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이 같은 분위기를 무색케 하는 영역이 있다. 바로 기업이다. 공기업이든 민간기업이든, 초일류 글로벌 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한국 기업에서 여성들은 여전히 ‘마이너 리그’로 분류된다.
특히 임원급 이상으로 여성 비율을 확대하면 그 숫자는 확연히 줄어든다. 지난해 말 기준 직원이 1만 명이 넘는 한국수력원자력은 여성 임원이 한 명도 없다. 2급 이상 여성간부도 4명에 불과하다. 부산항만공사는 임원은커녕 1급과 2급 여성간부조차 없다. 대한주택보증도 부산항만공사와 같다. 국회 입법조사처가 밝힌 28개 공기업의 여성 임원 비율은 0.6%에 불과하다. 1%가 안 되니 공기업에 여성 임원이 한 명도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민간기업도 다르지 않다. 최근 기업들이 여성임원 비율이 높다는 보도자료를 잇달아 내놓고 있지만 이는 다분히 박근혜 대통령을 의식해 만든 자료다. 그동안 여성을 썩 중용하지 않다가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되니 ‘앗 뜨거워라’며 여성들을 고위 임원직에 앉히고 있다는 혐의를 벗기 힘들다.
왜 여성 대통령까지 탄생한 국가에서 유달리 기업만은 여성을 홀대하는 것일까.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대부분의 견해로는 기업들이 여성은 조직에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해 키우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본다. 10여 년 전 서울시 출입할 때였다. 당시 서울시 부설 기관의 장으로 임명된 한 중견급 장년 여성 공무원은 점심을 먹는 자리에서 하소연하듯 이렇게 말했다.
“저도 여성이지만 직원을 뽑을 때는 여성을 채용하기가 부담스럽습니다. 기관의 특성상 철야근무나 야근을 하는 일이 자주 생기는데 기혼 여직원들은 철야는커녕 미혼 여직원들도 야근조차 부담스러워합니다. 이러니 인사고과에서 남성들에게 밀릴 수밖에 없죠.”
그 기관장은 미혼여성보다 기혼여성들이 그런 경향이 더 강하다고 했다. 기혼여성은 회사 일보다 집안일을 먼저 챙기고, 아이가 중학교나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면 업무에 대한 집중력도 현저히 떨어진다는 것이다. 미혼은 미혼대로 기혼여성이 일찍가니 그녀들도 덩달아 도망가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