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친한 친구에게서 넌 자존심이 세다는 얘길 들었어요.
그런 얘기 처음 듣는 말이고 솔직히 전 자존심이 없다고 생각해 와서 잘 모르겠어요.
어릴 때부터 살아온 가정환경이 안 좋았고, 제 기본정서가 안 좋다는(우울한 쪽) 거 알고 있어서
남들 앞에선 안 드러낼려고 잘 웃고 다니구요,
십대엔 그 환경을 벗어나고 싶어도 안되니 공상속에서 살았어요 난 이쁜 공주에 언젠가는 왕자가 구원해 줄 거라는.
십대후반부터 제대로 된 가치관을 가지고 잘 살고 싶다(경제적 의미가 아닌)는 욕구에 자기계발서 엄청 읽었고
그 독서력 덕분인지 지금도 어떤 분야의 사람들과 얘기해도 다들 얘기가 잘 통한다고 같이 대화하길 원해요.
전 대화가 잘 통하는 건 모르겠고 그냥 대화 속에서 모르는 건 묻고 제 생각 얘기하고 여기저기 일상생활 속에서 들은 거 살 붙여 얘기하는 정도인데
저보고 모르는 게 대체 뭐가 있냐고 하네요.
이런 건 가깝거나 가깝지 않은 사람들과도 마찬가지이구요,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 해도 진짜 제가 힘든 건 잘 말하지 않아요.
나는 행복하게 잘 살고 있고, 좋은 점만 얘기해요. 살짝 과장하기도 하구요.
제가 남편이랑 사이가 안 좋은데 친정가족 포함 아무 문제 없이 잘 사는 줄 알아요.
아주 예전에 오빠일로 너무너무 힘들었을 때 지치다 못해 초딩때 부터 한 동네서 친하게 지내온 친구랑 술 마시다
술집 문밖에 나가 그 새벽에 1시간을 대성통곡을 하고 돌아와선 친구 앞에선 아주 조금만 힘든 척을 했어요.
술이 엄청 취한 상태인데도 내가 불행하고 힘든 거 보여주기 싫었어요.
제가 남편이랑 사이 안 좋은 건 저보고 자존심 너무 세다고 말한 이 친구만 알아요.
그것도 10년 이상 온갖 얘기 다하고 지내 왔는데
그 동안 친구는 남편과 이혼하고 힘든 일 겪을 동안
제가 남편이랑 사이 좋다고 언제나 일관되게 얘기했거든요.
제 직업도 좋고 남편 돈 잘 벌고 아이도 건강하고, 모든 것을 다 가진 여자인 줄 알았는데
제가 최근에 하나씩 둘씩 가려진 꺼풀을 벗겼죠.
저도 그 말 하는 거 힘들었는데 제가 너무 가식적으로 사는 것 같아서 나를 드러내는 용기를 가지자고
여러 번 되뇌인 끝에 (겉보기에)그냥 술술 얘기했어요.
제 마음 속에선 이런 얘기 해도 될까? 아무리 친하지만 나를 흉보지 않을까? 끊임없이 갈등하면서도
제가 가식적이란 걸 알기에 이것을 깨보자고 저를 다독거려가며 용기를 냈죠.
남들은 제가 당당하고 자신만만한 줄 알아요. (그렇게 보인대요)
그러나 실제의 저는 언제나 남의 평가에 민감하고 꼼수 부리는 것도 좋아하면서 남들 앞에선 모범생처럼 보이길 원해요.
예를 들면 아무도 안 보면 무단횡단도 잘하면서 남들 있으면 저~어기 횡단보도로 다녀야지? 하는 것처럼요.
기본적으로 전 우울해요. 가만히 있으면 얼굴에 슬픔이 보인다 해요.
그런 모습 안 보일려고 다른 사람 있으면 일부러 환하게 웃어요. 아무도 안 보이면 표정이 돌아와요.
그런데 남들한테 해꼬지는 못해요. 이기적이지 못하구요.
폐지 줍는 노인이나 추운데 동동 떠는 애들 보면 마음이 아파요. 길에 짐승 죽은 것도 못 봐요.
가끔 제 여동생이 그 집 애들, 우리 애들 있으면 편애하는 게 막 보이는데
전 그렇게는 못해요. 제가 양심이 찔려서 먹는 것도 똑같이 나누고 기회도 똑같이 줘요.
제 동생은 먹는 것도 그 집애들이 더 먹길 원하면 우리 애는 아주 적게 주고 자기 애 더 챙기지만
전 애들 숫자대로 공평하게 나누고 저의 애가 더 먹고 싶다 해도 똑같이 나눠 먹고 나중에 다른 거 또 먹자고 해요.
제가 애들 보는 앞에서 공평해야 우리 애도 사람관계 속에서 좀 참고 양보하고 기다리고 하는 걸 배울 것 같아서요.
연애 때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막 퍼주는 스타일이었어요.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에요.
아이들이나 제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사람에겐 헌신적이예요. 그래서 남자들한테 많이 차이기도 했겠죠...
제게 조금이라도 잘해주는 사람있으면 의존도가 높아요. 아마 애정결핍도 있는 것 같아요.
냉담했던 아버지에게 제대로 사랑받지 못했고 오빠한테선 맞고 자랐어요.
이런 제가 자존심이 강한 거 맞나요?
전 제 자존심이 바닥이라 생각하는데... 친구에게서 그런 말 들으니 의외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