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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이제 모두 버리고 어딘가로 훌훌 떠나고 싶다.

세상만사 조회수 : 968
작성일 : 2013-01-28 22:14:04
이 글은 한기호씨라는 블로그를 운영하시는 분 글입니다. 적은 수입에 옳다고 믿는 일을 하다 보니 가난하게 되고 이에 하는 일마저 회의를 갖게 되는 순간의 감상을 적은 글인데 읽는 내내 고통스럽네요.

내가 대학교 1학년 때였다. 고등학교 은사들이 주신 장학금 7만원과 작은아버님이 주신 7만원으로 등록금과 입학금을 내고, 교재를 사고, 한 달 하숙비를 내고 나니 달랑 6000원 남았다. 나는 무슨 정신으로 대학에 다닐 생각을 했을까? 아무에게도 말도 못하고 월세 6000원의 자취방으로 옮겼다. 하지만 먹을 것이 없었다. 그래서 보름을 굶었다. 67Kg이던 체중은 55Kg으로 줄어들었다. 밤에 잠을 잘 때는 가위가 눌렸다. 그러나 아무에게도 말을 하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문학회에 문학회 선배에게 그 사실을 알게 됐다. 선배는 바로 나를 매식집에 데려갔다. 내가 돈을 내지 못하면 선배가 대신 낼 테니 밥부터 먹이라고 부탁했다. 밥을 먹는데 밥에서 쌀 냄새가 났다. 하지만 살기 위해서는 먹어야 했다. 벌써 36년 전의 일이다. 그 선배는 잘 계실까? 오늘 대학시절 신문사의 한 선배를 전화를 주셨다. 신문사 동창 모임에 나오면 꼭 보고 싶었는데 아쉽다고 하셨다. 

대학시절 나는 늘 우울했다. 먹고 살아야 했고 등록금을 벌어야 했다. 내성적인 성격이라 사람들과 그리 친하게 지내지도 못했다. 나중에는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동생 한 명을 덤으로 데리고 있어야 했다. 그래도 부모님에게 힘들다는 이야기를 한 번도 해보지 못했다. 그러다 1980년에 감옥에 갔다. 

감옥에 출감하고 선배의 부탁으로 안면도에 갔다. 그곳에서 가난한 아이들을 만났다. 나는 아이들을 가르치러 갔지만 어쩌면 나는 아이들에게 배웠다. 그곳에서의 1년이 아니었으면 오늘의 내가 있을까? 그곳에서 그나마 욕심을 버리는 훈련을 했다. 가난했지만 맑았던 아이들. 나는 아이들에게 검정고시를 하나라도 붙으라고 강요했다. 그게 인생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문교과서를 사자성어 100개로 만들어놓고는 강제로 외우게 했다. 나중에 신문이라도 읽을 수 있는 사람이 되라고. 

나는 폭군에 불과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나는 가르칠 자격이 없었다. 집에서는 난리였다. 할아버님이 안면도에 오셨다. 고1인 넷째가 등록금을 못내 학교를 때려치우고 평택여고 앞의 안동장에서 자장면 배달을 한다고 했다. 그래도 떠날 수 없었다. 아이들 때문에. 하루는 아이들이 아홉 명 세 명밖에 오지 않았다. 나는 핑계가 필요했다. 너희들이 원하지 않으니 나는 떠나야 한다고 말하고는 수업도 제치고 혼자 면 소재지에 가서 술을 퍼마셨다.  

새벽에 깨니 아홉 명 모두가 사택에 와 있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학원에 나오지 못한 이야기를 했다. 학원에 나올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나는 속으로 가슴이 아팠지만 아무 말도 못했다. 24살의 나는 16살의 아이들보다 생각이 짧았다. 그때 나는 어떻게 버텼을까? 아마 술이 아니었을까? 김치 쪼가리나 놓고 마시거나 김 부스러기를 놓고 마시거나 운이 좋으면 바닷가에서 얻은 생선을 안주 삼아 마셨다. 

작년에 안면도 총동창회에서 만나보니 아이들이 나보다 잘 살았다. 나는 뭔가? 나는 내가 살고 싶었던 삶을 살았던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사는가? 남들이 하지 않는 대수롭지 않은 출판평론으로는 약간의 이름은 얻었다. 하지만 대단한 것이 없다. 늘 도망치고 싶었다. 도서정가제? 혼자 주장할 때는 외로웠다. 이제는 많은 출판인들이 도서정가제를 말한다. 언론도 이해해주기 시작했고, 시민단체도 동조해주기 시작했다.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렇다고 정가제가 되면 뭐하나, 하는 회의가 든다. 

요즘 내 삶은 불안했다. 작년 12월에 2000만원 빌렸고, 1월에도 1,650만원을 빌렸다. 믿어주는 이가 있으니 빌려주니 고맙다. 2월만 지나면 신학기라 고비를 넘기니 천만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내가 예상했던 부족액 5,000만원까지 빌리지 않았으니 천만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제작비나 원고료 등 무엇이든 미루는 성격이 아니니 한 푼도 없다. 제작비 잔고를 깐 것도 없다. ‘학교도서관저널’이 뭘까? 아이들이 책을 읽지 않아 그들 스스로 미래를 열어가지 못하는 것이 나하고는 무슨 상관일까?    

지금 일을 모두 버리고 떠난다고 내 인생이 불행해질까? 나 스스로 잡지를 버리면 ‘고생 끝 행복 시작’이라고 말해왔다. 나는 도서정가제보다 ‘학교도서관저널’이 더 시급하다. 창간한 지 3년 동안 이제 충분한 기반을 쌓았다. 하지만 아직 여러 고비를 넘겨야 한다. 모든 것 잊고 내 살림 걱정이나 해야 한다. 하지만 도서정가제에 발목이 잡혔다. 화가 나니 말이 거칠어졌다. 나를 비난하는 소리가 여러 차례 날아온다. 

솔직히 이제 떠나고 싶다. 내가 공인이라고? 정부에서 지원을 받아본 적도 없다. 출판계 일각의 도움을 받기는 했지만 대다수는 나를 비웃을 것이다. 특히 돈 좀 벌은 사람들은 뒤에서 엄청나게 욕할 것이다. 저렇게 병신처럼 사는 것이 아니라고? 내가 도서정가제를 주장하는 것이 사리사욕 때문일까? 나에게 떨어지는 것이 무엇일까? 나는 왜 새벽에 일어나 남을 공격하는 글을써대다가 욕이나 먹을까? 

주말에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발제문과 원고를 써야 하건만 머리는 혼란스럽기만 하다. 오후에 ‘내 딸 서영이' 재방송을 보다가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났다. 사촌에게 보리쌀 몇 말만 빌리려다 거절당하고 가솔들 데리고 고향을 드셨던 할아버지도 생각났다. 삼촌에게 돈 좀 부쳐달라는 편지를 써놓고 우표값이 없어 마루에 앉았다가 까만 고무신을 잃어버리고 울며 돌아온 아들을 패던 아버지. 돌아가시기 몇 해 전에 한밤에 전화하셔서 나에게 미안하다면 우시던 아버지. 

나는 딸들에게는 잘했을까? 유학 간 큰딸이 계절마다 1년간 1,000유로만 부쳐달라는 청을 냉정하게 거절한 아버지인지라 작은딸은 아예 부탁도 하지 않은 채 빈손으로 유학을 떠났다. 나는 무엇을 추구함인가? 아버지 잘못 만난 불쌍한 내 딸들 때문에 눈물이 난다. 도서정가제고 뭐고 모두 버리고 싶다. 나 아니라고 세상이 돌아가지 않는 것이 아니다. 다들 내 주머니에서 돈 몇 푼 더 나가는 것만 걱정하는 세상에 양서, 책 문화, 삶의 질, 격차 없는 사회란 걸 주장하면 뭐하나? 내 삶이 이렇게 진창인데. 그냥 화가 난다. 정말 나도 이제 모두 버리고 어딘가로 훌훌 떠나고 싶다.


[출처] 나도 이제 모두 버리고 어딘가로 훌훌 떠나고 싶다 |작성자 한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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