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칠십가까이 되는 외삼촌이 부천의 한적한 마을에 작은 집을 하나 사서 이사를 하셨대요.
그동안은, 서울 마포대교부근의 작은 빌라에 사셨었어요.
방두개짜리에 작은 거실있는 빌라에서 얼마나 사셨느냐고 물어봤더니, 친정엄마가 그런걸 눈치없이 물어본다고 제손등을 마구 꼬집어 짓이겨놓았어요.
제가 호되게 꼬집힌 손등을 상밑에 감추고 애써서 아무렇지도 않은척 밝게 웃으니까,엄마는 흰자위가 미어터지게 한껏 저를 흘겨보더라구요
그런상황을 전혀 모르는 외삼촌은 뜬구름이 한가로이 흘러가는 봄날의 하늘을 바라보는 듯한 느긋한 목소리로
"그 빌라에서 44년을 전세로 살았지~"
합니다.
원래 우리 엄마와 외삼촌은 전쟁고아였대요.
그래서 일찍 양친이 돌아가시고 외삼촌은 어렵게 구두를 만드는 공장에서 기술을 이어받아 나중에는 착한 외숙모만나서 아들딸 낳고 양털을 등에 지고 언덕을 쉬임없이 올라가는 소년처럼 그렇게 인생길을 자분자분 밟아오셨습니다.
그중에 제일 잘한일은 큰아들을 한양대공대까지 보내셔서 좋은 건축사로 만들어놓은일이 너무 자랑스러워요.
옆에서 그분들이 살아온 지난 궤적들을 너무 잘아니까, 그분들이 44년동안 한집에서 전세로 좁은집에서 살았다고해도 절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는걸 알아요.
그리고 44년동안 전세를 살아왔다는게 한편 놀라운 일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나중엔 버스도 잘 안들어오는 시골이라지만 집은 마련해잖아요.
지금 또 이사를 앞두고 전세집을 알아보는 중인데, 겨울은 춥고 돈은 모자라고 그와중에 아이는 올여름에 태어나고, 오늘 큰애하고 피아노학원비때문에 좀 서로 다퉜어요.
맘이 많이 아프네요.
피아노학원을 안다니면 안되겠냐고 하는데 아이는 다녀야한대요.
맘이 아파요,
그래서 학원비마련해놓고보니 풀죽은 아이한테 너무 못할짓 한것 같아 맘이 아픈 저녁이네요.
그래도, 살다보면 우리도 어느덧 12년동안의 전세생활을 뒤로하고,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12년동안 옮겨다닌집만 3곳)
다음엔 진짜 정말 내 집이 생기겠지 다짐합니다.
그래요, 44년동안 전세살이한 외삼촌도 있잖아요.
그 세월동안 그분들의 얼굴엔 검버섯이 피고 하얀 은발이 내려앉았지만, 열심히 살아온 청춘이 이젠 아름다운 조각보로 수를 놓은 세월일테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