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난도 좋다고 하셨는데...
지적만 받으니 지우신 건가요.
합평하는 기분으로 애써 쓴 답글이 아까워서... 올립니다.
상처가 아니라 참고가 되길 바랍니다.
* 거의 모든 학생이 그렇겠지만, '글짓기'가 아닌 '소설 쓰기'에는 서투를 수밖에 없어요.
소설은 에세이나 그냥 글짓기가 아니라서... 좀, 다릅니다. 달라요.
지워진 글을 가만 생각해 보니 아마도 다른 때(백일장 같은) 글짓기는 좀 해 본 학생인 것 같군요.
그러나 아무리 잘 쓴 '글짓기 작품'이어도 그것이 바로 소설이 되기는 어렵습니다.
올리셨던 글은, 문장도 고쳐야 하겠지만
소설이라면 갖추었어야 할 점을 갖추지 못한 부분이 '이것, 이것이다' 눈에 띄는 것이 있어
그 점을 좀 적었습니다.
고등학생이니, 갈고 닦으면 좋은 소설가가 될 수도 있겠지요.
올려 드리는 이 내용이
상처가 아니라 '아, 소설은 그래야 하는 거구나' 하는, 슬쩍 맛보기'의 기능이 되었으면 합니다.
(글을 수정하니 문장 간격이 엉망진창이네요. 고칠 수가 없어요. 이해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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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님들과 약간씩 겹치는 내용이 되겠지만 한 번 써 봅니다.
- 전체적으로 '재미없는 기행문'을 읽은 느낌입니다.
소설은 이야기이고, 문장이 좀 떨어져도(좋지 않아도) 이야기가 흥미로워야 합니다.
그런데 올려 주신 글은,
문장은 매력이 없고(고등학생 치고 아주 못 쓴 문장은 아닙니다만)
'이야기'는, 없습니다. 앞으로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지 알 수가 없고
다만 버스를 타고 아주 지루하게 천천히 이동하다가 다른 장소로 이동하는 내용일 뿐이에요.
나와 있는 것이라고는 주변에 대한 지나치게 상세한 관찰 뿐입니다.
- 문장의 시제는 통일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현재형으로 '- 한다'고 쓰는 문장이, 알고 보면 참 다루기가 힘든데요.
소설에서 종종 채용하는 문장이긴 하지만 이야기 전체에서 다 그런 식으로 쓰기는 힘들지요.
그러나 현재형으로 끌고 나가다가 자연스럽게 과거형을 섞어 넣더라도
(예 : 우리는 점심을 먹기로 한다. 나는 빵을 골랐고 친구는 밥을 골랐다. 그런데 밥이 맛이 없다고 친구가 불평을 해댄다.
나는 친구의 어깨를 툭 치며 바꿔 먹자고 한다.)
그것이 필요에 의한 것이고 자연스러워야 합니다.
위의 내용을 보면, 한 문장은 과거, 한 문장은 현재, 이런 식으로 계속 뒤섞여 있어요.
- 모든 것은 구체적이어야 합니다!
이건 정말 중요한 문제인데요.
'우연히 알게 된 아리따운 동갑내기 숙녀'라는 부분 하나만 보아도...
'아리따운'이나 '숙녀'라는 표현이, 요즘 잘 쓰지 않는 것이라는 문제는 둘째 치고라도요.
소설 속의 사람은 그냥 우연히 알게 되면 안 됩니다. 그것이 정말 '우연히'였어도,
길 가다 어떻게 우연히 마주쳤는지, 아니면 누가 우연히 합석을 시킨 것인지에 대한 정보가 있어야 합니다.
그냥 '우연히'만 달랑, 이건 안 돼요.
'동갑내기'라는 것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중심 인물이 몇 살인지 나와 있지 않은 상황에서 '동갑내기'라는 건
아무 정보도 주지 못해요. 읽는 사람은 어리둥절하게 됩니다.
소설은 독자에게, 정보를 주는 성격의 글이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자가 느끼지 못하는 동안에도 계속해서 정보를 주어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놀부가 등장한다면 그가 어떤 성격인지, 어떤 짓을 해서 못되었다 하는 건지,
그래서 그 심술이 나타난 얼굴은 어떻게 생겼는지, 그런 것이 다 나타나야 합니다.
'놀부는 참 못된 성격이었다. 얼굴도 못되게 생겼다.' 이거 가지고는 안 된다는 말이지요.
실제로 놀부의 성격을 묘사하는 부분을 보면, '똥눈 아이 주저앉히기, 아이 가진 여자 배 발로 차기, 호박에 말뚝 박기'
이런 식으로 놀부가 한 나쁜 짓이 줄줄 나열되어 있죠.
그 나열된 부분을 읽으면서도 독자는 지루함을 느끼지 않습니다. 재미도 있으면서, '와 정말 나쁜 놈이구나' 하고 알게 되고
에잇 저 나쁜 놈, 하고 이야기에 빨려드는 거지요.
구체적이어야 할 것. 이건 정말 중요합니다.
(놀부는 소설의 등장 인물이 아니고 판소리의 등장 인물이지만...
우리나라의 판소리는 '빨려드는 이야기' 그 자체이기에 예로 들었습니다.)
그런데 위 글은 전체적으로 모든 것이 뜬구름 잡는 듯한 모호함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정작, 전혀 중요하지 않은 주변 풍경은 너무 세세하게 묘사하고 있어요.
주변을 그토록 세세하게 묘사해야 하는 것은, 그 주변이 큰 의미를 가질 때 뿐입니다.
예를 들어 '비너스 패션'이 등장했다면 거기서, 그 곳만 한글 간판이라는 바로 그 이유로 뭔가 사건이 나야 하는 거죠.
그게 아니라면 내 눈에 들어온 것을 아무리 묘사하고 싶어도 몽땅 가지를 쳐내고 잘라낼 줄 알아야 합니다.
즉,
필요해서 언급한다면, 몹시 구체적일 것- 모호함은 안 됨,
그러나 필요없는 부분은 아예 잘라낼 것- 구체적으로고 뭐고 아예 말을 말 것,
입니다.
위 글이 모호한 인상을 주는 이유를 더 짚어 보자면...
(표현이 모호하기 때문도 있고, 앞뒤가 안 맞기 때문도 있습니다만, 한꺼번에 얘기를 해 보죠.)
- '시선'을 창 밖에 주고 있는 것이 누구인가요? 둘 다? 아니면 주인공?
그냥 주고 있는 것이 아니라 '집중'을 하고 있는데 어떻게 그와 동시에 담소를 나눌 수 있지요?
'누구의' 시선인지를 말해 주어야 하겠고,
(사실 여기서는 시선에 대한 얘기 자체가 빠져야 하겠지만, 문장만 고쳐 보자면)
집중이 아니라 차라리 창 밖을 '멍하니' 보고 있었다고 해야 말이 됩니다. 그래야 동시에 말을 나눌 수가 있겠죠.
- '이런저런 담소'가 무엇인가요?
잡담이면 잡담이지, '담소'는 어울리지 않는 데다... 내용을 독자에게 알려 주고 있지 않아 모호합니다.
만약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이야기라서 언급하지 않았다면,
'중요하지 않은 이야기들이었다' 정도라도 독자에게 말해 주어야 해요.
더 나아가면
'우리가 나눈 것은 겨우, 날씨가 별로라는 둥, 비나 왔으면 좋겠다는 둥,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이야기였다'
정도로 보여 주어야 하지요.
'이런저런 담소'는 독자의 머릿속에 알게 모르게 물음표만 주고 머뭇거리게 합니다. 무엇이 '이런저런'인가?
게다가 이 표현이 뒤에 똑같이 한 번 더 쓰였네요.
- '누가' 웃고, '누가' 가 보자고 한 거죠?
글을 읽다 보면 그 숙녀가 그랬다는 건 대강 알겠지만
읽으면서 '누가? 대체 누구야? 누구? 누구?' 생각하게 되는 애매모호한 부분입니다.
그리고 '웃음을 웃'는다는 표현은 정말 어색합니다. 시에서나 허용될 법한 비문이지요.
...
글을 프린트해서 찬찬히 보며 직접 얘기해 주는 것이 아니라서
눈에 띄는 것만 대략 써 봤습니다.
전체적으로 다 고치자면 너무 일이 커질 것 같고, 작은 부분을 더 짚어 보자면...
- 전시해설 안내를 '주는' 게 아니라 '해 주는' 것일 텐데
이 표현도 가만히 보면, 전시 내용을 해설해 주는 것이 곧 안내이니
해설과 안내 중 더 어울리는 표현을 찾아 하나만 골라 써야 하겠습니다.
- 버스에서 내릴 때 누르는 것은 '하차 벨'이지요.
- 황급하게 내린 그 버스에 다시 탔다고 하니,
아까 내린 그 버스가 특별히 우리를 위해 안 가고 기다렸다는 인상을 받게 됩니다.
같은 번호의 다른 버스를 탔다면 그렇게 써야 하겠지요.