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아래, 사랑을 많이 받은 아이.. 라는 펌글을 자세히 읽어봤어요.
제가 두 아이의 엄마이고, 저 역시도 다른 모든 엄마처럼 우리 아이가 사랑을 많이 받았으면.
내 아이를 정말 잘 키웠으면.. 하는 마음이 있으니까요. 저 비슷한 제목의 글이 눈에 보이면 정독하게 되요.
결론은 늘 비슷하지만요. 읽을 때 마다 느낌이 달라요. 아마 그때 그때 제 감정상태가 다르기 때문이기도 하겠죠.
저희 집 아이는, 큰애가 네살인데
어디 가면 늘 애가 수줍음이 많은가봐요, 겁이 많네요, 거의 표정이 없어요.. 그런 말 많이 들어요.
저는 한편으론 애가 타고나기를 내성적으로 태어난 것을,
굳이 옆에서 얘 좀 웃어라, 씩씩하게 굴어. 그럴 필요 있을까 싶어서 그냥 네.. 좀 그런 편이에요.. 그러고 마는데요.
아이가 하루가 다르게 커 가고, 올 봄부터 기관에도 다니기 시작하고 하면서부터 제 마음이 종종 많이 복잡해 지네요.
제가 많이 다독여주고 많이 안아주고 많이 사랑을 못 해 줘서,
그래서 집에서 따뜻한 온기를 느끼지 못하고 포근함을 알지 못하니
밖에 나가서도 낯선 사람들에게 긴장하고 위축되어 있는걸까.. 그런 생각을 많이 해요.
제 어린 시절로 거슬러가보면,
엄마가 선생님이셨어요. 다른 직장엄마들에 비하면 퇴근 시간도 이르고 방학도 있고 해서 나았겠지만
할아버지 할머니 손에 큰 언니오빠와 달리 저는 어려서부터 식모, 그 시절엔 식모..라고 했죠, 식모언니들 손에 컸어요.
그때가 70년대 후반, 80년대 초반인데 식모보단 공장에서 일 하는게 더 좋아보이는 시절이라 그랬을까..
식모언니들이 그렇게 자주 바뀌었다고 하네요. 엄마가 인심 후하신 분이라 못해 준거 없이 시집도 보내주고 그랬다는데,
엄마가 퇴근해서 와 보니 저 혼자 집에 있고 식모는 도망가고..그런 적도 있었답니다.
그냥 시절이 그랬고.. 시골에 계신 할아버지 할머니가 도회지로 나와서 애를 봐 주실 엄두는 못 내시고
그러다보니 저 국민학교 들어갈 무렵까지 제 기억에도 우리집 식모나 파출부 언니들이 참 자주 바뀌었던 것 같아요.
저는 그 시절에 대한 결핍이랄까.. 그런게 있어서 저 스스로 나는 애정결핍이야.. 그러면서 크기도 했죠.
그런데 엄마도 아빠도 속으론 물론 자식 사랑 크셨겠지만 다정하게 안아주기 보다는
잣대를 들고 이리 재고 저리 재고 두 분 다 교사이셔서 공부를 우선으로 여기고.. 뭐 그런 환경이었구요.
엄마가 저를 포근히 안아준 기억이 없어요. 아빠는 낙도 근무를 오래 하셔서 아빠가 집에 자주 안계시기도 했고..
아빠랑 따뜻하게 손을 잡아보거나, 엄마랑 다정하게 팔짱을 껴 보거나 한 기억이 없어요.
그런 스킨쉽이 좋다는건 본능적으로 알다보니 커 가면서 누군가 저에게 그렇게 잘해주면 그냥 막 좋아하고 그랬죠.
대학 다닐 때도 인지를 못하다가 내가 그런 성격이라는걸 결혼하고 깨달았어요.
남편도 .. 지금 생각해보면, 왜 내가 이 사람과 결혼을 했을까.. 생각해보면,
제게 잘 해줘서, 다정하게 대해줘서, 그게 전부였던 것 같아요.
사랑을 고민하지도 않았고 미래에 대한 계획도 없이, 그냥 나한테 잘 해 주니까.. 그렇게 결혼을 했죠.
그리고 나서 이렇게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는데,
어미의 본능으로 아이가 울면 달래고, 밥 때 밥 주고, 잘 때 되면 재우고, 그런건 살뜰히 잘 하는데요.
그게 다에요. 그외의 시간에 아이와 교감을 주고 받거나, 아이가 제 사랑을 담뿍 느낄만큼 끈끈한 시간을 보내거나..
그런 기억이 없어요. 네.. 이제와 생각해보니 그렇네요. 그래서 큰애가 저런 성격이 되었나 싶어요.
저희 엄마처럼 냉정하고 깔끔떠는 엄마는 되야지 되지 말아야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저도 꼭 제 어린시절의 우리 엄마같은 그런 엄마가 되어있나 봐요.
그러면서 밖에 나가 주춤하고 손가락 배배 꼬면서 뒷걸음치는 저희 큰애를 답답해 하는 엄마가 되어 있는거죠.
우스갯 소리였지만, 제가 딱 그거에요. 모든걸 책으로 배웠어요.
사랑도 책으로 배웠고, 육아도 책으로 배웠어요.
하지만 책으로 감정은 배울 수가 없잖아요.. 그게 참 슬픈 밤이네요.
아이를 사랑하는 방법을 배워야 하는 엄마가 여기 한 사람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