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레미제라블> 보셨나요?
개봉 첫 주 영화를 보고, 내친 김에 <레미제라블> 시대 배경을 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
<레미제라블> 의 시대 배경은 정확히 말하면 "프랑스 혁명" 때가 아니라 "혁명 이후" 입니다.
혁명 이후 혼란한 프랑스 역사를 살피다 보니, 정말 우리나라 현대사와 많이 비교되더군요.
어느 순간 ... 이건 평행 이론? 하면서 소름이 끼치더군요.
전문가가 아니니 너무 깊게 들어갈 순 없고, 최소한 인터넷과 책 뒤적이며 요약해봤습니다.
전공자가 보시기에 잘못 된 부분이 있으면 댓글로 지적해서 고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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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르 위고는 프랑스 대혁명(1789년)이 일어난 지, 13년 후인 1802년에 출생합니다.
맨 처음 시인으로 출발해서, 희곡가, 소설가로서 낭만주의의 대표 작가로 이력을 쌓죠.
특히 그의 소설, <파리의 노트르담>(우리에겐 <노트르담의 곱추> 로 더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로 민중 작가가 됩니다.
이 후, <레미제라블>이 발표되고 위고가 사망하기 까지 프랑스는 말 그대로 격랑의 시대였습니다.
위고의 사상과 레미제라블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 프랑스 혁명 이후의 시대상 을 꼭 알 필요가 있습니다.
1789년 프랑스 혁명 이후 , 루이 16세가 처형 을 당하고, 혁명을 주도한 (공화파)들은 왕정을 페지 합니다.
그리고 국민공회를 설립한 뒤 <프랑스 제 1 공화국> 을 출범시킵니다.
그러나 (공화파)사이에서 "의회 민주주의"를 주장한 < 우익 지롱드파 >와
"사회 민주주의"를 주장한 < 좌익 자코벵파 > 가 갈등을 일으키죠.
(마치, 일본 식민통치 종식후, 독립을 맞이한 우리나라가 좌우 이념 갈등을 겪었던 것처럼요.)
하지 만 곧 <자코벵당>이 <지롱드파>를 대규모 숙청을 하고,
<자코벵당> 의 우두머리인 "로베스 피에르" 가 독재권을 행사합니다.
이 때, 혜성같이 등장한 유명한 인물이 있죠. 그 이름 하여 " 나폴레옹".
이 분이 사실 정통 프랑스 본토 출신이 아닙니다.
프랑스의 지배를 받던 이탈리아령 코르시카 섬 태생이죠.
나폴레옹의 아버지는 코르시카 독립 운동가였지만, 독립 운동이 실패하자 프랑스 총독에게 투항을 합니다.
그 덕에 나폴레옹은 아버지와 함께 프랑스 본토로 이주를 해서 프랑스 귀족 학교에 입학합니다.
코르시카식 원래 이름은 "나폴레오네 부오나파르테".
하지만 프랑스식으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로 바꿉니다.
(아.. 여기서 왜 갑자기 '다카키 마사오'란 이름이 떠오르는지....^^;; )
그 이후 나폴레옹은 군인으로서 "로베스 피에르" 집권하에서 출세의 계단을 하나씩 오릅니다.
하지만 "로베스 피에르"의 공포정치가 막을 내리면서, 그 역시 "로베스 피에르파" 로 몰려 힘든 시간을 보냅니다.
그러나 반란이 일어나 국민공회가 위기에 처했을 때, 폭도를 진압하면서 다시 기사회생을 합니다.
(일본 식민 통치시는 일본 중위, 독립 후 좌익 남로당 일원 , 6.25때 육군 소령으로 복귀하신 그 분과 너무 닮았습니다.)
나폴레옹이 주변국과의 전쟁에서 승전고를 올리고, 프랑스 영토 확장에 공을 세우자
정부는 나폴레옹의 대중적인 인기를 경계합니다.
그래서 그를 먼 이집트 원정에 내보내죠.
하지만 나폴레옹은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처럼, 이집트 원정 도중 프랑스로 돌아와
쿠데타 를 일으킵니다.
( 쿠 데타 라는 말이 바로 이 때 생겨난 말입니다. coup d'état ☞coup: 일격을 가하다 + état: 국가나 정부 )
나폴레옹은 1792년 쿠데타로 500인회를 해산시키고,
제 1 통령이 되고, 나중엔 법을 고쳐 종신 통령이 됩니다.
(우리나라 유신헌법과 똑같죠? -_-;;)
그러더니 급기야 1804년 황제로 즉위합니다 .
즉위식에서 자기 스스로 머리에 왕관을 얹었다고 합니다.
(이로써 혁명 이후, 혼란한 정국에 불안을 느낀 민중들이 안정을 바라며, 자기들 손으로 폐지한 왕좌를
나폴레옹에게 다시 돌려 줍니다. ㅠ.ㅠ )
평소, 나폴레옹의 용맹함을 흠모하던 베토벤은 그에게 헌정하기 위해 "보나파르트"라는 곡을 작곡 중이었 는데
이 소식을 듣고. 악보를 집어 던지며
"그 자도 결국 속물이었군. 자신의 야심을 위해 민중을 짓밟고, 폭군이 되겠지" 했답니다.
그리고 곡의 제목을 그냥 "영웅" 으로 바꾸죠.
특정 영웅이 아니라 그냥 일반적인 영웅을 나타내는 곡으로요.
어쨌든. 나폴레옹이 황제가 된 프랑스는 이렇게 다시 왕정으로 돌아갑니다.
영국과의 워털루 전쟁에서 패한 나폴레옹이 페위된 후,
프랑스 혁명때 처형되었던 ' 루이 16세'의 동생들이 다시 프랑스 왕궁으로 돌아와
"루이 18세" , "샤를 10세" 순으로 왕위에 오릅니다.
비록 예전같은 절대군주제로의 회귀는 아니지만,
귀족 중심의 정책들은 민중들의 삶을 다시 왕과 귀족의 노예로 전락시킵니다.
그래서 혁명으로 의식이 깨어 있던 민중들이 다시 한번 일어서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1830년 "7월 혁명 " 입니다.
이 혁명으로 "샤를 10세"가 페위되고, 그의 친척뻘인 "루이 필리프" 가 왕위에 오릅니다.
7월 혁명으로 입헌군주제의 왕이 된 "루이 필리프"는 시민계급을 의식해서
자신을 "평민왕", "인민의 벗"이라 내세웁니다.
하지만 차즘 본색을 드러내고, 보수파들을 기용 "가진 자들만을 위한 정책" 을 펴나가죠.
(우리나라의 "강.부.자/ 고.소.영" 정책"이랑 비슷 -_-;;)
그 당시 프랑스의 유권자는 성인 남성 중 3 퍼센트로, 부르조아 중 은행가, 상공인, 법률가등
극히 극소수였습니다. 왕이 뽑은 보수파 수상은 "부유해져라, 그러면 투표권을 얻을 것이다" 라고 공공연하게
이야기했을 정도니까요.
그래서 평등사회와 투표권을 요구하는 공화당파, 사회주의자들이 대중의 주목을 받게 됩니다.
이들의 주도로 일어난 것이 바로 바로
<레미제라블>의 배경이 된 1832년 "6월 항쟁(June Rebellion) " !!!! 입니다.
영화나 소설을 보시면 알겠지만, 이 6월 항쟁은 왕당파의 진압으로 실패를 합니다.
영화 속에서 그려진 6월 항쟁은 이렇습니다.
혁명군과 함께 바리케이트를 쌓았던 민중들은 왕당파 군인들과 대치 상황에서
하나 둘씩 집을 돌아가버립니다.
그리고 남아 있는 소수의 혁명군들이 왕의 군사에 쫓겨 그들의 집 대문을 두드렸을 때,
그들은 군인이 무서워 차마 문을 열어 주지 못합니다.
(개인적으로 전 이 장면이 정말 가슴이 아프더라구요. ㅠ ㅠ )
그 이후 , 1848년 "2월 혁명" 이 일어나면서 "루이 필리프"가 폐위되고, 공화정이 설립됩니다.
그런데 이 공화정이 처음 한 일이 뭐였냐면, 혁명을 일으켜 공화정을 세우게 해준 "파리의 노동자"들을
진압하는 것이었답니다. OTL
예전 기득권층이 왕족과 귀족이었다면, 여기에 "부르조아 계층" 이 끼어 들면서 노동자들과 민중들은
또 다시 하층민으로 핍박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죠.
그런데 이 때 또 !! 두둥~~~!
혜성같이 떠오른 인물이 있으니... 그 사람은 바로 바로.. 나폴레옹의 조카인 "루이 나폴레옹 "입니다.
이 양반이 망명 중 프랑스로 돌아와 제 2 공화정 의원으로 당선이 됩니다.
사람들이 루이 나폴레옹이 프랑스에 돌아왔을 때, "나폴레옹 만세"를 부르며 환영을 했다는데..
그 중에는 빅토르 위고 도 있었다는 군요. -_-;;
어쨌든, 또 다시 나폴레옹 신드롬을 일이키며, 루이 나폴레옹은 대통령 자리까지 오릅니다.
(아... 이것도.. 왠지 기시감이 드네요. 얼마 전 우리나라 상황과 상당히 비슷? )
사람들이 그를 대통령으로 뽑은 이유는 이렇답니다.
농민들은 "자코벵파 같은 좌익은 무서우니 나폴레옹이 낫다" 였고,,
노동자들은 ""왕당파 같은 보수 우익은 무서우니, 나폴레옹이 낫다' 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루이 나폴레옹의 목표는 대통령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숙부였던 나폴레옹을 숭배하였기에,
군을 장악하고 공화주의 사상을 가진 교사들을 탄압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보통선거를 중지시키고, 선거 집회를 자신의 통제하려 했죠.
이 당시 공화정 의원인 빅토르 위고가 반대를 했지만, 역부족.
루이 나폴레옹은 헌법상의 대통령 재선 금지 조항을 개정하려 들지만 실패하자
1851년 의회를 해산하고, " 쿠.테. 타" 를 일으킵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또 "나폴레옹 만세" 라는 환영을 받으며 " 나폴레옹 3 세" 로 황제가 됩니다.
마르크스는 이를 두고 "역사는 반복된다, 한번은 비극으로, 또 한번은 희극으로" 라고 말합니다.
어쨌든, 빅토르 위고는 이 쿠데타를 반대하다 국외추방을 당합니다.
이 후, 빅토르 위고는 무려 19년 동안, 벨기에, 영국의 저지섬, 간지섬을 떠돌며 망명 생활을 합니다.
(장발장의 옥살이 기간도 19년인데....)
그 망명 기간 중, 1862년 발표한 것이 바로 <레미제라블> 입니다.
“ 1861년 6월 30일 아침 8시 30분, 창문 너머로 비쳐 드는 아침 햇살을 받으며 나는 [레 미제라블]을 끝냈다네.
(...) 이제는 죽어도 좋아.”
젊은 시절부터 사회 고발 소설을 구상했던 위고는 1845년부터 본격적인 집필에 들어가
16년 만에 망명지인 건지 섬에서 탈고했다.
“단테가 시에서 지옥을 그려냈다면, 나는 현실을 가지고 지옥을 만들어내려 했다.”
집필 당시에는 제목이 [레 미제르](Les Misères, 비참함)였지만,
나중에는 [레 미제라블](Les Misérables, 불쌍한 사람들)로 바뀌었다.
주인공 이름 역시 원래는 ‘장 트레장’(Jean Trejean)이었지만,
나중에는 ‘장 발장’(Jean Valjean)으로 바뀌었다.
빅토르 위고는 1859년 사면을 받지만, 프랑스로 돌아가지 않다가
나폴레옹 3세 제정이 몰락한 이후에서야 다시 고국으로 돌아옵니다.
파리 시민의 환영 속에 귀향한 후에도 국회의원으로 당선되는 등
정치적인 행보과 문학 활동을 계속 하다가 1885년 페렴으로 사망을 합니다.
그의 장례식은 문학가로서 최초로 국장으로 치뤄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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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아동용 문고판 "장발장" 에선 밀리에르 주교의 자비에 회개하고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난 장발장 개인의 이야기였습니다.
하지만 이제서야 왜 원제목이 "장발장" 이 아니라 "레미제라블(불쌍한 사람들)"이었는지를 다시 생각해 봅니다.
<레미제라블>을 좀 더 이해하기 위해 프랑스 역사를 훑는 동안,
정말 우리나라의 현대사와 많이 겹쳐지는 걸 느꼈습니다.
우리나라 역시 대통령과 집권정당이 바뀌면서
국민의 인권과 민주주의의 이념이 참으로 힘들게 발전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요즘 많이 인용되는 말이 있죠?
프랑스 정치 학자 "알렉시 드 토크빌" 이라는 사람이 한 말입니다.
"모든 민주주의에서 국민은 그들의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갖는다. "
민주주의의 장점이자 약점일 수도 있는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앞으로 5년은 우리 국민 51%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시간이 될 듯 합니다. ㅜ.ㅜ
사실,... 세상은 많이 살기 좋아진 듯 하지만...
우리나라에도 역시 "레미제라블" ,
즉, 소외받는, 불쌍한 사람들이 여전히 존재합니다.
송전탑에서 농성중인 비정규직, 해고 노동자들
불합리한 기초생활수급자 규정에 의해 혜택 받지 못한 분들.
의료보험 사각지대에 놓인 희귀병 환자들
내가 누릴 수 있는 경제적인 혜택이나 내가 속한 지역, 계층의 이익에 민감한 만큼,
힘든 사람에 대한 배려가 절실한 시대입니다.
부디... 이번 만큼은 마르크스 말대로 역사가 되풀이되는 일은 없었으면 합니다.
"비극"이었던 역사를 겪고도 아무런 깨달음 없이, 같은 일을 되풀이 하는 것만큼 비참한 "희극"은 없을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