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깨지지 않은 박근혜에 대한 환상
2012/12/17
김종엽/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이런 환상 가운데 어떤 것들은 이미 야권 혹은 지식인들의 비판으로 깨져버렸다. 대표적인 것이 박정희 전 대통령의 후광이다. 그 후광은 '유신 공주'라는 말이나 정수장학회 논란 등을 겪으며 격하되었다. 열렬한 지지자 그룹에서야 우이독경이었겠지만 그렇지 않은 집단으로의 확장은 차단되었다. 또한 박정희 전 대통령의 후광의 중심에 있는 성장주의의 경우, 이미 이명박 대통령이 그 유산을 '털어먹은'데다 그것이 이제는 쓸모없는 것임도 증명해버렸다.
박근혜의 당선이 정권교체라는 환상
그래서 박근혜는 경제민주화를 들고 나왔다. "내 아버지의 꿈은 복지국가였다"고 하며, 김종인 위원장 영입을 통해 야권이 마련한 밥상에 숟갈을 얹고, '박근혜도 경제민주화를 할 것'이라는 환상을 유포했다. 이 환상이 먹혔기 때문에 지난 총선에서 박근혜는 상당한 지지를 끌어냈다. 하지만 김종인 위원장과 불화를 겪는다든가, '줄푸세'와 경제민주화 사이에 아무 모순이 없다는 최근 발언을 통해 박근혜 스스로 이 환상을 무너뜨렸다.
접어넣기
하지만 여전히 작동하는 두가지 환상이 더 있다. 하나는 '박근혜의 당선도 정권교체'라는 것이다. 박근혜는 이명박정권과 교묘한 차별화를 시도했다. 당명을 바꾸고 로고와 유니폼을 바꾸며 이명박정권과 아예 무관한 척하는 것에 더해, 박근혜 당선도 정권교체이며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면 민주당보다 더 세게 이명박 대통령을 징치할 것이라는 구전홍보를 강화해왔다.
이 환상은 여전히 작동하고 있긴 하지만 많이 약화되었다. 이명박정부의 정책에 협조한 박근혜와 친박의원들의 의정활동이나 김재철 MBC 사장 퇴진을 막기 위해 MBC이사회에 김무성 선대본부장이 행사한 압력 등을 통해 그 허구성이 드러났다. 또한 '이명박근혜' '이명박정부의 안주인'라는 비판 프레임이 설득력을 얻어갔기 때문이다.
그러자 '정권교체를 넘어 시대교체로'라는 구호를 들고 나왔다. 이 구호는 중의적이다. '문재인이 정권교체라면 나(박근혜)는 시대교체'라는 주장이기도 하고 '나는 이명박정권을 교체할 뿐 아니라 그것을 시대교체로까지 이끈다'는 주장이기도 하다. 하지만 손수조, 이준석도 아니고 이회창, 이인제, 정몽준과 동행하는 시대교체의 설득력은 취약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효과를 발휘하기에는 너무 늦게 조직된 환상이다.
이보다 더 나빠질 수도 있다
다른 하나는 여타 환상과 달리 분명하게 테마화되지 않은 채 일종의 서브텍스트처럼 작동하는 환상이다. 그것은 우리가 이명박정부에서 어떤 바닥을 보았다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그러니까 어떤 대통령도 이명박보다 나쁠 수 없으며 어떤 정부도 이명박정부보다 못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인식은 박근혜든 문재인이든 모두 이명박 대통령보다는 나을 것이라는 결론을 은밀히 함축하고 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이 작동하는 한에서 이명박정부에 대한 실망 혹은 분노가 박근혜에 대한 반대로 연결되는 고리가 끊어지며, "지난 5년 행복했습니까"라는 질문이 이명박에 대한 불만 안에 가두어진다.
이명박 대통령보다 더 나쁠 수는 없다는 인식은 이명박정부 비판자 속에서도 폭넓게 퍼져 있다. 예컨대 성한용 기자는 지난달 말 《한겨레》에서 "박근혜 후보 개인의 자질은 이명박 대통령에 비하면 괜찮은 편이다. 박근혜 후보는 그 나름대로 애국심이 있는 사람이다"라고 했다. 과연 그런가?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진실은 이달 초 광화문 유세에서의 조국 서울대 교수의 발언 중 "박근혜가 당선되면 이명박이 그리울 것"이라는 말에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조국 교수의 통찰력 있는 발언은 사회적으로 회자되며 박근혜에 대한 환상을 깨는 데까지 나아가지 못했다. 거기엔 "그리울 것이다"라는 말에 깃든 풍자적 태도가 그 말의 진지함을 약화시킨 것도 작용한 듯하다.
그래서 나는 조국 교수의 발언에 분명한 근거를 덧붙이고 싶다. 우선 5년 전 보수는 박근혜 후보가 아니라 이명박 후보를 선택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지금은 이명박 대통령보다 못한 대통령감이 없어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기억을 더듬고 예전의 신문기사를 재검색해보면 이명박 대통령이 박근혜보다 후보로서 더 뛰어난 면모가 있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는 더 친화력이 있고 말을 잘했으며 야권에서 빌려온 것이 아닌 자신의 업적과 정책과 슬로건으로 승부했다.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박근혜는 확장성과 능력에서 이명박만도 못한 인물이라는 것이다. 바로 어제의 TV 양자토론에서도 그 점은 분명히 드러났다.
둘째, 이명박정부가 겪은 행로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명박정부는 처음에 시장 보수주의를 중심으로 조직되었다. 그런데 통치의 위기가 닥치자 냉전형 수구세력의 품에 안겼다. 그것은 우리 사회 보수층의 특권을 조직하는 중심이 냉전형 수구세력임을 말해준다. 그리고 박근혜는 그 냉전적 수구세력과 이명박 대통령보다 훨씬 더 깊은 친화력을 가지고 있다. 아니 성한용 기자가 박근혜의 애국심으로 평가한 것은 바로 표정만 온화한 냉전적 수구성이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박근혜가 당선되면 수구세력의 헤게모니는 지속될 것이라는 것이 합리적 예측이다.
이명박정부가 닦아놓은 역진의 길에서 춤추게 할 것인가
셋째, 이명박정부는 민주화의 성과를 후퇴시켰다. 검찰의 노골적으로 편파적인 법 적용과 시민에 대한 소송 남발, 광범한 민간인 사찰과 노동조합 탄압, 그리고 유례없는 기간 동안 계속된 언론사 동시 파업을 유발한 언론 장악이 그런 것이다. 그런데 박근혜의 현재 지지율은 그런 제도적 환경에 근거하지 않고는 이룩될 수 없는 것이다. 만일 그녀가 당선된다면 어떻게 자신을 떠받치고 있는 이 제도적 토대를 무너뜨릴 수 있겠는가? 왜 검찰을 개혁하고 언론을 개혁해야 하겠는가?
마지막으로 이명박정부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서 이미 축적된 민주화의 제도적·문화적 성과를 무너뜨리는 작업을 해야 했던 데 비해, 만일 당선된다면 박근혜는 그런 '수고'조차 할 필요가 없이, 이명박정부가 잘 닦아놓은 역진(逆進)의 길 위에 있는 셈이다. 박근혜의 당선은 바로 그 역진의 길을 질주해도 좋다는 신호를 국민이 보낸 것이 된다. 우리는 이명박정부에서 어떤 바닥에 이른 것이 아니다. 박근혜가 당선된다면 우리 사회는 지금까지 바닥이라 생각했던 것보다 한참 더 아래에 처박히게 될 것이다.
민주화 이후 많은 선거가 있었다. 그 가운데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치지 않은 것은 없다. 기초자치단체의 보궐선거들조차 그랬다. 하지만 이번 대통령 선거처럼 커다란 것이 걸려 있는 선거는 없었던 것 같다. 더 나은 미래를 향해 크게 한걸음 내디딜 가능성과 심각한 역진의 가능성이 동시에 열려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미래를 위해서 투표해야 하며, 투표참여는 더 나은 미래를 가져올 것이다. 그런데 투표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가? 그때 우리는 현재상태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이명박정부보다 더 나쁜 정부가 어떤 것인지 경험하게 될 것이다.
2012.12.17 ⓒ 창비주간논평
이 환상은 여전히 작동하고 있긴 하지만 많이 약화되었다. 이명박정부의 정책에 협조한 박근혜와 친박의원들의 의정활동이나 김재철 MBC 사장 퇴진을 막기 위해 MBC이사회에 김무성 선대본부장이 행사한 압력 등을 통해 그 허구성이 드러났다. 또한 '이명박근혜' '이명박정부의 안주인'라는 비판 프레임이 설득력을 얻어갔기 때문이다.
그러자 '정권교체를 넘어 시대교체로'라는 구호를 들고 나왔다. 이 구호는 중의적이다. '문재인이 정권교체라면 나(박근혜)는 시대교체'라는 주장이기도 하고 '나는 이명박정권을 교체할 뿐 아니라 그것을 시대교체로까지 이끈다'는 주장이기도 하다. 하지만 손수조, 이준석도 아니고 이회창, 이인제, 정몽준과 동행하는 시대교체의 설득력은 취약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효과를 발휘하기에는 너무 늦게 조직된 환상이다.
이보다 더 나빠질 수도 있다
다른 하나는 여타 환상과 달리 분명하게 테마화되지 않은 채 일종의 서브텍스트처럼 작동하는 환상이다. 그것은 우리가 이명박정부에서 어떤 바닥을 보았다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그러니까 어떤 대통령도 이명박보다 나쁠 수 없으며 어떤 정부도 이명박정부보다 못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인식은 박근혜든 문재인이든 모두 이명박 대통령보다는 나을 것이라는 결론을 은밀히 함축하고 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이 작동하는 한에서 이명박정부에 대한 실망 혹은 분노가 박근혜에 대한 반대로 연결되는 고리가 끊어지며, "지난 5년 행복했습니까"라는 질문이 이명박에 대한 불만 안에 가두어진다.
이명박 대통령보다 더 나쁠 수는 없다는 인식은 이명박정부 비판자 속에서도 폭넓게 퍼져 있다. 예컨대 성한용 기자는 지난달 말 《한겨레》에서 "박근혜 후보 개인의 자질은 이명박 대통령에 비하면 괜찮은 편이다. 박근혜 후보는 그 나름대로 애국심이 있는 사람이다"라고 했다. 과연 그런가?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진실은 이달 초 광화문 유세에서의 조국 서울대 교수의 발언 중 "박근혜가 당선되면 이명박이 그리울 것"이라는 말에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조국 교수의 통찰력 있는 발언은 사회적으로 회자되며 박근혜에 대한 환상을 깨는 데까지 나아가지 못했다. 거기엔 "그리울 것이다"라는 말에 깃든 풍자적 태도가 그 말의 진지함을 약화시킨 것도 작용한 듯하다.
그래서 나는 조국 교수의 발언에 분명한 근거를 덧붙이고 싶다. 우선 5년 전 보수는 박근혜 후보가 아니라 이명박 후보를 선택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지금은 이명박 대통령보다 못한 대통령감이 없어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기억을 더듬고 예전의 신문기사를 재검색해보면 이명박 대통령이 박근혜보다 후보로서 더 뛰어난 면모가 있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는 더 친화력이 있고 말을 잘했으며 야권에서 빌려온 것이 아닌 자신의 업적과 정책과 슬로건으로 승부했다.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박근혜는 확장성과 능력에서 이명박만도 못한 인물이라는 것이다. 바로 어제의 TV 양자토론에서도 그 점은 분명히 드러났다.
둘째, 이명박정부가 겪은 행로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명박정부는 처음에 시장 보수주의를 중심으로 조직되었다. 그런데 통치의 위기가 닥치자 냉전형 수구세력의 품에 안겼다. 그것은 우리 사회 보수층의 특권을 조직하는 중심이 냉전형 수구세력임을 말해준다. 그리고 박근혜는 그 냉전적 수구세력과 이명박 대통령보다 훨씬 더 깊은 친화력을 가지고 있다. 아니 성한용 기자가 박근혜의 애국심으로 평가한 것은 바로 표정만 온화한 냉전적 수구성이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박근혜가 당선되면 수구세력의 헤게모니는 지속될 것이라는 것이 합리적 예측이다.
이명박정부가 닦아놓은 역진의 길에서 춤추게 할 것인가
셋째, 이명박정부는 민주화의 성과를 후퇴시켰다. 검찰의 노골적으로 편파적인 법 적용과 시민에 대한 소송 남발, 광범한 민간인 사찰과 노동조합 탄압, 그리고 유례없는 기간 동안 계속된 언론사 동시 파업을 유발한 언론 장악이 그런 것이다. 그런데 박근혜의 현재 지지율은 그런 제도적 환경에 근거하지 않고는 이룩될 수 없는 것이다. 만일 그녀가 당선된다면 어떻게 자신을 떠받치고 있는 이 제도적 토대를 무너뜨릴 수 있겠는가? 왜 검찰을 개혁하고 언론을 개혁해야 하겠는가?
마지막으로 이명박정부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서 이미 축적된 민주화의 제도적·문화적 성과를 무너뜨리는 작업을 해야 했던 데 비해, 만일 당선된다면 박근혜는 그런 '수고'조차 할 필요가 없이, 이명박정부가 잘 닦아놓은 역진(逆進)의 길 위에 있는 셈이다. 박근혜의 당선은 바로 그 역진의 길을 질주해도 좋다는 신호를 국민이 보낸 것이 된다. 우리는 이명박정부에서 어떤 바닥에 이른 것이 아니다. 박근혜가 당선된다면 우리 사회는 지금까지 바닥이라 생각했던 것보다 한참 더 아래에 처박히게 될 것이다.
민주화 이후 많은 선거가 있었다. 그 가운데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치지 않은 것은 없다. 기초자치단체의 보궐선거들조차 그랬다. 하지만 이번 대통령 선거처럼 커다란 것이 걸려 있는 선거는 없었던 것 같다. 더 나은 미래를 향해 크게 한걸음 내디딜 가능성과 심각한 역진의 가능성이 동시에 열려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미래를 위해서 투표해야 하며, 투표참여는 더 나은 미래를 가져올 것이다. 그런데 투표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가? 그때 우리는 현재상태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이명박정부보다 더 나쁜 정부가 어떤 것인지 경험하게 될 것이다.
2012.12.17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