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술을 즐겨 하지만, 어느 정도 취하는 선을 정해 놓고 마시기에(여기서 더 마시면 취하겠다 라는 생각) 만취 하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나름 술에 대한 확고한 철칙이 있는 편이라고 자부하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어제는 정말이지 오랜만에 대취했고, 경험을 통해 느꼈듯이(원래 기분 좋게 술을 마시면 아무리 많이 마셔도 속은 편하지만 같은 양이라도 반대의 경우는 아침에 두통 때문에 힘듭니다)
간략하게 본인 소개를 하자면 20대 중반 때 고향을 떠나 경기도, 지금은 서울 강남에서 살고 있는 30대 후반 나이의 전라도 남자입니다.
제가 이곳을 알게 된건 얼마 되지 않았지만 혼자 살다보니 레시피에 관심(먹는건 생명부지의 필수이기에)을 갖을수 밖에 없어서 요리를 좀 배우고 싶었던 이유가 가장 큽니다. 뭐 반찬은 거의 사다 먹을 정도로 요리는 꽝이지만..
어제 선거가 끝나고 참 많이 울었네요. 6살때 어머니가 돌아가셨을때도 이렇게 울지 않았던 것 같은데 벌써 돌아가신 어머니 나이보다 세상을 더 오래 산 나이가 됐지만 정말이지 펑펑 울었습니다. 오늘 하루만 해도 여러번 울컥 울컥 했네요.ㅠ
문재인 후보가 패배해서? 아닙니다. 패배 확정 후 제일 먼저 지금 하늘에 계신 고 김근태 의장님이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살아생전, 그리고 지금도 개인적으로 가장 존경하는 정치인이기도 하지만 "민주주의자" 라는 김근태 의장님이 추구하는 보편적이고 이성적인 민주주의가 얼마나 쟁취하기가 힘든지를 다시한번 뼈져리게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김근태 전 의장님께 정말로 송구스러운 마음 뿐이네요. 인재근 의원님 역시 힘내시기 바랍니다.
선거 후 각계각층에서 새누리당의 승리 원인과 민주통합당의 패배 원인을 분석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개인적으로 모든 걸 차치하고 단 하나의 이유를 언급하자면 "갖춰진 프레임은 해머로도 부수기가 어렵다"입니다.
이 글을 쓰는 이 순간 SBS에서 토론 프로그램을 하는데 보수쪽 패널의 김형준씨는 "보수와 진보의 대결"이니 앞으로는 "선과 악의 대결로 가면 안된다"든지 "친노에 대한 평가" 라고 열변을 토하고 있는데 저에겐 1%도 설득이 안된다는 헛소리일 뿐입니다.
정치는 저런 부류들이 떠드는 정형화된 프레임이 있을수가 없습니다. 사람들의 인식 차이는 그 인식이 언제부터 형성돼 왔냐가 가장 중요합니다. 그 사람이 성장하면서 어느 당에 투표를 하는지가 정해져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인식은 쉽게 변하지 않습니다. 흔히 밥상머리 교육이라고도 하지요. 학교교육 못지 않게 인간이 살아가야 할 가장 기본적인 인격은 어쩌면 가정교육에서 결정 난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 시기가 바로 말을 하고 옳고 그름을 판단할줄 알고 엄마 말을 듣지 않으면 혼난다는 "인식"이 머리속에 들어오는 유년기 시절입니다.
정치 역시 마찬가지죠. 어릴때부터 가족과 지인, 더 나아가서 주변에서 언급하는 말 한마디에 평생 그것이 진실인줄 알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입니다. 어쩌면 개인의식의 자아 형성은 주변 환경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해도 과언이 아닐겁니다.
제 유년기 시절은 김대중이란 정치인만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유년기 나의 자아형성은 주변 환경으로 인한 결과물이기 때문입니다. 마치 모태신앙(개인이 종교를 선택할수가 없는)과 같은 김대중이란 야당 지도자에 대한 시선은 그렇게 고정될수 밖에 없었습니다. 후회하냐고요? 천만에요. 부모가 특정종교인 이란 이유로 그 자식은 선택권 없이 자연스럽게 특정종교를 선택할수 밖에 없듯이 저에게 김대중이란 야당정치인을 선택을 하게 해준 제 고향에 늘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머리가 굵어지면 내 스스로 선택해야 하는데(정치 이념과 지지성향 등) 그럴 필요 없이 김대중이란 위대한 정치인을 아주 어릴때부터 존경하게 만들어줬다는게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입니까? 물론 반대부급에서는 이런 나를 이해하지 못하겠지만요.
그런데요. 전라도를 떠나 타지에서 정착하며 살고 있는 몇몇 친구들은 자신의 고향을 숨기는 경우를 간혹 봤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전라도 사투리를 빨리 바꿔 버린다는 사실입니다. 아주 오래전(김영삼 대통령 시절) 일로 기억합니다만 서울에서 동창회를 한적이 있는데 불과 몇년 사이에 사투리를 버리고 서울말을 유창하게 구사하는 중학교 동창을 본적이 있습니다. 충분히 이해가 됐지만 뭔가 예전에 알던 친구가 아니라는 이질감(이렇게 해부러. 그런당께 했던 놈이 이랬니?. 그렇죠 하는게 영~ 이상했습니다)이 들더군요.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아닌 에피소드이지만 저는 도저히 서울말을 못쓰겠어요. 마음 같아서는 바꾸고 싶지만(사투리를 고친다.. 라는 표현을 싫어합니다. 사투리는 틀린 언어가 아닌데 고치다니요? 고친다는 건 잘못된 걸 바로 잡는다는 의미죠) 지금도 사투리 씁니다. 웬지 사투리를 버리면 어릴때 나의 자아와 신념(?)이 무너질것 같은 나름의 애향심의 발로가 크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지역정서는 어느 지방 사람이나 다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지역감정도 아니고 고향을 사랑하는 애향심이라고 봅니다. 강원도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 제주도 모두 마찬가지로..
제가 왜 사투리를 언급했냐면, 이번 대선 결과를 놓고 일부에서 "아니 전라도 90% 투표가 말이 돼? 북한과 다를게 없는 새끼들" 이라고 말하는 이들 때문입니다. 전라도 분들 중 혹은 전라도 출신이지만 외지에서 사는 분들 중 이런 말을 들으면(온라인이 아닌 오프라인에서) 왜 90%가 나오는지 아세요?로 시작해서 말하는 사람이 거의 없을겁니다. 온라인에서야 왜 그러는지 역사적 이해와 사건등은 나열하기 쉽지만 오프라인에서는 그러기가 쉽지 않거든요. 그랬다간 자칫 말다툼까지 번지는 경우가 생기기도 해요. 이러한 현상은 스스로 자신은 전라도 사람이란 걸 숨기는, 마치 그게 들통나면 스스로 창피해지는 정서적 프레임이 무의식 중에 내포돼 있기 때문이죠. 저 역시 그랬던 적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이제 당당하게 말합니다. 그리고 제 고향 전라도가 자랑스럽습니다. 90%가 자랑스럽다는 게 아니라 상식을 가진 제 고향 분들이 훌륭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대선은 세대간의 차이와 더불어 지역으로 갈라진 투표결과 때문에 승패가 결정됐지만 엄밀히 말하면 보수vs진보 싸움이 아닌 상식과 비상식과의 싸움이었습니다. "진보만 선민의식이 있냐? 그래서 난 진보라는 인간들을 혐오하지.. 선민의식 쩌는 놈들"이라고 반박할지 모르지만 "박근혜가 불쌍해서 찍어줘야 겠다"라는 단골 미장원 아줌마의 말을 듣는 순간 이번 대선은 상식과 비상식의 싸움이란 걸 강하게 느꼈거든요. 보니까 제가 자주 가는 식당(혼자 사니 차려먹는 것도 한두번이지 단골로 가는 식당이 있네요) 주인 아줌마도 똑같은 이유로, 오늘 지하철 안에서 노약자 석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던 할머니들의 대화에서도 어김없이 "박근혜가 얼마나 불쌍하냐? 이겨서 얼마나 좋은지 몰라" 이런 말을 듣고 왜 문재인 후보가 졌는지 이해가 되더군요. 문재인을 지지하는 사람중에 불쌍해서 찍는다는 사람을 본적 있습니까? 누구나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이나 후보에게 투표를 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런데 "왜 지지 하느냐"에 대한 원인이 "불쌍해서"라는 이유는 특정 후보를 찍고 안찍고를 떠나 상식이 없는 겁니다.
차라리 박근혜씨가 대북정책을 잘할것 같아서. 라던가 서민들을 위해 정치를 할것이다.. 라고만 했더라도 100번 양보해 충분히 이해가 됐었을지 모르겠지만 그 이유가 "불쌍해서"라니요. 대통령이란 자리가 고작 이러한 이유때문에 올라갈수 있는 위치라면 우리나라에서 정말로 불쌍한 사람들은 뭐가 되나요? 흡사 초등학생이 나 부모 없이 불쌍하게 할머니 손에서 살고 있으니까 반장 시켜줘와 뭐가 다른지. 제가 어제 정말로 서럽게 울었던 것도 김근태 의장님이 생각나서이기도 했지만 이러한 이유로 박후보에게 표를 행사했던 분들 때문이었습니다. 이거 비상식 아닌가요? 아니라면 그 이유를 82님께서 알려 주셨으면 좋겠네요. 비상식때문에 이렇게 괴로워 하는게 힘드네요.
20년간 끊었던 담배를 다시 입에 문 저의 아버지, 5.18 때 막내 삼촌이 행방불명 돼 아직도 자식이 살아 있다고 믿으며 할머니께서는 밤에 대문을 열어놓고 주무신다는 내 고향친구 00, 그래도 부산, 울산에서 40%가 나왔다는데 위안을 삼자던 선배의 술자리 멘트, 그리고 위로의 카톡을 보내준 지인들이 있어 고마움을 느낍니다.
그래도 멘탈붕괴가 회복되려면 한참의 시간이 더 필요할지도 모르겠네요. 오늘도 편하게 잠자리에 들수 있을지...
독거노인을 향해 가고 있는 눈팅족의 넋두리였습니다. 두서없는 글 읽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독재자의 최대 결점은 유머가 결여 돼 있다는 사실이다. 독재자는 항상 근엄하고 건방지며 노여운 표정을 짓고 있다. 자기의 위대함에 대해 자만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조화의 감각을 잃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