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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가엾은 겨울의 길고양이들 얘기입니다.

그리운너 조회수 : 1,784
작성일 : 2013-01-01 02:27:44
가끔 올렸습니다.
집고양이 출신(흰색터앙). 길고양이 출신(노랑 코숏) 둘이
저희 집 근처를 배회하며 밥 달라 울던 것이 인연이 되어 입양까지 보냈다구요.
노랑이는 성묘임에도 작고 소심하여 이 동네 터주대감 격인 '등치'에게 매일 맞고 다녔습니다.
등치가 얼마나 힘이 좋은지 제가 봤던 다른 수컷고양이들도 다 쫓겨나갔습니다.
노랑이는 그나마 흰둥이를 만나면서 둘이 되니 등치가 함부로 못 덤볐었구요.

오늘은 이 등치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등치는 까만색 코리안숏헤어 종입니다.
얼굴 여기저기엔 흉터가 있고, 부었는지 아주 퉁퉁합니다.
노려보는 폼은 아주 매세워.
등치도 사람을 경계하지만 사람도 선뜻 다가가지 못할 포스가 있습니다.
사람이 다가가면 퉁퉁 부은 몸을 뒤뚱뒤뚱대며 도망가면서도 사람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니
이쁘게 생긴 흰둥이가 여기저기에서 많이 얻어먹은 것에 비해
이 녀석은 늘 쓰레기만 뒤졌습니다.
나이도 아주 많아보입니다. 5살 이상은 되어 보이고 모든지 아주 노련해보입니다.

흰둥이와 노랑이를 임보하면서 등치만 보이면 노랑이 신경이 너무 날카로워지고
저도 처음으로 고양이를 키워본 것이라 능숙하지 않고 힘들어
등치 밥을 못 주었습니다. 그 기간이 한달남짓?
그 사이 등치가 저희 집 주변을 오지 못하도록 각별히 주의해서
등치 또한 잘 못 보았구요. (길고양이 특성상 먹이가 있어도 잘 눈에 안 띄더라구요)

그런데 며칠 전 등치를 보았습니다.
저희 옆 집에서 자기 영역표시(?)를 하고 있었는데,
세상에 .. 한달 남짓한 사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가뜩이나 부은 몸이 안쓰러웠는데. 털이 무슨 빗자루처럼 생기가 하나 없더라구요.
눈은 눈꼽이 잔뜩 껴 있고 뭐라할까... 며칠 간 못 먹어 아픈 아이 같았습니다.
그래도 저는 좀 봤다고 피하지 않고 빤히 쳐다보다가
바닥에 한바퀴 배를 들어내고 딩굴딩굴하다가 가더라구요.
그 모습이 너무 이쁘기도 하고 그간 챙겨주지 못한 것도 미안하고 ..

그러고보니 겨울이라 그런지 동네에 쓰레기가 없더군요.
대학가라 분리수거 잘 안하는 학생들이 많은데
사실 그걸로 인해 동네 길고양이들이 그 쓰레기를 많이 먹었습니다.
그런데 대학도 방학이고 그나마 그것도 없었으니 그간 얼마나 배가 고팠을까요.
안쓰러워 마트에서 통조림 하나를 샀습니다.
마당이 접시를 놓고 통조림을 잔뜩 꺼내놨는데 그날 밤이 되도록 먹지를 않았더라구요.
"어? 왜 안 먹었지? 안 상하니까 아침까지 둬야지" 하고 그대로 뒀는데
그날 아침에도 그대로드라구요.
이상하다 하며 접시를 자세히 보니. 고기가 꽝꽝 얼어 먹을 수가 없었던 거죠 ..
미안한 맘에 사료를 가득 담아두니 그날 밤 흔적도 없이 싹싹 긁어 먹었습니다.

그렇게 일주일쯤 지났을까?
오늘 낮에 우연히 등치를 마주쳤습니다.
녀석은 저희 마당에서 제가 놓은 사료를 먹다 화들짝 놀라면서도
차마 쉽게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지 도망갈까 말까 고민하는 표정이 역력하더군요.

전 저대로 너무 반가워..
언릉 집에 들어가 통조림을 들고나와 고기를 얹어주고
불편할까 싶어 집안에 들어와 몰래 창밖으로 내다봤더니
그 잠깐 사이 그 고기를 다 먹었더라구요... 얼마나 배고팠으면..
그래도 다행인 것이.. 그 사이 털윤기가 다시 조금 살아났습니다.
고마우면서도 슬펐습니다. 이 겨울 무사히 난 네가 고맙고 내버려둔 네게 슬프고...

우리 등치는 저는 애증의 관계입니다.
사실 노랑이와 흰둥이를 입양보내는 날 ..
노랑이가 엄청나게 반항하고 흥분한 나머지 장정 셋을 뿌리치고 도망가버렸습니다.
다행히 저희 집 근처인데 도망가고나서 도통 녀석을 보지 못했습니다.
아니, 그저께 밤에 보긴 했는데 절보고 슬금슬금 차 밑으로 들어가 숨더군요.
이 녀석에게는 사람이 이동장에 넣으려는 그 순간이 얼마나 공포였겠습니까.
다 이해합니다.
또다시 길로 나서고 저희 집 마당에서 제가 놓은 사료를 먹지만,
이대로 가다간 덩치한테 밀려 다른 영역밖으로 쫓겨날테고 ..
등치는 미우면서 이쁜,, 그렇지만 버릴 수없는
그런 존재입니다.

노랑이는 이제 저희 집 앞에서 문열어달라 울지 않더라구요.

이 겨울,
일기예보를 볼 때마다, 바람이 칼처럼 에일 때마다
노랑이와 등치 생각에 속상하기만 합니다.
물도 제때 못 마시고, 먹을 것도 없는 .. 불쌍한 녀석들.
이녀석들을 어찌해야할지 ...
IP : 211.246.xxx.252
5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hㅡㅡ
    '13.1.1 2:32 AM (223.62.xxx.102)

    정말 가슴 아파요.
    이렇게 땅이 언 날에는 다들 어떻게 지내는지ㅠ

  • 2. 틈새꽃동산
    '13.1.1 2:34 AM (49.1.xxx.179)

    그럼 그때 현관문 잠시 열린 틈에 노랑이가 나가서 돌아오긴 했나봐요?

    입양 보내려고 할때 도망했다니..

    난 노랑이 어찌됐나 궁금했는데..

  • 3. 그리운너
    '13.1.1 2:44 AM (211.246.xxx.252)

    그때 가출했다 삼일째 되는 날, 문열어달라고 울더라구요.
    그래서 다시 들어왔는데 입양가는 날..
    정말 심하게 반항하더라구요.
    반항할 거라 예상했는데, 그 예상 이상을 뛰어 넘어 잡을 수 없을 정도로;
    어찌 어찌 겨우 잡아 차에 태웠는데 운전 중에 이 녀석이 탈출해서
    차 안에서 사람이 조금만 움직여도 핡키고 물고 하는데다
    엔진 안으로 들어가려하고(운전석 밑에 구멍을 통해)
    흥분한 나머지 지가 스스로 자해(?)라고 해야 하나?
    무섭게 차창이며 창문을 머리로 들이박드라구요 ㅠㅠ
    (투명해서 나가는 길인 곳인 줄 알았는지)
    어쩔 수 없이 다시 동네로 돌아와서 방생했습니다.
    길고양이인데 제가 안이하게 생각했던 것이 실수였습니다.

    흰둥이는 입양 가서 정말 잘 지내고 있어요 ㅠㅠ
    그래서 더 속상해요. 그 분 취미가 고양이 간식 만들기이고.
    고양이를 좋아해서 일부러 애견카페 알바도 하셨었대요.
    그득하게 먹고 딩구르면서 자는 흰둥이 보는데
    노랑이 생각나서 울컥했어요. ㅠㅠ
    제 잘못이 큽니다...

  • 4. dd
    '13.1.1 2:48 AM (114.29.xxx.211)

    저도 베란다 밖의 쌓인 눈을 볼때마다 이 추운 겨울에 짐승들은 어디서 뭘먹고 몸을 데워서 겨울을 날지 마음이 아파요 ㅠ 아직 성묘도 안된 청소년 냥이가 혼자 눈을 밟고 종종거리며 돌아다니는걸 보면 집에 데려다가 사료라도 좀 주고싶어요

  • 5. 봄을 기다리며
    '13.1.1 3:00 AM (1.252.xxx.141)

    강쥐를 키우지만 길냥이에 대해서 전혀 관심이 없었어요.
    그런데 얼마전에 슈퍼갔다오는데 슈퍼앞에서 작은 길냥이가 자꾸 야옹야옹거리며 우는데
    너무 춥고 배가 고픈가싶어 고양이캔을 하나사서 뜯어주니 허겁지겁 먹더라구요ㅠㅠ
    그러구 가는길 갈려하는데 자꾸 따라오며 야옹거리는데 외면하면서 왔네요 ㅠㅠ
    근데 그냥이가 이틀뒤에 제가 마트갔다오는데 우리동 수풀속에 있다가 저를 보더니 쪼르르와서는 또 야옹야옹..
    또 재빠르게 슈퍼가서 캔하나 사서 줬더니 냥냥거리면서 넘 맛있게 먹는거예요.그 모습이 어찌나 애처러운지
    집에와서도 그 냥이 생각에 잠이오질않더군요.
    담에 보면 주려고 코스트코가서 36개짜리 캔도 사놨네요-.- 근데 그뒤로는 만날수가 없으니...
    그일이후로 캔을 2개씩 주머니에 꼭 넣어다니며 만나는아파트 냥이에게 몰래몰래 주지요.
    이제껏 그런 생각들지도 않았는데 요즘처럼 날이 추우니 밖의 길냥이들 생각에 빨리 봄이 왔음 좋겠네요.
    조금전에도 닭가슴살 삶아서 외진 곳에 살짝 놓아두고왔는데 춥고 배고픈 냥이들 한끼라도 맛나게 먹어줬음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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