로 이제 내 마음을 추스려 담아야 하나보다
내 마음속엔 언제나 중2 (나름 모범생이었지만) 외롭던 시절의 .... 아저씨
65세 너무 일찍 ... 원망스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