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 남동생의 변호사 시험 발표가 난 후로 제 몸무게가 3킬로가 빠지네요....
제 나이에 비해 많은 2남 2녀....지금 봐선 아주 다복한 가족이고 좋은 점도 많지만
장녀인데다 세상 물정에 빨리 눈 뜬 저는 어린시절 부터 부담감에 많이 힘들었어요.
나중에 저도 결혼하고 먼저 시집간 여동생이랑 명절날 밤에 누워 두런두런 얘기 나누다 보니
여동생도 자라면서 그런 부담감에 많이 시달렸더라구요.
저랑 본래 연년생인데 어른들이 태어날 때부터 몸이 약하다고 1년 늦게
출생신고를 했었는데 여동생은 아버지가 바깥에서 자기를 데리고 들어왔고
친엄마가 따로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할 정도 였다고 하네요.
좀 웃긴 얘기지만 저도 그런 생각이 들었거든요...내 엄마는 어디 계실까?
그런데 우리 둘다 엄마를 쏙 빼닮은 구석이 확실히 있어서 ㅋㅋ 부정할수도 없는
그래서 더 슬프다는......
친정엄마가 우리를 마구 구박하면서 키우시진 않으셨어요.
제가 공부를 잘 하는 편이라 늘 자랑스러워 하셨고
여동생은 공부보다 미술에 소질이 있었지만 그쪽으로 밀어줄 형편이 못되서 안타까워 하셨구요.
그런데 엄마랑 친정 아부지랑 사이가 좋지는 않으셨어요....
아버지가 좀 다혈절 이시긴 한데 전 아빠랑 다정했던 기억이 많이 나거든요.
백화점 가서 아이스크림도 사먹고 나이키 운동화...약수터 가면서 손잡고 노래 부르고....
그런데 엄마는 늘 "너거 아버지 알면 난리난다, 큰일난다, 아빠 알면 엄마 죽는 꼴 볼래...."
지금 생각해 보면 아빠는 어쩌면 우리 얘기를 잘 들어줬을 것 같은데 엄마가 중간에서 차단했던것도 같구요...
엄마는 별 것도 아닌 일에 매도 많이 들고 제가 억울해서 덤비기라도 하면 제 입에 손가락을 넣고
양쪽으로 쭉 찢어서 죽이겠다는 폭력도 행사하셨지요...워낙 반공교육 열심히 받은 세대라 ㅋ
공산당이 싫어요 하며 죽어간 이승복 어린이가 떠오르네요....
엄마는 분노조절이 잘 안되셨던 것 같아요...애 넷을 키운다는 당위성도 함께 했을테구요.
하지만....어린 저는 항상 동생들의 모범이 되야하고 하고 싶은 건 참아야 하고 돈이 뭔지도 알게 됐고
엄마가 그냥 미웠어요 ㅠㅠ
암튼 엄마는 남편에게 마음 둘 곳이 없었는지 큰 남동생한테만 아주 각별하셨어요.
막내도 남동생인데 막내니까 귀여워 하셨지....사실 엄마보다 아빠가 우리 막내를 많이 아끼셨고
공부는 그닥 시원찮아 지방대를 나왔지만 사랑을 많이 받고 커서 그런가 성격이 너무 좋아요.
대기업에 당당히 입사해서 졸업할때는 플랜카드도 붙고...또 더 좋은 회사로 몸값 올려 이직도 성공하고
서울로 올라왔어요. 야무지고 이쁜 올케 만나서 얼마전에는 아들도 하나 낳고 깨를 볶고 살고 있지요.
그런 막내동생도 막상 누나들의 그늘은 잘 이해를 못해서 한번 엄마한테 속상했던 얘기를 꺼냈는데
자기는 자라면서 아버지 사업이 기울면서 형편이 안좋아져 어학연수 가고 싶었는데 못가서 조금
속 상했던거 빼곤 괜찮았다고....
이제 큰동생과 제 얘기를 좀 해야겠네요.
저처럼 공부를 잘했고 늘 반장하고....비슷했어요. 그런데도 제가 느낄때 엄마가 저희를 바라보는 모습이
드라마 아들과 딸에 나오는 저는 후남이 남동생은 귀남이 같은 존재랄까?
딸은 적당히 공부해서 시집 좋은데 보내버리면 그만....서울에 있는 대학가고 싶고 유학 하다못해 어학연수,
자격증 시험 같은거에 욕심내는걸 이해 못하시고 싫어하고 엄마가 나한테 시샘낸다 싶을 정도로...
물론 그때 부터 집안형편이 점점 기우는걸 느꼈기에 장학금 주는 학교를 가게 되고 졸업하고 취직해서
내돈으로 공부해야지 결심했어요.
사실 입학하고 한학기 다녀보니 정말 서울로 더 가고 싶더라구요...학고 싶은 공부도 따로 있고...
재수하고 싶다고 했다가 건축학과 가고 싶다고 했다가 아빠가 아시면 집안이 풍비박산 난다고...
그래서 매달 월급에서 80만원씩 모아 1년 후에 천만원 목독을 쥐면 어학연수 다녀오려고 했는데
일하다 보니 재미있고 인정받으니 좋고 그러다 서울 본사로 올라오니 제가 많이 부족하더라구요.
IMF 이후로 후배 직원들도 스펙들이 점점 좋아지고 인서울 대학...어학연수...
과감히 퇴사 결정하고 엄마한테 천만원 달라고 했더니 이미 남동생 재수학원 경비랑 입학금으로 쓰셨더라구요...
나한테 말이라도 하고 쓰시지...적잖이 당황스럽고 방황도 많이 했어요.
재수의 고배를 마시고 서울에 있는 대학으로 진학한 남동생은 학교앞에서 잠시 하숙을 하다가
제가 모은 돈으로 얻은 방 2칸 짜리 다세대 빌라 1.5층에 함께 살게 됐지요.
남동생도 성실하고 저보다 더 깨끗이 집 정리도 하고 같이 지내니 든든하고
회식하고 늦게 집에 들어오면 마중도 나오고 잔소리도 하고....엄마가 좋아할 만한 아들이지요...
그 당시 남동생과 추억도 많아서 자전거 경품 타러 가자며 걷기대회 같은데도 주말에 같이 나가고
시장으로 장도 보러 나가고 남동생 덕에 학교 앞에서 맥주도 마시며 대학생 같은 기분도 내보고....
지금도 남동생에 대해 원망이나 그런 마음보다 잘 됐으면하는 마음이 더 커요.
서로 얘기도 많이 했는데 엄마에 대해 느끼는 감정이 너무 다르더라구요.
남동생의 마음에는 마치 군대간 아들의 심정이랄까? 입 밖으로 부르기만 해도 눈물나는 이름 엄마
제 마음에는 다른 엄마가 있지 않을까 하는 못된 마음....
그런 부분에서 서로 이해를 못했어요....사실 친정엄마가 바깥으로 활동하거나 외부에 비치는 모습은
상당히 합리적이고 사교적이고 성격 좋으신 분이시긴 해요.
그런데 왜 집에서는 그렇게 딸들을 들볶고 큰딸 컴플레스 주입하시고....
지금도 장가 간 막내 아들한테는 바리바리 택배로 맛난 과일이며 하다 못해 집에서 키운 대파까지
신문지에 돌돌 싸서 보내주시는데 시집 간 딸들에게는 넌 시댁에서 많이 받잖냐며 참기름 한병도 아끼시네요.
맞아요...제 형편에서 보면 시집 잘 갔어요...사주에는 부모복은 없다는데 결혼하고 잘 풀린다더니....
시아버지 "사"자 직업이시고 남편도 부러움 받는 직업 가지고 있고 한강 잘 보이는 넓은 새아파트 살고 있고
그렇다고 마음이 움직이지도 않는데 친정에 다른집 딸들이 하는 것 처럼 매달 용돈 드리고 그러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저는 기본만 도리만 하고 있어요.
암튼....남동생은 서성한급 대학의 법대를 다녔어요. 당연히 부모들의 기대는 사법고시 패스로
또한 남동생도 서울에 올라와 누나랑 살다보니 없는 집 자식으로서 조금 더 나은 형편으로 살려면
공부만 답이라고 자연스럽게 생각 했지요.
하지만 여자로서 드물게 기술영업을 하고 있었던 저는 동생이 잘할 수 있는 게 다른 쪽으로 많이 보이는데
굳이 고시를 고집하는게 좀 안타깝더라구요.
예정된 수순으로 4학년 1학기 하고 신림동 고시원으로 들어가면서 저랑 남동생의 3년간 생활이 정리되고
저는 제대로 된 싱글라이프도 몇년 즐기고 남편도 그때 만나 결혼도 하게 됐어요.
사실 동생과 헤어지면서 내 인생의 행복을 찾은 것 같았어요...엄마가 자연히 무관심 해지니까 그랬던것 같기도 하구요.
엄마가 간혹 서울에 동생보러 올라 오시면 나랑은 그냥 제방에서 잠만 자는 공간을 빌리는 사람 같다고 할까...
동생을 바라보는 절절한 눈빛이나 좋아하는 사람 만나면 흘리는 실없는 웃음....이런게 느껴지더라구요.
저한테는 아직 결혼도 안하고 뭐 하냐며 여동생은 결혼해서 벌써 아기도 있었으니까요.
남동생은 4년 정도 고시에 전념했는데 1차도 합격을 못하더라구요...군대 문제도 있고
다행히 영어 성적이 괜찮아서 카투사에 지원해 합격하고 저도 그즈음에 결혼하고 마침 자대배치 받은 부대가
제 신혼집에서 차로 10분거리 였어요.
동생 부대로도 주말에 자주 놀러가고 동생도 종종 외출했는데 참 편안해 보이더라구요.
어학쪽에 소질이 있는데다 교과서 같고 규칙적인 생활을 즐기는 아이다 보니 그 자리가 딱 내동생 자리 같고....
미사령관 표창도 받을 정도로 잘했는데...군대 제대하고 나서 취업 준비하는데 로스쿨 제도가 생기더라구요.
변호사, 출세....이 욕망의 카드를 버리지 못한 동생과 부모님은 완전 기회가 온 것으로 너무 좋아하셨고
부모님이 계신 지역의 국립대 1곳, 사립대 1곳에 지원 한다더라구요.
제 짧은 생각에도 로스쿨 제도의 취지중 하나가 지방의 변호사 수급도 고려해 지방대에 인원을 배정했을텐데
나중에 서울로의 진입장벽 같은 것도 생기지 않을까 싶고 한군데는 지방국립대 한군데는 서성한급이나
불안하면 조금 낮춰서 아주대, 인하대 같은 서울권에서 내보라고 조언을 했었는데 많이 불안해 하더니
결국은 지방 두곳에 쉽게 붙었어요.
국립대로 가게 됐고 장학금 받고 내내 스터디 그룹 리더 하면서 성실히 생활하더라구요.
그닥 술을 좋아하던 애는 아니었지만 기쁜 일이 있어도 흐트러질까봐 술 한방을 안 마시던 동생이었거든요.
막내동생도 대기업 대구지점에 근무할 때라 둘이 함께 살았는데 직장인인 자기 보다 형이 더 부지런하고 성실하다고
형을 많이 존경할 정도 였거든요.
그런데 큰시험이란게 운칠기삼이라고 했던가요....
당연히 합격을 예상했고 거의 90% 이상 합격한다던 작년 1차 시험에서 과락으로 불합격 했어요....
우리는 모두 동생을 격려했고 다 너무 자만하지 말라는 하늘의 뜻인가 보다 하고 당연히 한해 더 해야지
그리고 올해 2차 시험....합격자 명단에 동생 이름이 없는 걸 보니 온 몸에서 피 한방울 남기지 않고 다 빠져나간
기분에 정말 쓰러질 뻔 했네요...그리고 그렇게 미워했던 엄마지만
동생은 연락조차 되질 않고 어른들은 아셔야 하겠기에 결과를 말씀드리니 "헉....." 하시는 외마디 소리에
전화기 저편에서 쓰러지셨을 엄마를 생각하니 한없이 눈물만 나고 다 꿈 같고 거짓말 같고 그러네요....
동생이 불성실하고 문란하고 술이라도 하는 애라면 기대도 안하지만....
어찌보면 엄마 아빠는 물론이고 젊은 시절 내 꿈과 청춘과 맞닿은 내 동생 잘 되길 바랬는데....
너무 자기 고집이 강하고 원칙론자여서 출제 의도와 너무나 다른 답을 쓴 걸까요?
아니면 동생은 고시가 맞지 않는 스타일인데 애써 외면하고 미련하게 매달린 건지...
그것도 아니면 정말 동생의 다른 모습이 있는 걸까요...
34살....친정 아버지는 더 바라는 것 없다고 지가 하고 싶은거 하라고 해서 빨리 자리 잡고 결혼해서 손주도 보고....
그래도 친정 엄마는 아직도 미련이 남고 욕심이 나는지 저보고 잘 달래 다시 내년에 한번 더 시험 보라고
다른 자식들 공부시키고 시집 장가 갈때는 없다던 돈이....아들 그거 하나 시킬 돈은 나한테 있다며
걱정하지 말고 옆에서 누나인 니가 옆에서 잘 다독여서 한해 더 시키자 하고
제가 싫다고 동생도 자기 생각이 있을 것이고 월요일에 탈락자들 성적 발표 된다니 그거 보고
마음을 정할 거라고 믿어보자고 하니 기어코 오늘 서울에 올라오신다고 하는 엄마....
우리 엄마는 왜 제가 이렇게 속상해 하는 지 안타까운지 이해 못하시겠죠...영원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