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철이다 보니 인기를 얻기 위한 정치인들의 기업때리기가 도를 넘고 있다. 이미 실패한 정책으로 판명된 출자총액제한규제를 되살리겠다는 말이 나오는 것만 봐도 정치인들이 얼마나 무책임한 인기몰이를 하는지 알 수 있다.
더구나 공정거래위원회가 기업의 내부지분도를 공개하고 나섰다. 총수의 지분율이 낮아지고 내부지분율은 높아졌다면서 대기업의 지배구조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보이도록 자료를 공개한 것이다. 또 내부지분도가 복잡해서 문제가 있다는 식이다. 시민단체처럼 반기업정서를 조장하는 정치적 행보를 하고 있는 셈이다.
사실 경제문제를 정치적으로 접근해서 얻을 것은 거의 없다. 정치인과 정부가 만든 반시장적 규제는 기업을 통제하고 시장을 관리하려는 속성을 갖는다. 경제는 자율적인 선택에 의해 합리적 해법을 찾아가도록 했을 때 효율적인데, 정치적 접근은 이를 원천적으로 방해한다. 실험은 누군가의 손해나 피해를 유발하면서 자원배분을 왜곡한다. 이러한 정치적 해결방식을 기업의 세계에 도입하면 그 결과는 참담한 실패로 끝난다. 더욱 우려스러운 일은 실패를 반복하여 실험하는 정치실패이다.
정부는 기업 지배구조의 모범답안을 알고 있는 듯 기업경영을 통제하려 든다. 하지만 기업의 세계를 정부나 관변학자 그리고 시민단체가 제대로 알 수 는 없다. 정부는 소득분배에 관심을 갖고 공권력을 행사하며 통제와 관리에 익숙하다. 학자들은 윈윈의 협력관계를 만드는 기업의 세계를 사후 설명할 수 있을 뿐이다. 또 시민단체는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압박할 뿐이다. 정부·학자·시민단체가 직접 기업을 운영한다면 그 결과는 아마도 참담할 것이다. 현실과 동떨어진 일을 하면서 자신의 실패를 소비자의 무지 탓으로 돌릴 것이 뻔하다.
누구나 훈수는 둘 수 있다. 그리고 자신에게 책임이 돌아오지 않을 때는 마음 편하게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무책임한 간섭이 우리 경제의 동력을 해치고 일자리를 앗아간다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현대사회에서 뛰어난 기업을 가진 나라가 잘 사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뛰어난 기업을 어떻게 만들지를 고민하고 이런저런 방법을 강구한다. 그런 뛰어난 기업을 우리나라는 여럿 가지고 있다. 경제의 어려움이 있다고 해서 기업을 희생양으로 삼는 일은 교각살우의 우를 범하는 일이다. 기업에 좀 부담을 늘렸다고 큰일이야 나겠냐며 기업을 통제하려는 정치실험이 반복되면 우리의 삶은 위협받을 수밖에 없다.
기업은 경영환경에 가장 적합한 형태로 늘 스스로를 변화시킨다. 소비자의 까다로운 요구에 부응하고 현실변화에 신속하게 적응한 기업의 성과가 높은 것은 당연하며, 그 기업의 지배구조가 그 시대에 가장 효율적 형태라고 평가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대기업은 수출을 통해 세계시장에서 인정받고 있다. 실제로 매출의 80~90%가 해외 소비자가 선택한 결과이다. 시장규모에 비해 기업의 규모가 클 수밖에 없다. 이러한 글로벌 기업을 너무 크다면서 비판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경제력이 집중되었다면서 소비자가 선택한 결과를 부정하는 것은 오만 그 자체이다. 대기업 때문에 중소기업이 어렵다는 정치적 논리나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서로 뺏고 빼앗기는 관계라는 단순한 이분법적 접근방식으로는 복잡한 경제문제를 풀 수 없다.
기업의 지배구조는 기업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다. 지주회사가 나쁘다고 만들지 못하도록 했던 과거의 규제가 나빴듯이 지주회사로 옮겨가라고 강요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기업이 순환출자를 하는 것에도 다 이유가 있게 마련이다. 기업이 시장에서 소비자의 선택에 의해 좋은 기업, 나쁜 기업으로 평가받아야지 정부나 시민단체로부터 평가받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기업에 무리한 압박을 가하는 규제나 정치적 요구는 자제되어야 한다.
정권을 잡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정치는 후진정치이다. 인기를 얻기 위해 기업을 희생양으로 삼아 경제를 황폐화시키면서까지 정권을 잡는 일은 정치적 타락이며 포퓰리즘이다. 국민의 삶을 개선해 나가고, 더 좋은 일자리를 만들 수 있는 친(親)시장적 정책을 채택하는 일이야말로 정치가 선진화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