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그냥 사사하면
죄인이라는 것을 만천하게 공개하는 것이어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는 손자에게 치명적 약점이 됩니다
자식은 싫어도 손자는 사랑한다는 모순적이긴 하지만...
그리고 살려 두면
나중에 영조 죽고
정조와 사도세자 간의 싸움-물러나라 싫다-이 일어날 수 잇으니 안 되고
폐서인해서 어디 두자니
자식의 광기 드러날 것 같고
죽이되 사사는 안 되고 하니
저 방법을 쓰지 않았나 짐작합니다
그리고 영조가 자기가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참 모진 면이 있어서
화협옹주는 자식 취급도 안 했고-그래도 조선 공주 평균 이상 받았지만
부인 정성왕후는
평생 안 찾고
죽을 때도 관심 없고
정성왕후 죽을 무렵-정말 우연의 일치입니다만은
사랑하는 딸 화완옹주의 남편도 죽었는데
사위 초상 치르러 고고씽한 전력이 있어-적녀도 아니고 서녀인데 말이죠
사도세자도 편하게 죽게 하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라 짐작 가능합니다
다만 그 땡볕 여름에 뒤주가 선택된 것으로 보아
영조의 정신상태도 보통은 넘지 않았나 짐작 가능합니다
결국 애비 정신 상태 문제죠...
더 재밌는 건
이런 사람이 정치는 또 그런대로 잘 했다는 것이 역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